리니지 아버지 송재경 그는 누구인가

시나리오/게임기획|2019. 11. 4. 03:30

리니지의 아버지라 불리는 송재경

달빛조각사 출시 간담회에서 송재경 XL 게임즈 대표가 직접 게임 소개에 나섰다. 2019. 9.25.

리니지게임 개발자 출신들 엔씨 리니지2M·넥슨 V4카카오 달빛조각사 등 모바일 게임 대작 잇단 출시, 2019

 

한국 최고의 천재 게임 크리에이터를 뽑으라고 하면 단연 송재경 XL 게임즈사장일 것이다.

송재경 사장이 게임을 하나 만들 때 마다

한국의 게임 산업은 한 단계씩 발전하는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이를 직접 체험해왔다.

송재경 사장이 게임을 하나 히트할 때마다 나의 월급은 두 배씩 올랐던 것이다.
송재경 사장이 게임시장의 파이를 키웠기 때문이다.

또한 동아리 수준에 머물렀던 한국 게임 개발사들을 세계의 유명 회사와 경쟁하게 만든 것은

송재경씨의 뛰어난 게임들 덕분이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송재경씨의 영향력을 확인 할 수 있는 사건이 2005년 10월에 일어났다. 

네오위즈에서 송재경 사장의 게임을 퍼블리싱 한다는 계약 소식이 전해지자 

다음날 네오위즈의 주가는 상한가를 쳤다.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고작 사람 한 명 가지고 그게 뭐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기사였다.

하지만 이미 김택진 사장이 설파 했듯이

게임이라는 분야는 한 사람의 천재에 의해서 달라질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실제로 송재경 XL게임즈 사장은 그 의미를 몸소 증명해 왔다.
그는 이미 86학번으로 서울대학교 컴퓨터 공학과 수석으로 범상치 않게 컴퓨터계에 등장한다. 

그 후 카이스트 박사 과정 중이었던 송재경사장은 

94년도에 국내 최초의 텍스트 머드 게임을 개발하여 세상을 깜짝 놀래 키었다. 

당시 마리텔레콤이 제작한 단군의 땅과 함께 PC통신에서 최고 인기 있는 유료 콘텐츠로 이름을 날렸다.

솔직히 필자는 분당 30원씩이나 하는 그 게임에 사람들이 왜 그토록 열광하는지 몰랐다가 

호기심에 한번 플레이 한 후 중독되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필자에게는 한달 동안의 요금만 10만원이 넘게 지불하도록 했으니 내게는 실로 대단했던 게임이었다.
이러한 쥬라기 공원의 성공은 

이제 한국에서도 게임이 시장에서 수익을 창출 할 수 있는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가 있는 것이다.

기존에 아마추어들이 순수한 열정으로 작은 옥탑방에 모여 컵라면이나 먹으면서

게임 하나 완성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동아리 수준에서

이제는 게임이 수익창출이 가능한 사업분야로 당당히 인정받게 된 것이다.
당시 게임 회사들이 창투사로부터 투자를 요청해도 사업계획서 검토 단계에서 거절당해야만 했다. 

투자 제안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 성공 사례를 예로 들고 그것보다 더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고 있음을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그전에 돈을 벌었다는 게임이 없으니 창투사에서 투자제안을 순순히 받아 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쥬라기 공원의 등장 이후에는 확실히 모든 것이 달라졌다.

성공한 수익모델로 쥬라기 공원을 예로 들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쥬라기 공원 이후 정말 많은 곳에서 쥬라기 공원을 흉내 내며 텍스트 머드 게임을 발매하였다.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하이텔에서만도 무려 30개가 넘는 온라인 게임을 서비스 했었다. 

중소형의 PC통신사가 세워질 때면 어김없이 머드 게임을 핵심 콘텐츠로 소개하였다. 

게임을 인기 콘텐츠로 자리잡게 만든 쥬라기 공원의 성공모델 덕분으로 

많은 회사들이 투자를 받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었다. 

이렇듯 동아리 수준의 게임 개발사들이 기업으로 변모하는데 절대적 공헌을 한 것이 바로 송재경 사장이다.

송재경 사장의 천재성은 세계 최초의 MMORPG라는 타이틀을 가진 바람의 나라에서 다시 한번 발휘된다. 

송재경 사장은 자신이 재미있게 읽던 만화책인 바람의 나라를 게임화하는데   

직접 프로그래밍뿐만 아니라 기획, 그래픽, 음악 등 게임제작의 전 분야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열정을 쏟아 부어 게임을 완성시킨다.

바람의나라, 1996

이때 같이 작업을 했던 김정주 넥슨 사장은 송재경 사장의 활약을 보면서

내가 아는 진정한 슈퍼 천재라며 극찬을 할 정도였다.

일반 사람이라면 단순히 책을 워드로 옮겨도 힘들 분량인 3만줄을

하루만에 프로그래밍했던 사람이 바로 송재경 사장이었다.
하지만 초기에 바람의 나라는 사람들에게 그래픽 채팅 게임에 불과하다며 혹평을 듣는다.

서비스 초기의 한달 이용료는 고작 90만원에 불과하였다.

이것은 시대를 앞서갔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막상 게임에 접속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갈팡질팡 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람의 나라의 귀엽고 깜찍한 아바타를 사용해서 열심히 채팅을 하면서 만족했다.
사실 처음 사람들은 바람의 나라를 아바타 채팅 프로그램으로 알고 있었다.

필자도 그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스타 크래프트의 인기로 PC방이 활성화되면서 바람의 나라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급작스럽게 증가한 PC방에서는 디아블로와 리니지와 다른 분위기의 게임을 원했다.

그리고 그 틈새시장을 바람의 나라가 장악하면서

국산 게임중에서 리니지를 뒤쫓아가는 최고의 인기 콘텐츠로 자리잡게 된다.
현재의 넥슨이 있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바람의 나라 덕분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송재경 사장을 보면 항상 일반 대중보다 한 박자 정도 앞서가는 센스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것을 운으로 표현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게임방의 폭발적인 증가를 예상하지는 못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송재경 사장이 리니지를 개발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게임 유저들이 어떤 게임을 원하는지를 파악하는 데는 동물적인 감각이 있다.
98년 리니지를 처음 베타 테스트 했을 때를 필자는 잊지 못한다. 

나 역시 제이씨 엔터테인먼트에서 워바이블이라는 온라인 게임 개발에 참여하고 있었다. 

리니지, 1998

당시에 온라인 게임은 바람의 나라, 영웅문, 워바이블 정도였고 수익성 측면에서는 사실 최악이었다.

그럴 때 바로 리니지가 등장한 것이다.

마을 하나에 몬스터는 슬라임하나가 고작이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베타테스트에 참여할 정도로 대단한 인기였다.
기존에 나왔던 온라인 게임과는 확실히 달랐다. 

디아블로처럼 8등신의 캐릭터에 화려한 액션을 자랑했는데 

손끝에서 느껴지는 타격감에서 다른 게임이 가지지 못한 게임성을 확보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처음 게임을 접한 사람은 디아블로의 아류작이라면서 폄하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베타테스트에 불과했던것이다.

리니지의 처음은 디아블로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리니지 신화에는 가속이 붙었다.

디아블로와 리니지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디아블로는 고작 네명이서 접속해서 플레이하는 네트워크게임이다.

반면, 리니지는 수 천명이 동시에 즐기는 게임으로

기본적으로 게임 제작에 들어가는 기술 수준이 다르다.
디아블로에서는 요구되는 서버의 안전성이 리니지에서는 그 몇 배가 필요하다. 

그리고 송재경 사장은 그의 천재적인 프로그래밍 실력을 

리니지의 서버 안전성 확보를 위해서 쏟아 부었던 것이다. 

당시 타 온라인 게임은 랙이 심해서 많은 사람이 접속을 하면 속도가 느려졌다. 

속도가 느려지면 이동도 불편하고 특히 전투할 때 재미가 반감된다.
하지만 리니지에서는 서버의 완전성 덕분에

많은 사람이 등장해도 속도가 느려지지 않고 게임을 즐길 수가 있었다.

송재경 사장의 슈퍼 프로그래머적인 능력이 있었기에

우후 죽순격으로 등장하는 MMORPG중에서도 절대적인 시장의 강자로

지금까지도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리니지가 자랑하는 공성전만해도 간단한 것이 아니다. 

리니지 시리즈 이외에 아직까지도 제대로 공성전을 구현한 것을 보기 힘든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송재경 사장의 뛰어난 서버 프로그래밍 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비록 그래픽과 게임시스템이 디아블로의 영향을 받았을지 몰라도

그것을 능가하는 서버/네트워크 기술로 게임의 새로운 영역을 구축한 것이 바로 리니지이다.
 리니지가 온라인게임의 블루오션을 만들어 내고 

전체 게임 시장을 키웠다는 것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를 해야 한다. 

리니지 덕분에 다른 온라인 게임도 덩달아 매출이 껑충 뛰는 광경을 내가 직접 지켜봤기 때문이었다. 

리니지는 환타지를 배경으로 어두운 분위기에 금속성의 사실적인 그래픽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PC 방 사장은 라이트 유저를 위해서 다른 분위기의 게임들을 찾았다.

그래서 초등학생과 같은 저연령층을 위해서 바람의 나라를 서비스했다.

그 밖에 무협 매니아를 위해서 영웅문이나 우주SF를 세계관으로 워바이블 등이

틈새시장을 노려서 전체 게임시장의 파이가 커질 수 있었다.
 결국 리니지의 성공은 엔씨소프트의 직원들을 부자로만 만든 것이 아니라 

전체 게임 회사에 파이를 크게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나는 이점에서 송재경 사장의 업적을 높이 산다. 

게임회사에 다닌다고 하면 불쌍하게 보던 눈빛이 

점차 호의적이고 부러워하던 눈빛으로 바뀌었던 것이 바로 

리니지 성공신화 덕분이었음을 필자는 몸소 경험 했다.
리니지는 그 자체로 한국에서도 게임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게임이다.

게임회사도 기회의 땅이 될 수 있음을 한국의 젊은이 들에게 알려줬고

유능한 개발자들이 게임회사에서 문을 두드리게 만든 계기가 바로

리니지의 성공덕분이라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송재경 사장을 필자가 존경하는 진정한 이유는 

그가 300억대의 부자이지만 아직까지도 게임 개발의 현장에 있다는 것이다. 

사실 현재 한국 게임 개발 현장에서 가장 심각한 현상은 

개발자들의 조기 은퇴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이미 게임이 유명해져서 먹고 살만해졌다 싶으면 

20대에도 개발현장을 떠나서 관리직으로 자리를 옮긴다.

외국의 경우는 빌로퍼처럼 개발 현장이 그리워서 회사를 그만두고서도 

제작 현장으로 복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한국은 개발자들이 가능한 빨리 무조건적으로 제작 일선에서 물러 날려고 안달한다.

35살까지 관리직이 아니라 개발 현장에 있으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까지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개발 현장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많다. 

게임이 하나라도 성공해서 회사에서 인정이라도 받을라 치면 

제작현장에서 벗어나서 관리직을 시켜달라고 생떼를 부리기도 한다.
 개발현장에서 벗어나려는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다. 

개발자들은 주당 80시간은 기본이고 

서비스 날짜를 임박해서는 출퇴근 개념이 없어지고 회사에서 생활하기 마련이다. 

그에 비해서 관리직이 되면 여가시간도 즐기면서 육체적으로 정말 편해진다. 

게다가 월급에서는 오히려 관리직보다 개발자가 적은 경우도 있다.
관리직 우대와 개발자에 대한 홀대 현상이 엄연히 한국 게임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개발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관리직을 원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게임 개발을 하면서 쌓아놓았던 노하우도 같이 사라지는 것이 문제다.
이렇게 성공한 게임개발자들이 다들 30대 초반이면 개발 일선에서 물러나 관리직으로 옮긴다면 

한국 게임계의 미래는 현재 상태로 정체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송재경 사장은 불혹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경영자로 물러나 있지 않고 개발현장에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이 안심이 된다.

개발현장에 송재경 사장이 남아있다는 것은 아직도 자신이 게임을 위한 순수한 열정이 남아있음을 뜻한다. 

송재경 사장이 현재 개발하고 있는 레이싱 게임은 무엇보다 물리 엔진이 중요하다. 

차가 작동하는 원리에 의해서 레이싱 게임을 시뮬레이션 해야 유저들이 실제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리 엔진은 한국 게임계의 가장 취약한 분야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송재경 사장은 비록 자신과 일하는 사람이 레이싱 게임을 좋아해서 자신은 따라가는 것이라고 말을 했다. 

하지만 송재경 사장이 만드는 물리 엔진은 한국 게임계의 새로운 획을 그어주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부수적인 효과로 

나이 40이 넘어서도 게임 프로그래밍을 할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었으면 좋겠다. 

나이 40이면 머리가 굳어서 프로그래밍 할 수 없다는 그런 헛소리를 제발 잠재워 주기를 기원한다.

 

송재경 엑스엘 게임즈 대표 단독 인터뷰
“게임 규제 이젠 그러려니…한국에선 숙명”
리니지·바람의 나라 개발한 송재경
“모두들 뒤에선 다 즐기면서도 대놓고 하는 건 문제 삼는 풍토 돈보다 탄성 부르는 게임이 목표”
‘송재경은 (KAIST) 컴퓨터실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학기 초엔 아예 컴퓨터 관리자에 지원한다. 그는 전산실에 살다시피 했다. 

송재경은 한국 최초의 24시간 PC방 알바였다.’
넥슨의 창업 과정을 다룬 책 『플레이』에 나오는 송재경(52) 엑스엘게임즈 대표에 대한 묘사다. 

송 대표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6학번 동기인 김정주 NXC대표와 함께 1994년 넥슨을 창업했다. 

그곳에서 세계 최초 온라인 그래픽 게임 ‘바람의 나라’를 만들었지만 완성을 보지 못하고 퇴사했다. 
1998년엔 서울대 전자공학과 85학번인 김택진이 세운 엔씨소프트에 합류해 ‘리니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사업 방향을 놓고 갈등을 빚다 2003년 회사를 나갔다. 

그리고 바로 자신의 게임 회사인 엑스엘게임즈를 세웠다. 
그후 십 수년이 지나는 사이 송 대표가 만든 두 게임은 한국 IT산업의 부흥을 일궜다.

 '리니지M(리니지 모바일 버전)'은 아직도 초히트 게임이며,

 '바람의 나라:연(바람의 나라 IP를 이용한 모바일 게임)은 올해 출시 예정이다. 

몸담았던 두 스타트업은 현재 대한민국 ITㆍ게임업계를 대표하는 거대 기업이 됐다. 

그리고 천재 개발자로 불렸던 송 대표에겐 ‘한국의 워즈니악’이란 꼬리표가 따라 붙었다. 

스티브 잡스와 함께 미국 애플을 창업해 기반을 다졌으나 

이후 애플을 떠났던 스티브 워즈니악에 빗댄 별명이었다.
지난 13일 경기 성남 판교테크노밸리에 있는 엑스엘게임즈 본사에서 만난 송 대표는

 ‘한국의 워즈니악’이라는 별명에 대해

 “난 잠깐 운이 좋아서 반짝했던 것뿐인데, 그렇게 불러주면 완전 영광”이라며 웃었다. 

코드 짜기에 몰두하던 중 인터뷰를 하러 나온 그는 슬리퍼를 신고 수염이 덥수룩한 상태였다. 

피곤해 보였지만 눈만은 유난히 반짝거렸다. 

송 대표가 일간지와 인터뷰를 한 건 수년 만에 처음이다. 

그는 한국 게임산업에 대해

 "돈 버는 게임에 안주하지 말고, 규제 탓하지 말고, 새로운 예술적 게임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니지, 바람의 나라를 만든 천재 개발자  
Q 어떻게 지내나.

A “게임 개발 열심히 하고 있다.

지금 서비스 중인 게임 아키에이지와 새로 나올 다중 접속 역할 수행 게임(MMORPG)인

달빛조각사를 열심히 만들고 있다.

요즘 내가 짜는 코드는 당장 시급한 프로그램은 아니고 게임 개발 툴 관련 코드다.

최근 5~6년간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느라 코딩을 제대로 못 했는데

다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코딩을 하게 됐다.

이런 말 하면 꼰대 소리 듣겠지만 매주 월요일 아침 회사에 오는 게 설렌다.”

Q 판교에 산다고 들었다.  
A “회사가 판교로 옮기면서 나도 이사 왔다. 물가 비싼 것만 빼곤 다 좋다.

깨끗한 데다 밤이 되면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 조용해지니 더 좋다.”
 
Q 회사 홈피 ‘나는 게임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A “앞으로 인공지능(AI)이 상당 부분 사람이 하는 일을 대체할 것이다.

수십 년 뒤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남아 있을까 생각해 봤다.

그래도 게임은 사람만의 영역으로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인공지능은 굳이 즐거움을 위해 뭘 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그래서 넣은 문구다.”
"개발은 잘해도 돈 버는 재주는 없다." 
 
Q 김정주 NXC대표와 함께 창업했다.
A “대학 1학년때 정주네 집에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자주 갔는데

그때 한참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고 회사를 키우던 그런 때였다.

빌 게이츠처럼 우리도 뭘 해보자는 얘기를 많이 나눴다.

원래 게임을 좋아했던 터라 개발을 해보고 싶었는데, 이런저런 여건이 맞지 않았다.

그러다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고 정주와 함께 창업했다. ”
 
Q 창업 초기엔 어땠나.
A “테헤란로에 있는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냈다. 당시가 일과 관련된 측면에서 전성기라고 생각한다.

집에 안 가고 오피스텔 2층 침대에서 자다 일어나 코딩하다 밥 먹고 다시 자고 그랬다.

바깥세상에서 돌아가는 시간과 무관하게 사무실 안의 시간은 따로 흘렀다.

사정 모르는 사람이 보면 감금 생활 같다고 오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주가 시킨 건 아니다. (웃음) 내가 재밌고 좋아서 스스로 한 것이다.”

리니지 20년간 인기, 마냥 좋은 일일까
Q 엔씨소프트로 옮긴 뒤 만든 리니지가 20년째 흥행몰이 중이다.
A “내가 터를 닦은 게임이라 오래 서비스 되는 게 좋기는 한데 마냥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뭔가 좀 게임도 발전해야 하는데, 20년 전 리니지가 아직도 톱을 차지하고 있는 게 현실에 안주하는 느낌이다.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송 대표는 한국의 1세대 게임 개발자로서 초창기 돈도 상당히 벌었다. 

2002년 한 증권정보분석 업체가 발표한 국내 50대 젊은 부호 명단에서 당당히 29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 명단에서 1위는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상무보였으며 김택진 대표가 3위였다. 

하지만 엔씨소프트를 떠나 자신의 회사를 창업한 이후에는 

적어도 사업적 측면에선 기존만큼의 성과를 내진 못 했다. 

그는 "난 돈 버는 쪽에는 밝지 않은데 정주는 그쪽에 소질이 있었다. 

개발자가 지녀야 할 능력과 부를 이루는 능력은 조금 다른 능력인 것 같다"고 말했다.
 
리니지 이후 '승자의 저주' 겪었다
Q 리니지 이후 만든 게임들이 리니지만큼 흥행하진 못했다.
A “‘승자의 저주’랄까. 리니지 개발할 때는 환경이 굉장히 열악했다. 개발팀도 적었다.

그래서 선택과 집중을 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엔 훨씬 풍족한 상태에서 게임에 이것저것 다 집어 넣다 보니

뭔가 욕심이 생겨 잘 안된 게 아닌가 싶다.”
 
규제는 한국 개발자의 숙명
한국 IT업계의 산증인인 그는 미래 게임 산업에 대해 어떻게 전망할까. 

수년 전 그는 한 외부 강연에서 “‘콘솔 게임’의 미래는 없다”고 말해 논쟁을 불러일으켰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A “전혀 아니다. 지금은 콘솔 게임의 장래가 밝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PC게임의 장래가 어두워지고 있다.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집에서 PC를 잘 사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다.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거나 TV를 본다. 모바일 게임과 TV와 붙어있는 콘솔의 장래는 밝다.”
 
Q 한국 게임은 비슷비슷하다는 지적이 많다.
A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처음 MMORPG가 나왔던 20년 전만 해도

여러 명이 하나의 게임을 같이 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 굉장히 재밌었다.

그런데 요즘엔 거의 모든 게임을 다 통신망을 통해 여러 사람이 즐길 수 있다.

그렇다면 함께 즐기는 것 이외의 재미를 찾아야 하는데

지금 대부분의 게임사는 현재 돈을 버는 게임에만 집중하고 있다.”
 
예술성, 재미 다 갖춘 '갓 게임' 개발이 꿈    
Q 규제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A “한국 개발자로서는 숙명이다. 우리에겐 ‘눈 가리고 아웅’하는 문화가 있다.

모두 다 뒤에선 즐기지만 대놓고 즐기는 것은 문제 삼는 그런 문화다.

25년간 게임 개발자로 산 터라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송 대표에게 개발자로서 남은 꿈은 무엇일까.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란 두 전설을 개발한 송 대표지만 놀랍게도

 “‘갓 게임(예술성도 있고 재미도 있어 아주 높은 평가를 받는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는 “돈 버는 게임, 사용자 우려먹는 게임 말고 정말 누가 봐도 탄성을 자아내는 

그런 예술적인 게임을 만들고 싶다”며

 ‘돈 벌어서 예술을 한다고 욕을 먹더라도 꼭 해보고 싶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25년째 천재 개발자 소리를 들어온 그의 눈은 이 얘기를 할 때 가장 반짝거렸다.

[출처: 중앙일보] “게임 규제 이젠 그러려니…한국에선 숙명”

송재경 이력

넥슨 시절
KAIST 박사과정을 중퇴하고 한글과컴퓨터에 입사하여

 '쥬라기 공원'이라는 머드 게임을 만들던 송재경은, 

대학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김정주와 함께 1994년 12월 말 넥슨(NEXON)을 공동 창업했다. 

송재경은 넥슨에서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를 개발하지만, 

정식 서비스를 몇 달 남겨놓은 1996년 말, 김정주 등과의 불화로 지분을 모두 반납하고 넥슨을 퇴사한다.

엔씨소프트 시절
넥슨을 나온 송재경은 아이네트에 입사하여 새로운 온라인 게임 리니지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당시 IMF 한파로 아이네트 역시 어려워진 상황이었는데, 

엔씨소프트 대표 김택진이 송재경을 자신의 회사로 영입하였다. 

당시 엔씨소프트는 게임 회사가 아니라 html 작성도구 등의 사무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작은 회사였다. 
리니지는 1998년 11월, 엔씨소프트에서 상용화되어 

당시 빠르게 보급되던 인터넷망과 게임방 등을 기반으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리니지’의 성공적 상용화 이후 엔씨소프트는 사업을 확장해 2000년 여름에 미국 지사를 설립하고, 

송재경은 미국 지사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에서는 이미 에버퀘스트 등의 온라인 게임이 인기를 얻고 있었던 시기인데다, 

사업이나 마케팅면에서의 미숙함까지 겹쳐 2D 게임인 ‘리니지’는 북미 시장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반면 대한민국 내에서는 리니지가 히트 게임으로 자리잡아,

엔씨소프트가 대기업으로 성장하는데 확고한 캐시카우(cash cow) 역할을 해주게 된다.

엔씨소프트와의 결별
송재경은 2002년 말, 김택진 대표와의 불화로 엔씨소프트를 퇴사하게 되었다.

그는 엔씨소프트와 결별하기 전 자신의 지분 0.73%(시가 45억원)를 처분했는데,

그가 매각한 가격은 대략 33,000원 가량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후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계속 올라, 2012년에는 374,000원까지 오르게 된다.

엑스엘게임즈
엔씨소프트와 결별한 후, 송재경은 자신의 회사 엑스엘게임즈를 설립하였다. 

이 회사는 첫 프로젝트로 온라인 레이싱 게임 'XL1' 을 3년에 걸쳐 개발하고 

2006년 네오위즈를 통해 서비스하게 되지만, 참담한 실패를 맛보게 된다.
송재경은 또다시 2011년 MMORPG 아키에이지를 공개하고 장기간의 베타테스트를 거쳐 

2013년 1월 정식서비스를 시작하지만, 밸런스 붕괴 및 운영 미숙 등

수많은 문제를 낳고 기대 이하의 흥행을 거두고 만다.
엑스엘게임즈는 많은 자금이 투입된 아키에이지의 개발이 장기화되면서 

2012년부터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려 왔다.

이에 그는 협력사인 네오위즈로부터 긴급히 200억원을 대여받는데 성공하지만

아키에이지 상용화 후에도 흥행에 실패하자

결국 550명 중 100명을 해고하는 큰 규모의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된다.
2014년 현재 송재경은 차기작 '문명 온라인' 및 '프로젝트 Q1'이라는 모바일게임을 제작중에 있다.

평가
대한민국에서는 온라인 게임의 선구자로서 2000년대 전후로 큰 영향력을 미쳤던 인물이다. 

그가 개발한 바람의 나라는 연매출 650억원의 넥슨을 일으키는 기틀이 되었고,

리니지는 엔씨소프트가 대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거의 유일한 수익원이 되었다.

이처럼 국내 게임회사 중 두 곳의 대기업을 키워내는데 초석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공헌은 지대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바람의 나라를 완성하고도 회사를 그만 두어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했다는 점, 

엔씨소프트의 주식을 너무 저가에(고가 대비 10분의 1) 처분하였다는 점에서 

막대한 공헌에 비해 금전적인 이득은 미미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자신의 회사를 차린 후에는 성공적인 작품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다, 

게임시장이 모바일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PC용 온라인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점 역시

앞날을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이에 대해 송재경은

“제가 개발 능력만큼 돈 버는 재주는 없는 것 같아요”라고 스스로를 평가하기도 했다.

연표
1986.02 신일고를 졸업하였다.
1990.02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였다.
1991~92 유닉스와 X11 환경에서 한글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터미널 에뮬레이터 한텀을 개발하였다.
1992.02 KAIST에서 전산학 석사를 취득하였다.
1992~93 KAIST에서 전산학과 박사과정을 다니다 중퇴하였다.
1993 한글과컴퓨터에 입사하여 멀티플랫폼 GUI Toolkit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에서 일했다.
1994.12 넥슨을 김정주와 공동 창업하여 

세계 최초의 머그(MUG:Multi User Graphic Dungeon)게임 바람의 나라를 개발하였다.
1996.09 아이네트(현재 PSI넷)에서 김민수와 함께 리니지 개발을 시작하였다.
1997.12 엔씨소프트에 입사하였다. (이후 송재경이 개발하던 리니지는 엔씨소프트에서 완성하여 공개됨)
2001.05 엔씨소프트의 미국 법인 엔씨 오스틴에서 타블라 랏사 프로젝트에 참가하였다.
2003.04 엔씨소프트에서 퇴사하고 자신의 회사 "XLGAMES(엑스엘게임즈)"를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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