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제로 (햐쿠타 나오키, 2014)

시나리오/역사|2022. 7. 11. 11:00

책소개
<꿈을 파는 남자>, <빛나는 밤>의 작가 햐쿠타 나오키 소설. 전쟁 속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살아 돌아가고 싶었던 한 사나이의 처절한 이야기로, 2013년 일본에서 영화화되었다. 미드웨이에서 필리핀 전선까지 디테일한 전쟁 묘사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목차
프롤로그

1. 망 령
2. 겁쟁이
3. 진주만
4. 라바울
5. 과달카날
6. 누드 사진
7. 광기
8. 오카(벚꽃)
9. 가미카제 어택
10. 아수라
11. 마지막 순간
12. 유성

에필로그
옮긴이의 글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쟁 속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살아 돌아가고 싶었던 한 사나이의 처절한 이야기 《영원의 제로》

고작 칠십여 년 전의 일이다. 그 전쟁은 지금의 일본 사회를 살아가는 오륙십 대의 부모 세대가 경험했던 가장 극적인 현대사의 장면들이었다. 단 한 치의 에누리 없이 예약된 죽음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던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이 살았던 시절이다. 역자가 아는 한에서 여기에 묘사된 가미카제들의 모습과 그 행동 양식은 사실적이다. 작가는 최대한 공정한 태도로 그들의 말과 행동을 재구성했다. 그리고 아주 잘 썼다. 감동적이다. 같은 운명 아래 놓인 인간끼리 나누는 우정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눈물겹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천황, 국가, 군부 권력들에 대한 분노도 격하다. 패배의 역사에 대한 짙은 아쉬움도 있다. 미드웨이 해전은 결코 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전력이 약하지는 않았다. 다만 최고지휘관들의 자질이 떨어졌을 전력이 약하지는 않았다. 다만 최고지휘관들의 자질이 떨어졌을 따름이다. 좀 더 분석적이며 냉철하고 용맹하게 대처했더라면 일본 해군은 미 해군을 무찌르고 태평양의 지배권을 확고히 할 수 있었을 테고, 그랬더라면 그 전쟁에서 그리도 허망하게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는 곳곳에서 그런 아쉬움을 토로한다. 아메리카와 '맞짱'을 뜬 나라가 있었던가? 그런데 일본 해군은 하와이까지 날아가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미 해군을 거의 빈사 상태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태평양을 무대로 한때는 거의 주도권을 쥐고 싸웠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렇다, 대단하다. 그렇지만 졌다. 너무 아쉽다. 그런 한스런 감정이 묻어난다. 평범한 일본인이라면 한 번쯤은 가졌음직한 감상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제로센은 호리코시 지로라는 천재적인 공학도가 설계한 함상전투기이다. 그 당시 세계의 어떤 전투기보다 뛰어난 항속거리와 스피드로 하늘을 주름잡고 미군기를 곤경에 빠뜨렸다. 그러나 그 전투기는 방어력이 약했다. 조종사를 보호하는 기능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이 기계를 기획하고 제작한 집단이 조종사를 전쟁의 소모품으로 여겼음을 말해준다. 비단 조종사만이 아니다. 국민이란 전쟁에 필요한 도구나 자재에 지나지 않았다. 국가나 군 권력자의 그런 인식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가미카제 생환자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하듯이 그런 기류는 1930년대 중반부터 견고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2.26사건실패로 끝난 군사 쿠데타의 사상적인 배경이 된 기타 잇키北一輝의 '국가개조론'을 비롯한 여러 국가주의 사상이 표 나게 또는 암암리에 그 강령의 첫머리에 두었던 사고는 '국가에 대한 국민의 완전 복종'이었다. 그리고 그 국가는 모든 것을 주도하는 특권집단과 동의어였다. 체제의 정치가들, 군 최고위와 참모본부였다. 그들의 나라였다. 그들은 집요하게 언론을 통제하고 반대파들을 구석으로 몰아넣거나 살해하면서 국민의 의식을 한 곳으로 몰아가며 세뇌했다. 위대한 일본이 위태롭다고, 하나가 되어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위대한 일본의 존속을 위해서. 그렇게 위기를 강조했다. 국민은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도 그들의 폭주를 막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반대파가 없었다. 그 결과 '가미카제 특공'이라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나왔고 실행되었다.
그러나 국민의 내면은 그렇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그 국민들은 어제까지 환호를 보내고 찬양했던 전쟁영웅들을 매몰차게 부정해버렸다. 그 집 대문 앞에 세워둔 영웅 찬양 팻말을 뽑아버린다. 박수를 치던 그 손으로. 그것은 결코 배신행위도 아니었고, 새로이 등장한 미군정 권력에 대한 아부도 아니었다. 억눌렸던 솔직한 생각과 감정의 표현이었을 따름이다.

작가는 거의 상식이나 다름없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잘 알 것이다. 그러므로 군 최고위나 참모본부에 대한 울분을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토로하는 것이리라. 그렇지만 작가는 어중간한 선에서 타협하고 만다. 국민을 지배한 그들과 무작정 죽음으로 내몰린 특공대원들을 나라 위해 싸운 영령으로 통합해버린다. 국가주의 시대와 그 사상에 대한 철저한 분석도 비판도 없고, 그것을 넘어선 새로운 비전도 제시하지 않는다. 물론 소설가가 그 모든 것을 고민하고 제시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둘을 적당하게 통합해버리는 정신이 참모본부나 군 최고위와 체제의 정치가들을, 그 광기의 전쟁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비평할 수 있을까? 그것으로는 일본이라는 특수성과 인류사의 보편적 관점을 동시에 아우르며 그 시대를 해석해낼 수 없을 것이다. 미군이 침공한 오키나와에서 수많은 민간인과 병사들이 허망하게 죽었다. 이른바 나라를 위해서. 그들은 일본 국민이다. 그들과 전쟁을 주도한 군부를 동일선상에서 평가하고 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라는 곳이 있다. 메이지 천황의 지시에 따라 만들어진, 일본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을 모신 종교시설이다. 거기에 '가미카제 특공'이라는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작전을 기획하고 실행하여 수많은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전범들과 국가의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제로센 또는 다른 방식으로 특공을 감행했던 병사들이 같이 있다. 그곳에 아베 총리나 주류 정치가들이 가서 열심히 참배한다. 그들 입장에서는 어느 한쪽도 버릴 수 없다. 나라를 위해 싸워줄 기특한 국민과 무한한 권력의 결합이야말로 그들의 이상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작가는 거기에 참배할까?

제로센을 설계한 호리코시 지로를 다룬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영화 〈바람이 분다〉를 비판하는 기사를 보았다. 오페라 〈나비부인〉이 일본과 관련되었다고 해서 예정된 상영을 중단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참 어렵고 난감한 문화적 상황이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한국인 일반의 일본에 대한 인식이나 감성이, 지난 역사에 대한 사고가 편협하고 궁핍해서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거기에도 그럴 만한 역사가 있다. 《영원의 제로》 또한 위 두 작품과 비슷한 평가의 대상이 될지 모르겠다. 이 소설은 일본에서 최고의 베스트셀러이다.
분명한 것이 있다.
지금 우리가 이런 역사에 대한 해석의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돌파해야 할 시대적 변곡점에 놓였다는 사실이다.
- 옮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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