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아이돌론 (사이토 미나코, 2017)
책소개
20세기 후반 일본문학 전성기의 스타작가 8인을 그 시대와 연결해 서술한 문예평론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듯 '문단의 아이돌'의 배후에는 그들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저널리즘과 수많은 독자가 존재하고 있었다. 저자 사이토 미나코는 '문단의 아이돌'이 어떤 식으로 평가받고, 보도되었는가를 들여다보고 나아가 그렇게 논해진 이유를 고찰함으로써 그들을 만들어냈던 일본의 1980~90년대를 통찰한다.
제1부에서는 거품경제 시기에 경이로운 베스트셀러를 냈던 세 명의 작가(무라카미 하루키, 다와라 마치, 요시모토 바나나), 제2부에서는 ‘여성 시대’를 상징하는 두 명의 여성 논객(하야시 마리코, 우에노 지즈코), 제3부에서는 '작가'라는 틀을 넘어 폭넓은 분야에서 언론 활동을 펼친 세 명의 지식인(다치바나 다카시, 무라카미 류, 다나카 야스오)을 살펴본다.
목차
들어가며 | 아이돌은 만들어지는 것
제1부 문학 거품의 풍경
> 무라카미 하루키 · 게임 비평 삼매경 <
레벨 1: 우선 분위기 비평부터 | 레벨 2: 퍼즐을 풀어보자 | 레벨 3: ‘게임 도사’가 되어보자 | 레벨 4: 나도 공략본을 써보자 | 게임기의 스위치를 끈 후
> 다와라 마치 · 불러라 춤춰라 J포엠 <
다와라 마치는 중장년층 남성의 아이돌이었다 | 광고 카피 문화와 포엠 문화 | 유민의 세계관을 방불케 하는 언어 감각 | 미국적인 라이트 감각과 일본적인 촌스러움 | 씩씩한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청춘 문학 | J포엠의 전통과 유행
> 요시모토 바나나 · 소녀 문화라는 지하 수맥 <
급진적 문체와 보수적 내용 | 요시모토 바나나는 팬시상품 | 바나나 월드는 코발트 문학? | 작가 이름과 저자 후기라는 메타 메시지 | BANANA라는 수출품 | 여자아이의 나라에서 온 에일리언
제2부 여성 시대의 선택
> 하야시 마리코 · 신데렐라 걸의 우울 <
『룰루랄라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자』가 안겨준 충격 | 여자의 계층 이동에는 엄격한 일본 | 추잡한 남녀 관계를 전문으로 그리는 작가? | 신데렐라 걸의 변절과 숙명
> 우에노 지즈코 · 바이링갸루의 복수 <
‘B형 지즈코’라는 착각 | 안에도 밖에도 일곱 명의 적!? | ‘A형 지즈코’가 승리한 까닭 | 마지막 우먼 리브 투사 | 선두 주자의 그 후
제3부 지식과 교양의 편의점화
> 다치바나 다카시 · 신화가 된 논픽션 <
가난한 르포라이터가 인기를 얻던 시대 | 부자 라이터가 가난한 라이터를 이긴 날 | 조직 연구에서 인간 탐구로 | 오타쿠와 건달의 줄다리기 | 다치바나 다카시의 약점 | 건달과 양아치의 세대 간 항쟁!?
> 무라카미 류 · 5분 후의 뉴스쇼 <
‘조잡 파워’의 존재감 | 와이드 쇼적인 안테나 | 두 명의 무라카미라는 픽션 | 작가가 픽션이라는 무장을 풀 때
> 다나카 야스오 · 브랜드라는 이름의 사상 <
미움받는 캐릭터 | 카탈로그 문화는 신형 르포르타주 | 브랜드=고유명사란 무엇인가 | ‘이다/입니다’의 만담 콤비 | 시골 소년의 ‘젠장할’ 주의 | 『느낌 어쩐지 크리스털』화가 진행된 21세기 사회
나오며
옮긴이의 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문학 거품기의 총아' 무라카미 하루키부터 ‘여성 시대의 기수’ 우에노 지즈코
'지식과 교양의 편의점화' 다치바나 다카시까지 ‘문단의 아이돌’은 만들어진다!
『문단 아이돌론』은 20세기 후반 일본문학 전성기의 스타작가 8인을 그 시대와 연결해 서술한 문예평론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듯 ‘문단의 아이돌’의 배후에는 그들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저널리즘과 수많은 독자가 존재하고 있었다. 저자 사이토 미나코는 ‘문단의 아이돌’이 어떤 식으로 평가받고, 보도되었는가를 들여다보고 나아가 그렇게 논해진 이유를 고찰함으로써 그들을 만들어냈던 일본의 1980~90년대를 통찰한다. 제1부에서는 거품경제 시기에 경이로운 베스트셀러를 냈던 세 명의 작가(무라카미 하루키, 다와라 마치, 요시모토 바나나), 제2부에서는 ‘여성 시대’를 상징하는 두 명의 여성 논객(하야시 마리코, 우에노 지즈코), 제3부에서는 ‘작가’라는 틀을 넘어 폭넓은 분야에서 언론 활동을 펼친 세 명의 지식인(다치바나 다카시, 무라카미 류, 다나카 야스오)을 살펴본다.
논리적인 분석으로 신선한 관점을 제시하며 문단이나 논단의 성역을 가리지 않고 신랄한 비평을 가하는 평론가 사이토 미나코는 이 책에서 ‘문단의 아이돌’ 8인을 통해 20세기 후반 일본 사회의 배후에 흐르던 사상의 맥락을 밝혀낸다. 서평, 작가론에서 가십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자료를 적확하게 인용하면서 그 안에 가벼운 독설을 섞는 사이토의 글은 독특하면서도 매우 날카롭다. ‘한 사람의 글쓰기’를 우상으로 만들어내는 시대의 배경을 파고든 이 책은 문화론이자 뛰어난 시대론이기도 하다.
무라카미 하루키
낙서장이 놓인 골목길 다방에서 게임기가 가득한 거대 오락실로
거품경제기 사랑받았던 문단의 총아
현재에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특히 1980년대 후반 무라카미 하루키는 신드롬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였다. 1988년 일본의 연간 베스트셀러 1위와 3위는 각각 『노르웨이의 숲』과 『댄스 댄스 댄스』였고, 두 작품 모두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그저 잘 팔리는 데 그치지 않고 본격적인 작가론부터 팬클럽 수준의 잡지까지 하루키의 이름이 들어간 단행본만 해도 50권이 넘게 발행되었다. 사이토 미나코는 ‘하루키는 왜 잘 팔렸는가’보다(왜 잘 팔렸는가에 대한 논문이나 수필은 이미 발에 차일 정도로 많기 때문에) ‘왜 잘 논해졌는가’에 집중하면서 그 이유가 하루키 작품의 특징인 ‘게임성’에 있다고 말한다.
초기 하루키 작품(『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은 기분 좋은 인테리어 소품과 낙서장이 놓인 마음 편한 골목길 단골 다방을 연상케 했다. 누구라도 가볍게 들러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평화로운 살롱. 그 결과 낙서장에 휘갈겨 쓴 듯한 비평이 탄생했다. 그런데 곧 이 다방에 개점 때 있었던 소품 외에 여러 가지 게임기가 추가된다(『양을 쫓는 모험』). 다방 주인과 같은 세대(베이비 붐 세대 비평가)들은 이곳에 ‘1970년, 전공투, 상실, 소외, 자폐’ 등 자신들이 좋아하는 단어가 숨겨져 있음을 깨닫고 신나서 ‘게임 해설’ 경쟁에 돌입한다. 쓸데없이 복잡한 ‘본격적 비평 시대’의 개막이다. 이후로도 증개축을 반복하며 더욱더 많은 퍼즐과 게임이 추가된 하루키 랜드는 90년대 중반이 되자 게이머들로 북적거리는 오락실(『태엽 감는 새』)로 변모한다.
저자는 구조주의 비평과 포스트 구조주의 비평이 알려지던 때인 1980년대 일본 문학계에 하루키의 문학이 ‘탈구조’ ‘포르말리즘’ ‘간텍스트성’ 같은 유행 비평 이론을 응용할 텍스트를 완벽하게 제공했다고 말한다. 어린이 게임 마니아가 ‘드래곤 퀘스트’에 열중하듯 어른 문학 마니아는 하루키 작품 속에 숨겨진 비밀을 찾으며 ‘하루키 퀘스트’에 열중했다. 또한 1980년대 후반은 일본의 거품경제가 최절정에 달한 시기. 평소 문학은 쳐다보지도 않던 저널리즘도 취재에 열을 올렸고 문학에는 관심이 없으나 게임에는 자신이 있는 손님들(‘신인류’ 이후 세대 비평가)까지 몰려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둘러싼 비평 게임은 점점 광기와도 비슷한 모습으로 번져가서 더 이상 비평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게임 공략본들’이 난무하게 되었다.
사이토 미나코는 냉정하게 이 현상을 살펴보며 당시의 비평가들이 진정으로 작가와 대등하고 생산적인 관계를 맺었다고 할 수 있는지 묻는다. 물론 대답은 회의적이다. 덧붙여 ‘하루키 랜드’는 시종일관 ‘보쿠(僕)’라는 남성 일인칭으로 상징되는 ‘남자아이들의 세계’. ‘여자아이들의 세계’와는 괴리감이 있었다고 평가한다.
하야시 마리코와 우에노 지즈코
남성 중심 사회의 ‘신데렐라 걸’과 ‘바이링갸루(bilingual+girl)’
‘여성 시대‘가 낳은 두 명의 여성 논객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에는 ‘여성 시대’라고 불리던 시기가 있었다. ‘여성의 새로운 삶의 방식’이 제창되었고 여성의 자립, 커리어우먼, 자유분방한 여자 같은 말이 유행했다. 이 시기에 하야시 마리코가 등장했다. 카피라이터로 일하던 그녀는 데뷔작 『룰루랄라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자(1982)』가 50만부 이상 팔리면서 순식간에 스타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일류 대학 출신도 아니고 미모가 뛰어난 것도 아니지만 적극적인 태도와 실력으로 기회를 잡은 ‘성공한’ 사람. 그녀는 왕자님 없이 순식간에 계층 이동에 성공한 ‘신데렐라 걸’이었다.
하야시 마리코가 작가로 데뷔한 해에 우에노 지즈코도 『섹시 걸의 대연구』를 출간했다. 학문 세계에서 세속 언론의 세계로 ‘강림’한 그녀는 딱딱한(학문 세계/남성=‘A형’) 언어와 부드러운(저널리즘/여성=‘B형’)의 언어를 모두 다룰 수 있는 바이링갸루(bilingual+girl)로 통했다. 처음부터 ‘인텔리 남자 어른’을 같은 편으로 두었던 그녀는 80년대 후반 ‘B형 지즈코’로 펴낸 책들이 성공을 거두며 유명해졌다.
두 사람은 출발점부터 달랐고 세간의 평가도 달랐다. 하야시 마리코는 남자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냈지만 오히려 남자 사회의 강한 공격을 받았다. 언론과 세상은 여자의 신분 상승에 관용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에노 지즈코는 남자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했음에도 남자 사회 내에서 앉을 자리를 확보했다. 그녀가 ‘남자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공적인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성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1980년대의 남자 사회가 우에노 지즈코를 ‘남자 사회에 도움이 되는 페미니스트’로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양극과 음극의 관계를 이루었지만, 고지식한 영감들을 상대로 싸웠다는 점은 같다고 사이토는 말한다. 다시 말해 ‘여성 시대’라고 불리는 시기에도 그 이면에는 여자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다치바나 다카시
부자 라이터로 출발해 ‘지식의 거인’이 되다.
‘오타쿠’의 시대에 ‘지식의 편의점화’를 이룬 작가의 승리
다치바나 다카시는 『분게이슌주』에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그 금맥과 인맥(1974)」라는 기사를 발표한 후 일약 ‘거대 악을 파헤치는 정의의 언론인’이 되었다. 1970년대는 직접 발로 뛰어 취재하고 글을 쓰는 가난한 르포라이터의 르포르타주가 인기를 끌었지만 그는 많은 취재 기자를 투입해 자료를 수집한 뒤 자신은 집필에만 집중하는 ‘부자 라이터’의 방식으로 일했다. 직접 취재하지 않는다는 점, 정치적 입장이 분명하지 않은 점을 좋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자 시대는 다치바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뀌어갔다. 개개인의 의견을 꼼꼼히 모아 엮은 충감도(蟲瞰圖)보다 높은 위치에서 단숨에 구조를 전망하는 조감도(鳥瞰圖)를 사람들이 선호하게 되었고, 호황기에 자신의 사회경제적 위치를 중산층으로 여기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아지면서 기존의 르포르타주를 사상적으로 지탱하던 반체제, 반권력의 자세에 공감하는 사람이 적어진 것이다. 이런 때에 미국으로 건너가 아폴로 우주선의 비행사들을 직접 인터뷰한 논픽션 『우주로부터의 귀환(1983)』을 내놓을 수 있는 ‘부자 라이터’ 다치바나의 명성이 높아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치바나는 저널리즘 세계와 학문 세계 모두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문과와 이과를 아우르는 폭넓은 지식의 탐구자’로 추앙받았다. 저자는 그의 자료를 부감하면서 놀랐다고 하는데, “비판다운 비판이 거의 보이지 않고, 가끔 비판이 있으나 품위 없는 트집 잡기라 비판자의 낮은 수준만 강조할 뿐이고, 다치바나 다카시 주변을 에워싼 칭찬자와 비판자가 대부분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치바나는 진정으로 ‘문과와 이과를 완벽하게 아우르는 지식의 거인’이었을까? 저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문과 쪽 일은 하루하루의 사회 시평 등으로 적당히 해치우고 이과 쪽 일은 대대적으로 준비해 수행했다. 게다가 이과 쪽 일도 생물학과 우주론과 첨단 기술 분야에 치우쳐 있다. 즉, 다치바나 다카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문과학적) 관심을 생물학적(자연과학적) 접근 방식으로 풀어보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한 시도는 언론계의 다수를 차지하는 인문계 지식인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을 것이고, 자신의 업적을 대중에게 알리는 일이 쉽지 않은 과학자 입장에서는 놓치기 싫은 기회였을 것이다.”
한 예로 다치바나는 그의 저서 『환경호르몬 입문(1998)』에서 동성애, 섹스리스, 육아를 포기한 어머니, 폭력적 중학생까지 모든 원인은 환경호르몬에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그의 책에서 보이는 동성애 차별, 우생 사상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지만 무엇보다 인문과학, 사회과학적 지식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1970년대 그의 저작 다수에도 ‘여자와 어린이 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함을 언급한다.
저자는 자연과학계와 인문과학계로 분단된 언론계였기에 다치바나 같은 ‘지식의 거인’이 군림할 여지가 생긴 것이 아닌지, 또한 1980년대 초 건달(낡은 유형의 저널리스트)의 시대에서 오타쿠(학자 또는 스스로를 학자적 정신의 소유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시대로 넘어가며 각 장르가 전문화되는 가운데 다치바나 다카시만은 ‘지식의 편의점’으로 보였기 때문에 그가 돋보였던 것이 아닌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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