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역사 (미셸 푸코, 1999)

과학/의학-건강|2022. 12. 21. 12:00

목차
001. 광인의 항해
002. 대감금
003. 광인들
004. 열정과 정신착란
005. 광기의 여러 형태들
006. 조증과 우울증
007. 히스테리와 히토콘드리아


정신병원과 정치권력의 함수 풀이
병원이 병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별 일 아닌데도 병원에 자주 가다 보면 괜히 몸에 병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얘기다. 물론 여기에는 과잉 진료를 일삼는 일부 악덕 의사들도 한 몫 한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그 말은 곧 병이라는 것이 과연 고정된 정의와 실체가 있는가 하는 점을 생각케 한다.

18세기 말 제너가 종두법을 발견하기까지 천연두는 질병이 아니라 신이 내린 형벌이었다. 고칠 수 없는 병은 병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질병에 대한 규정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지금은 천연두가 거의 소멸했기에 전과는 다른 의미에서 질병이 아닌 것이 되었다).

정신 질환의 경우에는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옛날에는 정신 질환을 질병으로 여기지 않았으며, 그것을 담당하고 치료할 수 있는 의사도 없었다. 게다가 천연두와는 달리 정신 질환은 시대마다 그 정의나 '처리 방식'(질병이 아니므로 '진료 방식'이 아니다)이 여러 차례 달라졌다. 따라서 정신 질환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푸코(Michel Foucault, 1926-84)의 <광기의 역사>는 바로 광기를 역사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중세 시대에 광기는 질병은커녕 오히려 특별한 재능으로 간주되었다.

"이성적이고 지혜로운 사람일지라도 단지 부분적인 지식만을 가질 수 있을 뿐이었으나, 광인은 지식을 깨지지 않은 완전한 공처럼 원형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중세의 사람들은 광인이 예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지금 세기 말을 맞아 노스트라다무스가 새삼 인기를 끌고 있으나 중세의 예언자들은 모두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광인이었던 셈이다.

그러다가 중세를 지나 근대로 들어오면서 광기에 대한 규정과 광인의 처우는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한다.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은 1656년 파리에 종합병원이 처음으로 세워진 것이다. 이때부터 광기는 질병이 되고 광인은 수난을 겪게 된다. 병원이 생겼는데 수난이라니?

당시의 종합병원은 오늘날과 같이 질병을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가두는 집단 수용소였던 것이다(어쨌든 오늘날의 종합병원이라는 말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당연히 광인들도 종합병원에 수용되었다.

종합병원은 치료 기관이 아니라 일종의 감옥이었다. "그것은 유사 법률적인 구조를 가진 행정 기관으로서 기존의 권력 체계에 따르는 법정 밖의 선고와 판결의 주체였다." 즉 종합병원은 법정은 아니었지만 법정과 같은 구속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17세기부터 광인은 윤리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취급하여 일반 죄수처럼 가둘 수 있게 되었다.

광기를 정신 질환으로 보게 된 것은 19세기에 정신분석학이 발달한 덕분이다. 이 때부터는 광기를 정신 질환으로 취급하여 광인을 정신병원에 (수용이 아니라) '입원'시키고 치료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회는 그만큼 발전한 것일까? 푸코는 <광기의 역사>를 통해 사회의 발전을 얘기하려 한 것일까? 오히려 그 반대이다. <광기의 역사>에서 푸코가 말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지식의 문제이다. 흔히 지식은 그것이 설명하고자 하는 대상(사물이든 사건이든)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도는 현상에서 지동설이 나왔다는 식이다. 하지만 지구는 언제나 태양의 주위를 돌았는데도 그 현상을 설명하는 지식은 고대 그리스의 지동설에서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로, 다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 계속 바뀌어 왔다.

마찬가지로 중세 시대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광기는 언제나 변함 없이 존재해 왔지만, 광기를 규정하는 지식은 계속 달라져 왔다(예지적 재능-윤리적 결함-정신 질환). 따라서 지식의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지식의 흐름 그 자체, 푸코의 용어로 말한다면 담론(discours)이다.

또 한 가지는 지식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는 권력의 문제이다. 중세의 광인은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라고 간주되긴 했으나 특별히 배제되거나 탄압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르네상스를 계기로 인간 이성이 깨어나면서 광기를 규정하는 지식이 달라지자 광인에게 작용하는 권력의 성질도 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19세기에 정신분석학의 지식이 발달하고 정신병원이 생겨나면서 그 권력은 다시 변했다. 결국 광인을 취급하는 방식(권력의 작용)은 방치에서 감금으로, 감금에서 치료로 시대에 따라 다르게 행사되어 왔다는 얘기다.

푸코의 성과는 이렇게 지식과 권력이 불가분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는 데 있다(프랑스어를 조금이라도 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지식savoir과 권력pouvoir은 모두 영어의 can에 해당하는 조동사이다).

그렇게 보면 <광기의 역사>를 통해 푸코는 실제로 '광기의 역사'를 분석하는 동시에, 그것을 지식의 본질과 권력의 작용을 분석하는 데 필요한 하나의 커다란 사례로 삼았다고 할 수도 있다. - 남경태(전문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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