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청을 설립하라 - 한 인문학자의 역사적 알리바이 (박상익, 2018)

언어/일본어|2022. 11. 10. 18:00

책소개
저자는 <번역은 반역인가>라는 책으로 번역을 통한 한국어 콘텐츠 확충의 중요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몰이해가 21세기 한국의 앞날에 걸리돌이 되리라는 암울한 전망과 대안을 담았고, 그 책의 의미와 내용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책이 나온 지 12년이 지났지만 한국사회의 번역에 대한 인식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이를 개탄하며 그간 줄곧 써온 번역을 통한 한국어 콘텐츠 확충의 중요성을 주장한 글들을 모아 작은 책을 펴냈다.


목차
머리말: 영어로 읽을 수 있는데 왜 번역해?
모국어와 민족 이상
조선말 수업에 반발한 제1고보 수재들
번역청 설립, 서둘러야 한다
세종대왕이 지금 살아온다면
일본보다 128년 늦게 번역된 보수주의 경전
번역으로 역사 변혁의 스타 게이트를 열자
하멜의 교훈
우리 역사의 단절
정체성 발견과 새 역사 창조
번역은 국가 경쟁력
부끄러운 무임승차 이제는 그만둬야
인간은 모국어를 사용할 때 가장 창의적이다
비非독서 국민의 탄생
불통의 인문학
인문학, 지금부터 ‘새 역사’를 써야
맺음말: 나의 역사적 알리바이


출판사 제공 책소개


모국어만 읽어도 노벨상을 탈 수 있는 나라
지난 2016년 오스미 요시노리 도쿄공업대학교 명예교수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으면서 일본은 3년 연속으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일본이 노벨상 수상자를 지속적으로 배출할 수 있는 배경은 국가 정책, 일본의 독특한 문화, 학계의 노력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 모든 이유에 바탕이 되는 한 가지를 꼽는다면 ‘번역’이 아닐까 합니다. 일본은 공부하는 사람들이 읽지 않으면 안 되는 모든 학문 분야의 기초 고전과 주요 도서들이 일본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번역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거죠. 번역된 콘텐츠는 마치 공기와도 같아서 풍부한 양질의 번역 콘텐츠를 보유한 일본의 학자들은 좋은 공기를 한껏 마시며 연구할 수 있는 셈입니다.
우리가 사는 한국은 어떨까요. 번역된 콘텐츠를 만드는 출판 시장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출판사들은 아무래도 ‘팔릴 만한’ 책들을 중심으로 책을 펴낼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그렇다면 공익사업을 수행해야 하는 정부는 지적인 한국 사회의 토대랄 수 있는 번역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한국연구재단에서 운영하는 명저번역사업 정도가 유일한데, 그나마도 2011년의 24억 원에서 2017년에는 10억여 원으로 예산이 감소해서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에서 ‘전셋값’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제라도 번역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이유
박상익 선생은 번역을 통한 한국어 콘텐츠 확충의 중요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몰이해가 21세기 한국의 앞날에 걸림돌이 되리라는 암울한 전망과 대안을 담은 책 『번역은 반역인가』를 쓴 이후로도 한국어 콘텐츠 확대를 위해 정부에서 번역 지원 사업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꾸준히 내 왔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번역은 반역인가』를 낸 지 12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의 번역 환경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선생은 “누군가의 말처럼 100년 후 한국어가 경쟁력을 잃게 될 경우, 후손들이 지금의 우리를 못난 조상으로 지목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탄식하면서 번역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진지한 의제로 다루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의지와 희망을 담아 자신이 쓴 글들을 모아 『번역청을 설립하라:한 인문학자의 역사적 알리바이』를 펴냈습니다. 선생은 번역 문제와 관련해 어떤 단체나 유력자의 힘에 의존할 의향이 없으며 오직 한국어를 쓰는 공동체의 지속적 번영을 위한 토대를 만드는 데 단단한 벽돌 하나를 쌓는 심정을 밝힙니다. 그리고 적어도 이 시대에 모국어를 저주하고 망치는 자들의 대열에 서기를 거부한 사람이 있었다는 물증 하나는 후대에 남겨야겠다는 비장한 소회를 털어놓습니다. 유유는 이런 선생의 주장에 깊이 공감하며 번역 사업을 국가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선생의 주장과 그 근거를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널리 알려 대안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작은 책을 펴냅니다.(구체적인 주장과 근거는 선생이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올린 아래 글에 잘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이 우리 시대 ‘한 인문학자의 역사적 알리바이’로만 남지 않도록 뜻을 모아 주시기를 한국어를 쓰는 모든 독자들께 간곡히 바랍니다.


저자가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올린 글

번역청을 설립하라
1. 미개한 중세 유럽은 선진 이슬람 문명의 학문적 성과물을 대대적으로 번역함으로써 스승인 이슬람 문명을 추월하고 나아가 근대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역사학자들이 ‘12세기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사건이지요. 번역을 통해 후발 문명이 선진 문명을 추월한 대표 사례입니다. ‘번역 왕국’ 일본에는 전 세계의 지식이 거의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번역되어 있어서, 모국어만으로도 노벨상을 탈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번역은 일류 국가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선행 조건입니다. 번역은 국력입니다.
2. 전 세계 언어학자들이 인정하듯 한글은 가장 과학적입니다. 그러나 ‘콘텐츠’가 부족한 게 큰 약점이지요. 온 시민이 한국어만으로 전 세계의 지식·정보를 습득할 수 있게 하는 일은 세종대왕의 후손들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명이자 책무입니다. 번역은 지식 민주주의의
기반입니다. 지식 민주주의가 빠진 민주주의는 온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없습니다.
3. 자동번역기 시대가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계도 학습을 해야 합니다. 마중물이 필요한 거죠. 번역물이 다량 확보된 언어일수록 자동번역기 성능이 좋아집니다. ‘알파고’도 수백만 개의 기보를 학습한 끝에 놀라운 실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을 제대로 하려면 지금이라도 양질의 번역 텍스트를 대대적으로 확보해야 합니다. 역사에는 ‘월반’이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착실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4. 서양의 동양학 연구자들은 연구 대상 동양 고전이 자국어로 번역되어 있지 않은 경우 고전 텍스트 번역 작업을 최우선시합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중국학과 한국학 전공의 석사·박사학위 논문 절반 이상이 번역으로 채워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번역을 학문적 업적으로 인정조차 하지 않지요. 그들에게 동양학이 외국학이듯, 우리에게는 서양학이 외국학입니다. 서양이 동양을 자신들의 언어로 번역하여 콘텐츠를 확대하듯이, 우리 또한 전 세계의 정보와 지식을 모국어로 옮겨 콘텐츠를 축적해야 합니다. 그것은 모국어에 대한 의무입니다.
5. ‘번역청’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국립번역원’도 좋고 ‘번역위원회’도 좋습니다. 번역을 시장에 맡길 수 없습니다. OECD 가입국 중 일인당 독서량 최하 수준인 한국의 출판 시장은 꽁꽁 얼어붙은 빙하기입니다. 번역에 뜻을 둔 우수 인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21세기 지식 정보 사회에서 지식이 고갈된다면 나라의 장래를 낙관할 수 없습니다. 적극적인 정부 개입과 지원만이 악순환에 빠진 번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번역을 도로, 항만, 철도, 통신 같은 사회간접자본으로 인식하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6. 전문 연구자는 자신들의 공부에 필요한 언어를 배워 읽고 써야 하지만 교양과 기초 학문을 두루 섭렵해야 할 시민들이 외국어로 텍스트를 읽을 경우 모국어로 읽을 때보다 학습 능률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 세계 언어학자들이 “인간은 모국어로 사고할 때 가장 창의적이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이유를 되새겨 봐야 합니다.
7. ‘인문학의 위기’란 말이 나온 지가 꽤 오래되었습니다. 한국의 인문학은 ‘학문 후속 세대 단절’을 우려할 정도로 피폐했습니다. 번역 활동은 인문학의 ‘뿌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작업입니다. 민주 시민에게 인문학적 성찰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숙한 시민의식 없이는 민주주의도 발전할 수 없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