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의 역사 (리처드 실라,시드니 호머, 2011)
책소개
원시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장장 4000년에 이르는 역사를 아우르며 금리와 대출 행위의 역사적 추이를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이번 4판은 금리라는 주제에 관한 통찰력이 더욱 깊어진 동시에 시각적 이해도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도표와 표를 더 많이 수록하여 금리의 움직임에 대한 역사적 관점이 한층 강화됐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현대의 금리 자료가 추가로 수록됐으며 개정 3판이 발행된 1996년 이래 10년 동안의 금리 발달 추세에 관해서도 논하고 있다. 과거나 매한가지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금리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오늘날 금리는 각국의 경제와 정치 그리고 금융시장의 건전도를 가늠하는 하나의 척도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 여러분은 금리가 인류 경제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지 그리고 금리에 내포된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목차
감수자 서문
서문-헨리 카우프만 박사
제4판 서문
표 리스트
도표 리스트
개요
제1부 고대
제1장 선사시대와 원시시대의 신용과 이자
제2장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제3장 그리스
제4장 로마
제5장 고대 이자율에 대한 정리 및 분석
제2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유럽
제6장 고리대금에 관한 교리와 이것이 유럽의 신용 형태와 이자율에 미친 영향
제7장 중세(암흑시대)
제8장 중세 후기
제9장 르네상스시대
제10장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서유럽 이자율의 정리 및 분석
제3부 근대 유럽과 북아메리카: 1900년까지
제11장 18세기 영국
제12장 18세기 유럽
제13장 19세기 영국
제14장 19세기 프랑스
제15장 19세기 기타 유럽 국가
제16장 18세기와 19세기 미국
제4부 1900년 이후의 유럽과 북미
제17장 20세기 미국: 1900~1945년
제18장 20세기 미국: 1946~1990년
제19장 20세기 영국
제20장 20세기 유럽: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제21장 20세기 유럽: 스위스, 오스트리아, 스칸디나비아, 아일랜드, 이베리아, 터키
제22장 20세기 캐나다
제23장 1700년 이후 유럽과 북미의 금리 정리 및 분석
제5부 기타 국가 그리고 1990년대
제24장 일본
제25장 파운드화 통용 권역: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파키스탄
제26장 러시아
제27장 중국
제28장 남미 국가
제29장 21세기에 들어서면서: 1990~2005년
주해
홍춘욱(감수)의 말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지식’은 이자율의 중요성뿐만이 아니다. 이탈리아로부터 네덜란드, 영국, 그리고 미국까지 이어지는 선진국 이자율의 역사를 개관함으로써 중앙은행의 역할은 물론 채권 가격 형성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더 나아가 16세기 이후 장기간에 걸친 서구 선진국 이자율의 역사를 개관함으로써, 1980년대에 발생했던 세계적인 고금리 사태가 왜 그토록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또 이후에 왜 선진국 중앙은행이 저금리 기조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했는지 그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게 도와준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자율의 역사”를 “역사적 관점”에서 풀어낸,
4000년간의 장구한 “금융의 역사”를 읽는다.
이자율 추세의 원인과 효과를 추론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금리를 주제로 한 문헌 가운데 이보다 더 포괄적이며 이보다 더 심층적으로 파고든 책은 없다. 그 어디에서도 이만한 정도의 깊이와 범위를 지닌 연구물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 책은 이자율의 기원 지라 할 바빌로니아를 시작으로 그리스, 로마 그리고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장구한 이자율의 역사를 아우르고 있다. - 헨리 카우프만(Henry Kaufman) 박사의 서문에서
“이자율의 역사”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호머는 1963년 《금리의 역사(초판)》를 출간했다. 그 후 개정 2, 3판을 거쳐, 이번 개정 4판은 뉴욕대 스턴 스쿨(경영대학원)의 경제학 교수이자 금융사가인 리처드 실라 교수에 의해 완성됐다. 이 책은 원시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장장 4000년에 이르는 역사를 아우르며 금리와 대출 행위의 역사적 추이를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번 4판은 금리라는 주제에 관한 통찰력이 더욱 깊어진 동시에 시각적 이해도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도표와 표를 더 많이 수록하여 금리의 움직임에 대한 역사적 관점이 한층 강화됐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현대의 금리 자료가 추가로 수록됐으며 개정 3판이 발행된 1996년 이래 10년 동안의 금리 발달 추세에 관해서도 논하고 있다.
과거나 매한가지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금리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오늘날 금리는 각국의 경제와 정치 그리고 금융시장의 건전도를 가늠하는 하나의 척도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 여러분은 금리가 인류 경제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지 그리고 금리에 내포된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를 이해하는 통찰력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자본주의의 출현, 혹은 생산성의 폭발적인 상승(즉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위한 조건은 어떤 것이 있을까? 다시 말하자면 15세기 말 네덜란드(및 영국)와 중국 양쯔강 하류 지역은 1인당 소득에서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왜 한쪽은 승자가 되었고 다른 쪽은 패자의 길을 걸어가야 했는가?
이 의문을 가지게 된 이유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에 요구했던 정책(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이 18세기 말 아담 스미스의 주장을 그대로 빼닮았기 때문이다. 아담 스미스는 그의 저서 ‘국부론’을 통해 18세기 이전 영국 경제가 오랫동안 암흑기를 지속한 이유를 ‘사회적 유인’을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즉 그는 재산권 보장, 특허제도 확립, 낮은 세율, 정부개입 축소 등 이른바 혁신을 유도할 수 있게끔 ‘제도’가 갖춰져야 성장의 기반이 마련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 지적을 그대로 적용하면, 중국이나 한국 등 이른바 동양의 나라들은 기술 혁신을 촉발시킬 효과적인 제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고난의 길을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1971년 미국이 달러화를 금과 일정 비율로 교환해주던 것을 포기한 이른바 ‘불태환 선언’ 이후 금융 위기가 빈번해지자,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의 경제학자들은 금융 위기를 겪은 수많은 저개발 국가를 ‘부흥’ 시킬 목적으로 내수시장 개방, 국영기업의 민영화 및 세율 인하 등의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이후의 역사가 보여주듯, 국제통화기금의 처방은 개발도상국 경제의 성장에 도움은커녕 심각한 피해를 일으키고 말았다.
특히 국제통화기금의 조언과 달리, 볼리비아 등의 일부 국가에서는 국유기업의 제품 가격 인상 등을 통해 국가 재정의 건전화를 꾀한 것이 ‘초인플레이션’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이 되었다. 즉 빈곤의 악순환에 빠진 나라는 부국의 원조가 필요하며, 또 재정을 건전하게 만들기 위한 적절한 조세 제도가 성장에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셈이다. 이처럼,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또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렇다면, 저개발 국가를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하는 핵심 원인은 어떤 것이 있는가? 많은 고민 끝에 ‘에너지?발달된 자본시장?긍정적 인구 변화?사회 안정’이라는 네 가지 요인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특히 이 중에서도 자본시장의 발전이 가장 핵심 요인이라는 것을 이 책(금리의 역사) 덕분에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이자율이 50% 혹은 100%를 넘어서는 상황에서 사회의 경제 활동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며, 특히 은행 등 금융 기관의 중개 기능이 없는 곳에서 성장이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위대한 역사가 토머스 애쉬턴은 다음과 같이 자본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18세기 중반에 경제 발전이 가속화된 단 한 가지의 이유를 찾는다면(물론 한 가지 이유만 찾는다면 잘못된 일이겠지만), 우리는 낮은 이자율에 주목해야 한다. 산업혁명기에 깊게 파고들어간 광산들, 견고하게 지어진 공장들, 잘 건설된 운하와 회사들은 모두 비교적 저렴한 자본의 산물들이었다.”
더 나아가 화폐가 통용되지 않는 곳에서 장기적인 시각에서의 투자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열 개의 상이한 상품만 교역되는 사회를 생각해보자, 주화가 없기 때문에 교역자들은 서로 대응하는 두 상품만을 물물 교환해야 했다. 소 한 마리와 면 여섯 포, 마차 한 대 분의 땔감과 두 가마니의 쌀 등 열 개의 상이한 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 서로 다른 조합은 45가지에 이르기에, 물물 교환의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물 교환에서 더욱 곤란한 점은 누군가로부터 재화를 사려는 사람은 상대방이 필요로 할 무언가를 갖고 있어야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화폐는 교환 과정을 단순화시킨다. 화폐가 있으면 열 개의 가격만 있으면 되고 구매자는 자신의 욕구를 다른 누군가의 욕구와 일치시키기 위해 더는 애쓰지 않아도 된다. 인류가 그토록 오랫동안 화폐 없이 살았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고대 로마의 황제들처럼, 화폐에 포함된 은의 함량을 지속적으로 줄여 ‘주조 차익’을 얻고자 노력한다면 자본시장은 제대로 발전할 수 없다. 참고로 네로 황제 시대(AD 54년)에 은의 함량은 94%에 달했지만, 200년이 지난 고티쿠스 황제 시대(AD 268년)에는 그 함량이 0.02%로 감소했다. 당시의 여건을 반영한 용어가 바로 ‘시금석(試金石)’으로, 금 세공사들이 주화에 포함된 금의 함량을 측정하는 데 사용된 도구를 의미한다.
금화를 이용한 거래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보여주는 사례는 국왕들 간의 거래를 들 수 있다. 1529년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가 두 아들의 몸값으로 스페인의 카를 5세에 120만 에스쿠도(포르투갈의 화폐단위)를 지불했을 때, 돈을 검사하고 헤아리는 데에만 4개월이 걸렸고 더 나아가 스페인 사람들은 이 가운데 4만 개의 주화가 기준 이하의 것이라며 수령을 거부하기까지 했다.
이상의 사례에서 본 것처럼, 자본시장의 발달은 안정적인 화폐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시스템이 뒷받침될 때에야 가능하다. 대신 일단 ‘자본시장’이 성립하게 되면, 사회의 발달은 급격히 촉진된다. 상거래의 비용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은행 등의 금융 기관이 출현해서 새로운 투자를 위한 자본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본 시장의 발달 수준을 측정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그 답은 “수십 년 이상의 기간 형성된 이자율이 존재하느냐?”라는 질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장기간에 걸친 이자율의 형성을 위해서는 법정 화폐가 안정적인 가치를 유지하며, 더 나아가 은행 등 금융 기관의 활발한 활동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보여주듯, 17세기 후반 네덜란드가 패권 국가로 군림할 때 네덜란드 국채의 최저 금리 수준은 3%까지 떨어졌으며, 당시 유럽의 모든 국가가 네덜란드 자본시장을 부러워했다. 당시 네덜란드의 상황에 대해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다음과 같이 격한 찬사를 쏟아냈다.
“홀랜드는 영토의 크기와 인구 수와 비교하면 영국보다 훨씬 더 부유한 나라다. 그곳 정부는 2%의 이자율로 돈을 빌릴 수 있고, 신용 좋은 민간인도 3%에 차입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임금도 영국보다 높다고 한다.”
물론 이와 같은 아담 스미스의 찬사는 다소 과장된 것이다. “이자율의 역사”를 보면, 네덜란드 국채의 최저 금리가 18세기 후반 2.5%로 떨어지긴 했지만, 2%의 금리 수준을 기록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당시 영국인들이 얼마나 네덜란드 금융의 발전에 대해 부러워했고, 또 이를 모방하려 노력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충분할 것이다.
이자율이 낮으면 무엇보다 소비자들은 이자율이 높을 때에 비해 더 많이 지출할 것이며, 사업가들은 기존 사업을 확장하거나 사업을 새로 시작할 동기를 지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사회전체적으로 큰 활력을 띄게 되며, 당연히 전쟁 수행 능력도 강화된다. 당시 영국과 스페인 등 유럽 군주들이 이탈리아와 독일의 은행가로부터 빌릴 때 지급했던 이자가 통상 20%에서 40% 수준이었음을 감안해 보면, 네덜란드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힘의 원천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네덜란드만 ‘저금리’의 이점을 누린 것은 아니었다. 17세기 말 네덜란드의 오렌지공 윌리엄이 ‘명예혁명’을 통해 영국 왕위에 오른 후, 영국 자본시장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18세기 전반 영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수익률은 3.05%까지 떨어졌으며,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이던 19세기 초에도 3.2% 수준에서 안정되어 기나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1341년 영국 국왕(에드워드 3세)이 프랑스와의 ‘백 년 전쟁’을 위해 빌렸던 대출의 금리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지급 불능을 선언했던 것을 돌이켜 보면, 나폴레옹 전쟁에서의 영국 승리는 ‘저금리의 승리’로 보아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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