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료마 평전 (마쓰우라 레이, 2009)

시나리오/인물|2022. 12. 3. 15:00

책소개
일본의 무사 겸 정치가로 에도 막부 말기 도막운동(막부 타도운동)지도자로 활동했고, 메이지 유신 직전 피살된 사카모토 료마의 평전. 일본에서 존경받는 인물 중 하나로 꼽히는 료마가 28세에 목숨을 건 탈번을 하고 33세에 교토에서 불꽃같은 삶을 마감하기까지의 여정을 그려냈다. 책 말미에 사카모토 료마의 연보를 수록했다.


목차
이 책을 읽기 전에
머리말
제1장_제1차 탈번까지
제2장_가쓰 린타로의 객으로 들어가다
제3장_삿초밀약을 주선하다
제4장_가메야마 샤추에서 해원대로
제5장_ 신국가를 구상하던 중 교토에서 죽다
맺음말
연보
작가 후기
역자 후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사카모토 료마 평전』이 국내 최초 출간!
“한 번뿐인 인생, 료마처럼 멋지게 살고 싶다”
-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

새로운 세계로의 비약을 꿈꾸며 고비마다 시대의 물줄기를 옮겼던
사카모토 료마의 불꽃같은 삶을 통해 난마처럼 얽혀 있는 우리 현실의 해법을 찾는다!
국내 최초로 마침내 『사카모토 료마 평전』이 출간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평전은 일본에서 출간되고 있는 많은 료마 평전 중 가장 객관적인 시각과 치밀한 역사적 자료 고증, 깊이 있는 분석으로 평가받는 작품으로 일본의 권위 있는 출판사 이와나미 쇼텐의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를 비롯한 소설을 제외하고는 평전으로는 국내 처음 출간되는 것으로, 그의 삶에 관한 밀도 있는 조명은 그동안 료마에 대한 새로운 자료와 책을 기다려왔던 국내의 많은 대중인문독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료마는 일본 ≪아사히 신문≫이 뽑은 일본 천년의 리더 1위, 일본 역사상 가장 존경받고 사랑받는 인물로, 국내에서도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학자들, 경영자들 사이에서는 그의 삶에 대해 그동안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유연한 사고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실천으로 28세 때 목숨을 건 탈번을 하고 33세에 불꽃같은 삶을 마감하기까지, 5년의 시간 동안 그는 자신의 열정과 노력만으로 당시 일본의 거물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새 시대를 열어왔다. 혼란한 시대를 개혁하려 했고, 탁월한 협상력과 타고난 돌파력, 기회를 창출하고 추구하는 그의 천재적인 발상력 등은 시대와 공간을 막론하고 지금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으로, 그의 치열한 삶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역사를 바라보는 눈,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과 지혜를 선사한다.
총 21컷의 사진 도판은 읽는 이들에게 료마의 삶을 이해하고 역사와 뜨겁게 소통하는 데 많은 도움과 즐거움을 줄 것이다.

“크게 두들기면 큰 답이 나올 것이며 작게 두들기면 작은 답을 얻는다”
현대 일본 경영자들이 입을 모아 찬탄하는 신화와 같은 존재다. 자신의 한계를 깨닫자마자 허물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세계로 비약하는 사카모토 료마의 유연한 발상력은 현대의 고뇌하는 경영자와 기획가라면 반드시 배워야 할 점이다. 료마를 좋아하는 가장 대표적인 기업인으로서는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료마의 천재적인 발상력을 빌리고 싶어했고 늘 “한 번뿐인 인생, 료마처럼 멋지게 살고 싶다”라고 말할 정도로 료마를 좋아했으며, 그로 인해 자신이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고백할 정도로 손정의 회장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의 저자인 마쓰우라 레이는 ‘타고난 돌파력을 지닌 료마가 살아있었더라면……’ 하고 작가 후기에서 아쉬움을 드러낸다. 료마가 서른세 살에 죽었을 때 대정봉환을 단행한 요시노부는 서른한 살이었다. 소용돌이치는 교토의 정국에 그토록 전력을 기울인 료마가 살아 있었다면, 요시노부의 운명은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다. 적어도 도바 · 후시미 전쟁으로 ‘조정의 적’이 되어 쫓기는 몸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토 쇼지로는 약속한 고마쓰 다테와키가 결국 고치에 오지 않자 미간에 내천 자를 깊이 그리며 교토로 올라왔다. 하지만 이미 료마는 자객의 칼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이제는 의지해야 할 사람이 교토에 없었던 것이다. 마쓰다이라 슌가쿠에게 달려가서 호소해보았지만 슌가쿠는 충분히 고토의 뜻을 이해했어도 좀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돌파력을 타고난 서른세 살의 료마라는 존재가 그토록 컸던 것이다.


사카모토 료마는 누구인가(坂本龍馬, 1835. 1. 3~1867. 11. 15)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1835. 1. 3~1867. 11. 15)는 도사번[土佐藩]의 향사 아들로 태어났다. 열네 살 되던 해, 에도[江戶]의 한 도장에서 검술을 익히며 왕정복고와 서양문물을 거부하는 존왕양이(尊王攘夷) 주의자들과 만나기 시작하면서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검술을 익히고 고향으로 돌아간 료마는 존왕양이를 실천하기 위해 결성된 도사근왕당(土佐勤王黨)에 가담하여 친(親)서양파인 가쓰 가이슈[勝海舟]를 죽이기 위해 다시 에도로 향했다. 그러나 “일본은 외국의 발달한 지식과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가이슈의 설득에 큰 감동을 받게 됨으로써 그의 제자가 되고, 그의 영향으로 무역의 필요성을 느껴 고베(神戶)에 해운무역회사를 설립했다. 후에 이 해운회사는 해군지원대로 바뀌어 운영되었다.

 

1866년에는 대립관계에 있던 사쓰마번[薩摩藩]과 조슈번[長州藩]의 동맹을 이끌어내고, 그 이듬해에는 마침내 막부(중앙)와 번(지방)을 통일시켜 천황에게 국가 통치권을 돌려준 역사적인 사건 대정봉환(大政奉還)을 성사시키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일본은 약 675년 동안 지속되었던 봉건시대가 막을 내리고, 메이지유신을 통해 중앙집권적 근대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하지만 1867년 11월 15일 친구인 나카오카 신타로(中岡愼太郞)와 함께 막부의 한 순찰대에게 습격을 받아 교토에서 33살의 나이로 암살되고 만다.
시골의 하급무사에서 격변의 시기에 시대의 중심으로 들어가 일본을 변화시킨 사카모토 료마.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 노부나가와 함께 일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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