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트레라스 선장의 모험 - 17세기 스페인 전쟁왕의 파란만장한 생애 (알론소 데 콘트레라스, 2013)

책소개
동서고금의 결정적 장면을 가감 없는 필치로 소개하는 '걸작 논픽션' 시리즈 3권. '알론소 데 콘트레라스'라는 17세기 스페인의 괴짜 군인이 남긴 회상록이다. 1582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못된 골통'으로, 훗날 무적함대의 마지막 영웅이 되어 지중해를 평정한 콘트레라스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모험을 감행한 문제적 인물이다.

그와 그의 모험에 내재한 진가를 재평가한 20세기 스페인의 대표적인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서문에서 지적하듯, 콘트레라스는 현대인과는 '판이한 인간적 존재방식'을 구현하고 있다. 개인의 정념과 신체를 엄정히 단속하는 근대적 질서와 규범이 성립되기 이전의 세계에 존재했던 날것으로서의 생, 그리고 그에 따른 비화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인간형인 것이다.

아울러 이 흥미진진한 모험담의 행간에는 당시 팽창하던 유럽과 그 주변 지역의 정세, 그 시대의 특징을 간직하면서도 보편적인 생활상 등이 충실히 기록되어 있다.


목차
서문 콘트레라스 선장의 모험담·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5
1장 유년기와 부모님 46
어머니가 도제 수업을 받게 하다 | 추기경 알베르토 왕자 일행과 함께 떠나다 | 병사가 되다

2장 팔레르모에서 벌어진 일 58
몰타 여행과 시칠리아 귀환 | 범선으로 레반트를 여행하다 | 선술집, 카바레를 전전하며 | 나폴리에서 발렌시아 사람들과 어울리다

3장 람페두사 섬의 기적 68
적의 깃발을 접수하다 | 제르마와 일전을 치르다 | 포로 문제로 몰타 법정에 출두하다 | 함마메트 공략 | 터키 함대에 대한 정보 | 레지오에 도착해 함대를 경고하다 | 람페두사 섬

4장 레반트 항해와 스탐팔리아 섬까지의 모험 85
제르바에서 소형 갤리선을 손에 넣다 | 좋은 친구가 된 ‘여자’ | 카푸친 수도승의 구출 | 아테네에서 터키 인질을 흥정하다

5장 레반트에서 몰타로 돌아가던 길에 벌어진 일 105
스탐팔리아 입항 | 스탐팔리아 신부를 납치한 해적선을 붙잡다 | 스탐팔리아 사람들은 내 결혼을 바랐다 | 적의 함선을 따돌리다 | 솔리만 항에서 겪은 불운 | 시리아 연안 항해 | 토르토사 공략

6장 사랑의 환멸과 짧은 귀향 125
스페인 귀향과 다시 만난 어머니 | 시골 도적 몇을 붙잡다 | 코르도바 유곽 답사 | 과부와 사귀다

7장 끝없는 모험 138
호르나초스 무기고 | 직속상관이 이사벨라를 겁탈하려 들다 | 부상당한 중대장 | 이탈리아로 돌아가다

8장 처절했던 함마메트 공략 150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다 | 아델란타도가 함마메트에서 사망하다 | 마드리드 출신 과부와 결혼하다

9장 궁정으로 되돌아오다 163
에스쿠리알 궁에서 서기를 해치다 | 은둔생활을 하다 | 무어인의 음모설 | 감옥에서 은둔하다

10장 증인을 찾아다니다 178
호르나초스와 마드리드에서 벌어진 일 | 사지를 조이는 문초 | 마드리드를 몰래 빠져나오다 | 발렌시아에서 마드리드로 돌아오다

11장 플랑드르 가는 길과 프랑스 왕의 사망 194
프랑스 왕의 사망을 알게 되다 | 순례자 복장으로 플랑드르를 떠나다 | 기사단원이 되다 | 유부녀와의 추문 | 마드리드 감옥에서 | 로마에서 독약에 중독되다

12장 스페인 본토에서 보병 중대장 생활 209
오수나에서 다시 독살 위기를 넘기다 | 스페인에서 맡은 임무 | 골칫거리를 해결하다

13장 서인도 제도 항해 223
영국 사략선을 영국으로 돌려보내다 | 스페인 귀향 이후 | 마모라 출정

14장 마모라 요새 탈환과 여명 작전 236
무어인 수령들 | 국왕을 알현하다 | 선장직을 놓치다 | 마드리드에서 중대를 맡다

15장 새로 꾸린 보병 중대, 마드리드에서 벌인 모험 247
홀란드 전함과 만나다 | 판텔레리아 섬 생활 | 교황께서 축복을 내리시다 | 로마에서 추기경들을 맞이하다

16장 베수비오 화산 폭발을 보다 259
베수비오 화산 폭발의 지옥 같은 현장에서 | 카푸아 변방 | 라퀼라 사령관을 맡다 | 쥐라트(시정관)의 말썽

17장 카푸아 생활과 몬테레 백작과의 결별 274
왕국 부대 사열 | 직속상관 백작의 칭송 | 기병 500을 지휘하다 | 동생 때문에 총애를 잃다 | 나폴리에서 팔레르모로

18장 이탈리아를 떠나 스페인에서 기사령을 하사받다 288
기사령 교서를 받다 | 마드리드에서 난관에 부딪히다
역자 후기 295


스페인 무적함대의 마지막 영웅이자
세기적 ‘골통’이 펼치는 좌충우돌 모험의 파노라마!
◆ 근대적 질서가 집어삼키기 이전 세계를 총천연색으로 길어낸 기록문학의 고전
◆ 17세기 유럽의 최전선을 누빈 스페인 전쟁왕 콘트레라스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 콘트레라스와 그의 모험의 진가를 재조명한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서문 수록
◆ 역사적 사건과 인간의 보편적 생활상을 가로지르며 꾸밈없이 기술한 걸작 모험담
◆ 풍속화와 초상화를 비롯해 모험의 배경인 지중해 곳곳의 도상자료를 추가해 박진감을 더하다


동서고금의 결정적 장면을 가감 없는 필치로 소개하는 글항아리 ‘걸작 논픽션’ 시리즈의 제3권인 『콘트레라스 선장의 모험』(원제 Vida del Capit?n Alonso de Contreras)은 ‘알론소 데 콘트레라스’라는 17세기 스페인의 괴짜 군인이 남긴 회상록이다. 1582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못된 골통’으로, 훗날 무적함대의 마지막 영웅이 되어 지중해를 평정한 콘트레라스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모험을 감행한 문제적 인물이다. 그와 그의 모험에 내재한 진가를 재평가한 20세기 스페인의 대표적인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서문에서 지적하듯, 콘트레라스는 현대인과는 ‘판이한 인간적 존재방식(8쪽)’을 구현하고 있다. 개인의 정념과 신체를 엄정히 단속하는 근대적 질서와 규범이 성립되기 이전의 세계에 존재했던 날것으로서의 생, 그리고 그에 따른 비화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인간형인 것이다. 아울러 이 흥미진진한 모험담의 행간에는 당시 팽창하던 유럽과 그 주변 지역의 정세, 그 시대의 특징을 간직하면서도 보편적인 생활상 등이 충실히 기록되어 있다.

‘골통’이자 영웅으로 불리는 사나이
왜 그는 이렇게 상반된 두 수식어로 불리게 되었을까? ‘골통’ 콘트레라스는 무모하고 저돌적인 기질로 앞만 보고 내달리는 인물이다. 반성적 삶이란 그의 사전에 없다. 그는 십대 때 친구를 칼로 찔러죽인 죄로 유배생활을 한 뒤 군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입대해 훗날 지중해를 누빈다. 평판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칠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사나이다. 반면 영웅 콘트레라스는 그를 따라다니는 온갖 불운과 음모에도 불구하고 삶을 불태운 모험가요 마초다. 반역자로 몰려 은둔생활을 하고, 그를 업신여기는 이들에 의해 군인으로 역량을 펼칠 자리를 얻지 못해도 기회가 주어지면 언제든 전투 현장에서 용맹을 떨쳤다. 이 소개문에서는 콘트레라스의 여정을 세세하게 추적하기보다는 콘트레라스라는 인물과 그의 모험담이 갖는 의미에 대해 짚어보려 한다.

근대적 기획을 거부한 진정한 모험가
콘트레라스는 낡은 허물이 벗겨진다고 아쉬워하거나 그리워하지 않는다.
진정한 모험가의 삶에 궤적이란 없다. 즉흥적인 삶이자, 작은 일화들로 나뉜 대서사시다.
짜인 줄거리가 아니다. 하나의 삶에서 또 다른 삶으로 다시 태어나려고 거의 매일 죽는 삶이다.
_‘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서문(33쪽)’에서

절대왕정의 비호 아래 상업이 발달하고 자본주의의 체계가 잡혀가면서 16~17세기 유럽에는 근대적인 민족국가가 태동한다. 권력이 분산되어 있던 봉건제에서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로 이행하면서 국가는 흩어져 있던 개인을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통해 결집시키는데, 이로써 분방했던 각 개인의 삶은 국가기관이 정해놓은 규율에 복무하게 된다. 거대한 국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이제 인간은 자기에게 맡겨진 기능과 역할을 다해야 하는 ‘직능인’으로 변신한다. 그리고 국가는 자연히 ‘뜨거운 심장의 열기를 잃고 모험을 혐오(11쪽)’하게 된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이 책의 작자이자 화자인 알론소 데 콘트레라스를 ‘모험가의 극단적이며 티 없이 순수한 모범(8쪽)’이라고 규정한다. 근대사회와 민족국가의 여명기, 즉 아직 근대적 질서와 규범이 세계를 장악하기 이전의 인간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선연하게 보여주는 궁극의 사례가 바로 콘트레라스라는 것이다. 물론 충동적이고 용맹스러우며 다혈질인 기질이 그를 파란만장한 모험가의 길로 이끈 주요 요인이지만, 그가 견지한 삶의 방식이 시대적 조건의 산물임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터. 철저한 자기관리로 인생의 효용을 극대화하려는 현대인의 눈에는 불가해한 인물이 바로 콘트레라스다. 그는 예루살렘 성 요한 기사단과 스페인 해군의 일원으로 전과를 올린 뒤 받은 돈과 전리품을 어김없이 노름과 여자로 탕진한다. 노름을 금지당하면 이(벌레)를 잡아다가 경주를 시키는 새로운 노름을 고안(74쪽)해내고 유부녀와 추문을 일으켜 그녀의 남편과 한바탕 소동(203쪽)을 벌이기도 한다. 충동과 즉흥이 그가 인생을 향유하는 방식인 것이다. 돈벌이도 사랑도 순간에 충실하며 삶을 아끼지 않고 낭비하는 방식, 그것 자체가 이미 근대적 이성의 합리성이 용납하지 못하는 모험과 다르지 않다.

유럽에 출현한 ‘아마추어’ 직업군인의 모습
“사실대로 털어놓지 않으면 목이 날아갈 줄 알아.”
내가 단호하게 칼을 들이대자 소년의 아비가 내 발치에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아이고, 선장님, 아들 좀 살려주시오. 터키 사람들 어디 있는지 말할 테니!”
이 사람은 몸이 엉망으로 상할 만큼 고문을 당한 뒤였다. 아무튼 자식 사랑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_‘4장 레반트 항해와 스탐팔리아 섬까지의 모험(97쪽)’에서

당시 유럽에는 이전에는 없었던 ‘직업으로서의 군인’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중세에는 그러한 역할을 하는 직업이 없었다. 비정기적으로 전투에 출정하는 전사가 있을 뿐이었다. 전통적인 민병으로는 점점 발달하는 군사기술로 무장하는 상대국에 승리하기가 어려워지자 직능에 따른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군대를 육성할 필요성이 각국에서 대두된 것이다. 하지만 17세기 즈음은 이러한 정치적인 진지함이 군인 개개인의 내면에까지 스며들지는 못한 때였다. 당시 직업군인의 머리에는 효율적인 인간이 된다는 관념이 자리할 공간이 없었다. 다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성취하면 그뿐이었다. 대담하고 거친 군인의 전형은 콘트레라스가 속했던 ‘레반트 사략선단’이다. 사략선단은 국가로부터 적선을 노획하는 것을 인정받은 ‘국가 공인 해적단’으로, 평판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무뢰배나 마찬가지인 ‘아마추어’ 군인집단이다. 선술집에서는 주인을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단검을 빼내 후려치는가 하면(64쪽), 임무수행 중에는 아군 병사의 시체가 적군의 손에 훼손당한 데 격분해 적군 포로를 똑같이 베고는 바다에 던져버린다(119쪽). 이 회상록에 등장하는 군인들이란 대개 이런 모습이다. 스페인 본토의 군대도 이들과 다르지 않다.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무어인 병사도 모두 마찬가지다. 이들은 아직 군인이 아니라 용병이나 전사라고 해야할 것이다.

행간에 드러나는 근대 유럽의 역사
“콘트레라스는 거짓말만 한다. 그는 모리스코에 합류하려 돌아갔다.”
행정관은 내가 모리스코 반도叛徒를 찾아갔다고 그렇게 호락호락 믿지 않고 내 족보를 은밀히 조사했다. 

4대 위로 거슬러올라가 유대인이나 무어인 혈통과 무관한지 아닌지 추적했다.
_‘10장 증인을 찾아다니다(188쪽)’에서

콘트레라스의 모험담은 당시의 역사적 사건을 알려주는 사료로도 가치가 크다. 눈여겨볼 만한 장면 가운데는 콘트레라스가 모리스코 왕으로 오해를 샀던 일이 있다. 모리스코는 이슬람교도였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무어인(북아프리카인)을 말하는데, 당시 스페인의 위정자는 모리스코를 추방하려 했다. 모리스코가 봉기를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이 나도는 등 다른 민족에게 적대적인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만연한 이때, 콘트레라스는 호르나초스라는 무어인 마을의 한 헛간에서 무기고를 발견해 즉시 상관에게 보고한다. 그런데 상관은 함구령만 내릴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5년 뒤 모리스코가 호르나초스에서 음모를 꾸민다는 정보를 입수한 치안 당국은 수소문 끝에 무기고의 존재를 잘 알고 있는 콘트레라스에게 애꿎은 혐의를 씌웠다(‘7장 끝없는 모험’과 ‘9장 궁정으로 되돌아오다’ 참고). 유럽의 북쪽에서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사이에 30년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무렵, 남쪽에서는 이렇게 이교도와의 또 다른 전쟁이 한창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콘트레라스는 감옥에서 고초를 겪다가 빠져나와 여러 증인을 확보해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하지만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 만약 콘트레라스에게 무어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여 있었다면 그가 확보한 증인도 별 소용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한편 ‘13장 서인도 제도 항해’는 영국의 전설적인 사략선장인 월터 롤리의 활동을 사실로 입증한다. 당시 서인도 제도는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던 신세계였다. 특히 영국, 홀란드, 프랑스의 사략선이 활약을 펼치던 곳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영국의 사략선장인 월터 롤리의 위용이 두드러졌다. 모리스코 사건 이후 스페인 보병 중대를 지휘하게 된 콘트레라스는 홀란드 군에 점령된 서인도 제도에 원군으로 급파되었는데, 푸에리토리코의 사령관이 그에게 한 다음과 같은 말이 월터 롤리의 악명을 방증한다.

“아니, 영국 해적 월터 롤리를 피해 왔다니 기적일세.
크고 작은 전함 다섯 척으로 이 앞 바다를 누비면서 매일같이 우리 배를 노략질 하곤 했는데.”
_‘13장 서인도 제도 항해(225쪽)’에서

지금의 도미니카 공화국 수도인 산토 도밍고에서 요새를 건설하라는 명을 수행하던 콘트레라스는 월터 롤리의 사략선이 머지않은 곳에 정박해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이들을 추격하기 위해 상선으로 위장한 콘트레라스의 전함은 적선에 접근했다 곧바로 퇴각하는 유인계로 그들을 내쫓는 데 성공한다. 맞수 월터 롤리를 상대로 콘트레라스가 승전보를 울린 셈이다.

영웅의 로맨스와 부정한 음모
“어느 날 코르도바에서 도적들을 무찌르던 나리의 용감한 모습을 보고 나서,
직접 찾아나서기 어렵던 까닭에, 사내 몇을 보내 저녁 식사 초대를 하지 않았겠어요.
그때는 저와 함께 살던 사내가 그라나다에서 교수형을 당한 뒤 혼자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어요. 유명한 사내들이 집적댔지만, 나리 곁에서 잠을 자는 것만큼 편하고 듬직한 일이 어디 있을까 싶었어요.”
_ ‘6장 사랑의 환멸과 짧은 귀향(136~137쪽)’에서

호방한 영웅의 삶에 생명력과 영감을 주는 여인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하다. 마초 중의 마초 콘트레라스의 불꽃같은 생애를 논하면서 로맨스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코르도바의 유곽에서 힘없는 자들을 상대로 노략질을 일삼는 악질 헌병대장을 거꾸러뜨린 콘트레라스에게 한눈에 반한 젊고 아름다우며 현명한 여인이 그에게 구애하는 장면(위의 인용문)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스탐팔리아에서는 해적을 일망타진한 뒤 그곳 ‘대장’의 딸과 결혼할 뻔하기도 하며(110쪽), 백작 부인을 애인으로 두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랑이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름답고 이해심 깊은 마드리드 출신의 과부와 결혼해 즐거운 신혼을 보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절친한 친구 한 명과 눈이 맞은 것이다. 어느 날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친구와 아내를 목격한 콘트레라스는 그 자리에서 그 둘을 죽이고 만다(162쪽). 사실 그는 고비 때마다 행운과 행복보다는 불운과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우연찮게 무기고를 발견한 탓에 모리스코의 우두머리라는 당치도 않은 누명을 쓰고 은둔해야 했고, 권력을 쥔 자들의 알력 때문에 스페인 본토에서 군인으로서 일할 기회를 박탈당하기도 했다. 정적과 불량배들의 사주로 독살될 위험을 넘긴 일도 수차례다. 모름지기 모험가라면 운명이 가져다주는 위협에 당당하게 맞서야 하는 법. 그의 곁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음모와 협잡에 대처하는 그는 단호하지만 침착하다. 억울하다고 해서 하소연하지 않는다. 이러한 절제는 이 모험담을 개인의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고전으로 만든다.

군더더기 없는 시대의 기록
그날 의장대가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아니겠는가! 가난한 나는 제복이나 입었다.
하지만 나팔수 둘, 종복 넷에게 은사로 수놓은 진홍색 옷에, 멜빵을 두르고 금장한 장검과 깃털 장식을 하고 그 위에 망토를 두르게 했다. 말 다섯 필에 안장을 얹었는데 그 가운데 두 필은 은사로 수놓은 덮개를 두르고, 귀한 안장틀에 총을 걸었다. 우리 부대 기장은 은빛 불꽃무늬에 푸른 바탕이었다. 금장으로 수놓인 낙타가죽장화를 신고, 깃과 소매도 같은 금장을 둘렀다. 군모 위에는 청, 녹, 백의 깃털을 꽂고 어깨에는 금사를 넣어 짠 붉은 띠懸章를 둘렀다. 이 띠는 아주 커서 이불 홑청으로도 쓸 만했다! 나는 이런 차림으로 광장에 나갔다. 상사와 기수와 무장을 완비한 기병 스물네 명이 뒤를 따랐다. 병사들은 붉은 목도리를 둘렀다. 부관이던 내 동생이 후미를 맡았다. 우리가 어떤 환호를 받았을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_‘17장 카푸아 생활과 몬테레 백작과의 결별(276쪽)’에서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 콘트레라스의 회상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충실히 그리고 건조하게 사실만을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믿음이 간다. 당시 스페인의 문인들은 격정적이며 역동적인 바로크 문학의 영향 아래 화려한 수사학에 취해 있었다. 콘트레라스가 그러한 고상한 취미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다행한 일이다. 흔히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게 마련이지만 콘트레라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경우다. 그의 문체는 대담하며 무모한 그의 기질을 그대로 닮아 있다. 인물과 상황에 대한 적확한 묘사와 간결하고 빠른 이야기 전개는 오히려 읽는 이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시킨다. 앞뒤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사실로 직행(39쪽)하는 그의 이야기 구성은 상황과 사건의 굵직한 줄기를 제공해 읽는 이가 직접 잎과 열매를 맺도록 유도한다. 이 모험담이 기록문학의 고전으로 회자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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