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기획자 빌로퍼는 어떤 인물인가요?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기획자 빌로퍼
“게임 패키지에 적힌 회사나 게임제목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영화를 선택할 때 아놀드 슈왈츠가 출연한 영화나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영화를 본다.
책을 선택할 때는 누가 작가인지를 보는 것과 같다. 해리포터의 J.K 롤링처럼 말이다.
이렇듯 게임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게임을 선택할 때는 누가 만들었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스타 크래프트의 판매량은 600만장 정도로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다.
디아블로가 출시 되었을 때 그 해의 최고게임에 뽑혔고 스타 크래프트는 그 해의 최고 전략게임에 뽑혔다.
또한 게임잡지에서 역대 최고의 게임 순위 100위권을 뽑으면
항상 빌로퍼의 게임들인 워 크래프트 ,디아블로, 스타 크래프트 모두가 존재한다.
명작 게임들을 위한 명예의 전당에도 빌로퍼의 게임들은 다 올라가 있다.
그가 앞으로 지금과 같은 업적을 계속 쌓아가면
결국 명예의 전당 회원이 되어 정식으로 소개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사실 그 이름만으로도 다음 게임이 기대되는 최고의 게임 크리에이터중의 하나이다.
특히 그가 한국 게임계에 끼친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오늘날 한국 게임계가 이만큼 성장하는데 있어서 그는 일등 공신이다.
한국에서 게임에 대한 나쁜 선입관을 없애주고
게임이 훌륭한 미래산업의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그는
한국 게임계의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
스타 크래프트의 등장은 한국 게임계의 큰 축복이다.
1998년 그 때의 여름은 정말 놀라운 일의 연속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스타 크래프트는 한국 경제 전체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스타 크래프트가 한국 경제에 미친 영향력은
스타크 노믹스(공동저자: 김태홍, 라도삼, 장후석)라는 책에 아주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스타크 노믹스는 스타 크래프트가 한국 경제에 끼친 영향을 경제적으로 분석하였는데
게임 개발업체와 방송 그리고 PC방 등의 연관산업에 끼친 영향을 따지면
1,1400억원의 경제효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참으로 놀랍고 대단하다고 말 할 밖에 없을 것 같다.
게임의 힘이 얼마나 대단할 수가 있는지의 최대치를
스타 크래프트라는 게임 하나가 한국사회에 몸소 제대로 가르쳐 준 것이었다.
스타 크래프트의 성공 덕분에 한국에서는 게임 산업에 대한 가치를 재평가 하였고
국가에서도 게임을 지원해주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결국 한국 게임 산업이 지금처럼 세계 3대 게임 강국을 목표로 할 수 있을 정도로
이렇게 단기간에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스타 크래프트를 통해서
기존의 게임에 안 좋은 선입관이 일소에 해소되고 새로운 자극을 주었기 때문이다.
스타 크래프트는 한국에서도 게임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첫 번째 모델이 되었다.
그리고 스타 크래프트의 성공 덕분에 많은 벤처 업체들이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한국의 게임 개발자들에게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좋은 자극제가 되어서
게임개발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도록 했다.
정말이지 앞으로도 스타 크래프트와 같은 신드롬은 일어나기 힘들 것이다.
그가 한국 게임계에 준 또 다른 선물은 바로 디아블로이다.
물론 스타 크래프트 보다 디아블로1이 먼저 발매됐다.
하지만 디아블로가 한국 게임계에 영향을 끼친 것은 스타 크래프트 성공 이후이다.
한국 게임계에서는 스타 크래프트의 열기로 생겨난 PC방에 새로운 게임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서
많은 게임들을 개발했다.
이때 한국 게임 개발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게임이 바로 디아블로이다.
디아블로는 마우스의 클릭 하나로 게임을 진행하는
획기적인 게임 시스템을 채용한 롤플레잉 게임이었다.
마우스의 포인트로 적을 선택하고 전투를 치르는 포인트 앤 클릭방식의 전투는
대규모 다중 롤플레잉 게임에 적용할 수 있는 최적화된 게임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온라인 게임 업체는
그가 창조해낸 전투 시스템을 MMORPG 게임에 그대로 차용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일찍이 그는 한국 MMORPG게임은 디아블로의 클론(복제)이라면서 비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부로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게임이라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게임이 아니라 개량하는 것이라 했다.
게다가 현재 완전 3D로 변모한 리니지2는 디아블로와 많은 차별화를 이루어냈다.
지금의 발전된 한국의 온라인 게임들을 생각하면 너무 억울해 할 것은 없다.
그리고 우리는 빌 로퍼가 한국 게임계에 끼친 공로를 인정해 주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싶다.
게임에 문외한 빌로퍼 게임 기획자가 되다.
블리자드(Blizzard)는 1991년 마이크 모하임과 앨런 애드햄, 프랭크 스피어스 의해서 창업되었다.
처음 회사를 만들 때만 해도 회사의 이름은 실리콘 & 시냅스였고
컴퓨터 게임 보다는 팬앤 페이퍼(Pen &Paper) 방식의 롤플레잉 용 보드 게임을 주로 제작 하였다.
레이싱과 로스트 바이킹스와 같은 콘솔용 게임을 개발 하였으나 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회사의 재정은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빚은 늘어만 가고 있었다.
결국 회사는 데이비슨 앤 어소시에트에 인수 되었지만
블리자드라는 이름과 경영진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회사자금에 다시 여유를 가지게 된 블리자드는 PC 용 게임인 액션게임 블랙쏜(Blackthorne)을
인터플레이를 통해서 발매하며 처음 성공이라는 것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블랙쏜의 음악을 담당했던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빌로퍼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색소폰을 연주하면서 음악의 매력에 빠지고
장래에 뮤지션이 될 것을 결심하였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 상업 음악학과에 진학해 성악을 전공하였다.
대학에 입학한 후 재즈와 락에 심취한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더욱 불타오르게 된다.
결국 그는 대학 졸업을 포기하고 전문적인 뮤지션이 되기 위해서 대학을 중퇴한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지만 미국 역시 무명의 뮤지션은 경제 적으로 궁핍 하게 살 수 밖에 없었다.
트럭 운전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그는 블리자드의 음악을 우연한 기회로 하청 받게 된다.
이렇게 그는 정식직원이 아닌 파트타임으로 게임계에 입문하게 된다.
사실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게임기획자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비록 어린 시절 던전앤 드래곤스와 같은 펜앤 페이퍼 방식의 롤플레잉 게임을 즐겨 했지만
그 정도는 일반 미국 청소년들이라면 한번씩 가져본 취미였던 것이다.
하지만 특유의 호기심과 낙천적인 성격이 발휘되면서 개발팀에게 인정을 받고
94년도에 블리자드의 정식직원이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블리자드의 개발팀원들은 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게임 개발 경력도 없는 풋내기이면서 일개 음악 계약직 직원인 사람이 개발팀원들에게 찾아가서
게임의 궁금함을 끊임없이 물어보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늘어 놓으니 얼마나 귀찮았겠는가?
하지만 특유의 넉살과 수다로 개발자들을 사로잡은 그는 곧 블리자드의 정식직원이 될 수 있었다.
사람들을 사로 잡는 넉살의 소유자 빌로퍼
지금도 기자가 물어보는 한가지 질문에 미리 세가지 대답을 한꺼번에 해주기로 유명한 그의 수다가
개발팀에게 인정받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화이다.
이러한 교훈을 통해서 기획자는
내성적이기보다는 팀과 잘 융화되고 외향적인 성격이 게임 크리에이터에게 적합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원래 창조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은 조금은 내성적이고 괴팍한 성격이 있어서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선입관을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게임 크리에이터도 그래야 하지 않는가 싶었다.
하지만 게임개발은 엄연히 공동작업이다.
팀내에서 다른 팀원들과 관계가 나쁘다면 좋은 작품은 절대로 나올 수가 없다.
우선 팀원들과 불화가 있다면 게임은 커녕 회사에 남아 있기도 힘들다.
그리고 게임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었던 빌 로퍼가
갑자기 정식 직원이 되고나서 개발팀의 리더가 되는데 1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1년 안에 무슨 새로운 아이디어를 쏟아내면서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니다.
게임에 대한 열정과 개발 팀에 대한 헌신을 보고서 그가 그렇게 초고속 승진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또한 빌 로퍼는 개발팀과 경영진과의 사이에서 훌륭하게 중간자 역할을 수행하면서 인정을 받았다.
사실 게임 개발 팀원들은 그의 말발이라면
경영진들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효율적으로 전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게다가 그의 목소리는 워 크래프트의 나래이션을 맡을 정도로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졌으니
개발팀의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총대를 메고 빌로퍼가 경영진에 할말을 다하는 모습에서 팀원들은 더욱 그를 신임하게 되었다.
이러한 빌로퍼의 매력적인 목소리와 말발은 회사의 경영진뿐만 아니라
각종 언론매체와 유저들과의 모임에서도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현업에 종사하는 게임 기획자로써 그의 넉살은 정말 부러운 성격중의 하나이다.
사실 게임 기획자는 많은 개발자들과 여러 의견에서 충돌을 빚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많은 아이디어는 삭제되기 마련이다.
이럴 때면 사람은 주눅들 수 밖에 없고 수동적인 사람이 되어간다.
하지만 빌 로퍼는 어떤가?
게임경력도 미천한 계약직 음악 담당자였던 빌 로퍼는 주눅 드는 법이 없이
개발 팀원에게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주장하고 토론하였다고 한다.
게임 제작 환경을 모르는 일반 사람들은 그게 뭐 대단한가 싶을 것 같지만
실상 개발 현장에서는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 있는 행동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빌 로퍼가 개발팀에게 이것저것 게임에 요구했던 것은
군대에서 이병이 병장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과도 흡사한 광경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개발팀원들이 빌 로퍼를 못마땅하게 여긴 것이었다.
하지만 그 특유의 유머와 넉살이 발휘되었기 때문에
개발팀원의 사랑을 받는 존재로 거듭날 수가 있었다.
그의 넉살을 보여주는 또 다른 일화가 있다.
2002년 6월 워크래프트3를 홍보하기 위해서 빌 로퍼가 한국을 직접 방문하였다.
마침 그날은 미국과 한국이 월드컵 예선을 치르는 날이었다.
빌 로퍼와 한국의 기자들은 축구경기를 보면서 호프집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축구경기를 보던 그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자신의 쇼맨쉽을 발휘하며 미국 국가를 열창하였다고 한다.
성악을 전공한 그답게 우렁찬 목소리가 호프집 전체에 울려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빌로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당시 월드컵 경기가 열릴 때 만해도 오노 사건으로 인해서 반미감정이 극심하였던 지라
미국 국가를 부르는 그를 바라보는 손님들의 시선이 무척 따가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미국 국가를 끝까지 불렀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넉살을 보면서 같이 웃고 박수까지 쳐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넉살이 있었기에 계약직 직원에서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할 수 있었으리라.
디아블로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1994년 미국의 퍼블리셔 업체인 인터플레이에서 발매된 워 크래프트는
10만장 정도의 판매량을 기록하였지만 블리자드라는 회사를 게임 유저에게 알리는 계기가 된다.
워 크래프트에서 음악과 내레이션을 맡은 빌로퍼는 정직원으로 승격된 후에
워크래프트2 수석 프로듀서가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능력을 맘껏 발휘하며
당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최고봉으로 인정받았던 웨스트 우드 커맨드앤 퀀커와 함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양대 산맥이라는 칭호를 얻으면서 워크래프트2를 성공시킨다.
워 크래프트2의 판매량은 무려 100만장이 넘어 섰으며 블리자드는 메이저 회사로 발돋움하게 된다.
재정적으로 여유로 와진 블리자드는 여세를 몰아서
기존에 프로그래밍 외주 하청을 주었던 업체인 콘도르를 인수 합병한다.
콘도르는 데이비드 브레빅과 쉐퍼 형제가 공동 창업한 회사였다.
콘도르에서는 X-COM과 같은 턴제 방식의 전투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제작중이었다.
바로 그 게임이 나중에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지는 초기의 디아블로였다.
하지만 빌로퍼는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에서의 제작 노하우를 바탕으로
게임에 대해서 새로운 제안을 한다. 즉 턴 방식이 아니라
실시간 방식의 포인트 앤 클릭 방식의 액션 롤플레잉 게임으로 수정해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처음에 콘도르는 이러한 제안에 대해서 받아 들일 수 없다고 거절한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전략게임의 틀 전체를 흔들어 놓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빌로퍼는 간절하고도 집요하게 게임의 변경을 요청한다.
결국 빌로퍼와 콘도르는 시험 삼아 프로토 타입을 같이 한번 만들어 보는 선에서 합의를 보게 된다.
하지만 막상 게임을 구현하고 보니 색다른 재미가 창출 되었고
콘도르 개발자들이 빌로퍼를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 콘도르를 인수 합병한 블리자드는 팀의 이름을 블리자드 노스로 개명하고
데이비드 브레빅과 쉐퍼 형제 그리고 빌로퍼를 개발팀의 공동 책임자로 임명한다.
디아블로는 그가 처음부터 아이디어를 내서 만든 게임은 아니다.
하지만 게임방식의 변화에 결정적인 단초를 계기하였다.
그리고 이뿐만 아니라 그는 새로운 개념의 네트워크 서비스인 베틀넷을 디아블로에 제안하여서
게임이 성공하는데 큰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배틀넷이라는 개념자체는 세계 컴퓨터 게임계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무려 500만장이 넘는 대성공을 거둔 디아블로는
서태지가 음악계에 충격을 주었듯이 게임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사실 디아블로가 처음 나왔을 때 정통 롤플레잉 게임 매니아는 못마땅해하였다.
롤플레잉 게임의 자랑인 자유도가 부족하였고 시나리오의 깊이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만 하여도 롤플레잉 게임은 순발력이 아니라 지적인 능력에 좌우되는 놀이로 인식되었는데
디아블로가 그런 기존 관념을 뒤집어 놓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디아블로를 롤플레잉 게임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단지 노가다 액션 어드벤쳐 게임이라며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턴 기반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즉 RTS게임에 밀렸듯이
롤플레잉 게임에도 중대한 변화가 오고 있다. 물론 그 변화의 중심에는 디아블로가 있다.
정적인 느낌의 턴기반의 롤플레잉 게임은 사라지고
박진감 넘치는 전투와 화려한 마법이
롤플레잉 게임 성공에 중요한 잣대가 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바로 디아블로이다.
특히 디아블로는 한국과 인연이 깊은 게임이다.
어쩌면 현재의 온라인 게임 강국을 만드는데 절대적인 공헌을 한 것이
바로 이 디아블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포인트앤 클릭 방식의 이 간단한 게임 방식에 청사진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로 배틀넷으로 게임을 구현함으로써 온라인 게임에 대한 수요를 일으켰고
한국의 게임 개발자들은 이점을 놓치지 않았다.
디아블로는 한국 게임 역사상 최초로 10만장이상을 판매하며 많은 한국인 유저들을 열광시켰던 것이다.
게임 시스템에 대한 재미를 확인하게 되자 한국의 많은 개발자들이 온라인 게임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다.
특히 바람의 나라와 쥬라기 공원으로 이미 한국 게임계의 보물이 되었던 송재경 이사는
리니지에서 자신의 능력을 맘껏 발휘하였는데
그 기반에는 디아블로의 포인트앤 클릭 방식이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의 MMORPG 게임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디아블로의 가치가 그 중심 속에서 빛나고 있는 것이다.
획기적인 게임보다는 완성도가 높은 게임 스타크래프트
오랜 발매 연기 끝에 1998년도에 출시된 스타크래프트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의 실망을 생생히 기억한다.
다른 게임들이 3D효과를 내세워서 강력한 그래픽을 자랑했지만
스타 크래프트는 고작 256색의 2D 그래픽에 불과 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유행을 선도하는 그래픽에 비해서 스타 크래프트의 그래픽은 왠지 모르게 촌스러웠다.
초기의 반응은 듄2의 아류작이라면서 비난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렇지 않아도 블리자드는 웨스트 우드의 커맨드 앤 퀀커를 흉내 내고 있다면서
원색적인 비난을 들었던 때이다.
이러한 비난은 스타크래프트가 발매되기 전 참가했던 E3쇼에서부터 예견됐었다.
뭔가 표현할 수는 없지만 어설픔이 느껴지는 게임 스크린 샷으로 인해서
전세계의 게임 마니아들의 불만이 쌓여 가고 있던 터였다.
그리고 스타 크래프트를 개발하기 시작한 것도
구체적인 계획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워 크래프트는 환타지가 배경이었으니
이제 스타워즈처럼 우주를 배경으로 한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던 일이다.
그러니 왠지 모르게 블리자드가 미덥지 못한 마음까지 생겼다.
그리고 4D BOXING과 하드볼로 유명한 게임 크리에이터인 크리스 타일러가 제작에 참가한
최초의 3D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토탈 어니힐레이션의 등장으로
스타크래프트는 카운터 펀치를 맞고 만다.
토탈 어니힐레이션이 발매되자 스타 크래프트 제작진은 큰 충격에 빠진다.
블리자드의 내부 개발진들은 게임 제작의 의욕을 잃을 정도 였다.
자신들이 만드는 게임은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들은 그때까지 만들고 있던 게임을 확 뒤집어 엎어 버리는 결단을 내리고 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한국 게임계에는 축복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덕분에 오늘날의 스타 크래프트가 등장 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어찌됐든 이를 통해서 빌로퍼의 결단력도 높이 사야 할 것 같다.
게임을 뒤집어 엎는 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용기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들고 있는 게임을 버려야 할 때 못마땅한 것은 회사 경영진만이 아니다.
회사의 개발자들 역시 강한 반발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자기가 지금까지 쏟아 부었던 노력들이 일순간에 거품들이 되어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 버추어 파이터의 게임 크리에이터인 스즈키 유가
어쩔 수 없이 만들고 있던 게임을 한번 뒤 집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자 몇몇 개발자들은 회사를 그만두고
심지어는 스즈키 유 앞에서 욕도 했고
실제 치고 박고 싸울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까지 했다고 한다.
그것을 빌로퍼가 했다고 하는데 당시에 팀원들과의 문제는 별로 없었다고 한다.
팀원자체가 자신들이 진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완성도 높은 게임을 개발해야 한다는
사명의식을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따지고 보면 토탈 어니힐레이션의 충격파가 그만큼 컸던 것이기도 하다.
해외 판매량만 놓고 보면 토탈 어니힐 레이션이 월등했다.
토탈 어니힐레이션의 해외 판매량은 무려 500만장이 넘었다.
스타 크래프트는 이에 비해서 230여 만장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375만장을 판매 했기 때문에 스타 크래프트가 그나마 자존심을 지킨 것이지
한국을 제외한 해외에서의 판매량은 제작비를 고려해보면 평작 수준에 불과했다.
어찌됐든 토탈 어니힐레이션이 나오기 전에 만들었던 스타 크래프트와
이후에 나온 스타 크래프트에는 엄청난 혹은 놀라운 변화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토탈 어니힐 레이션 덕분에 게임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훨씬 진보하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비록 스타 크래프트가 시대에 뒤떨어진 그래픽으로 초기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지만
게임의 진정한 게임성은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진정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스타 크래프트의 진정한 재미는 싱글플레이가 아니라 네트워크 플레이에 있었던 것이다.
스타 크래프트는 종족간의 밸런스 완벽하게 잡힌 최초의 게임이었다.
기존까지 만해도 종족이라는 개념은 그래픽적인 차이였을 뿐
스타 크래프트처럼 완벽하게 종족에 따라 차별화가 되고 상성을 이루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스타 크래프트는 프로토스, 테란, 저그 이 세 종족이
게임 플레이 방식 자체를 달리해야 할 정도로 완전히 다른 게임이었다.
이러한 차별점은 싱글이 아니라 멀티플레이를 통해서 진가가 발휘되는 것이었다.
스타 크래프트 덕분에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이 발전할 수 있었고
이 덕분에 스타 크래프트는 꾸준한 생명력을 유지하게 되었다.
해외에서 스타크래프트가 한국만큼 인기가 없었던 것은
어쩌면 한국처럼 초고속 인터넷이 활성화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네트워크 플레이야 말로 스타 크래프트의 참 맛인데
다른 해외의 유저들은 그럴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지 못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과의 네트워크 플레이가 제공되는 초고속 인터넷이 한국처럼 보급되었다면
분명 스타 크래프트는 지금보다도 더 해외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을 것이다.
스타 크래프트 성공 이후 한국 게임시장에서 스타 크래프트 킬러임을 내세우며
많은 게임들이 발매되었지만 결국 실패하였다.
그리고 스타 크래프트는 7년이 넘게 황제의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를 시장의 선점효과라고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종족간의 밸런싱으로 표현되는 완성도이다.
아무리 화려한 그래픽을 자랑해도 게임의 밸런싱이 무너지면 졸작으로 평가 받을 수밖에 없다.
7년이 넘어서도 게임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은
게임을 할 때마다 새로운 전략과 전술을 가능하게 하는 게임의 완성도로 평가되는
밸런싱이 뒷받침 되기 때문이다.
그 밸런싱 덕분에 사람들이 게임의 결과에 수긍할 수 있는 것이고
E-SPORTS로 꾸준히 생명력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게임 완성도를 위해서 빌 로퍼는 자신이 이끄는 팀인 스트라이크팀을 운영하였다.
스트라이크팀은 일종의 품질관리 팀으로 대규모 베타테스터 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스트라이크 팀을 통해서 게임 마니아와 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어쩌면 현재 근는 가장 앞서가는 게임 크리에이터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제는 획기적인 게임장르가 나오기는 힘들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기존의 장르에서 얼마나 게임이 완성도를 가지느냐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완성도는 대규모 테스트를 통해서 고객들의 반응을 듣고
그것을 게임에 접목하고 수정하면서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큰 강점이 있다.
그는 게임을 테스트 하는 집단의 소중함을
이미 그가 세계 최초로 제안하고 구현한 배틀넷의 성공을 통해서 깨달았다.
이 덕분에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품질관리 집단인 스트라이크 팀을 운영할 수 있었고
실제 수 많은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었다.
어쩌면 21세기의 게임 크리에이터는 완전한 천재형으로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는 것보다
빌 로퍼처럼 기존 장르에 고객의 요구를 최대한 받아들여서
완성도를 높일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고객의 의견을 듣다 보면 획기적인 게임아이디어도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에서
좋은 게임 아이디어를 얻는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의 게임 개발철학과 삶
2003년에 빌로퍼는 전격적으로 블리자드 노스 부사장직을 그만 두었다.
경영난에 봉착한 비벤디가 게임 개발팀과는 대화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면서 생긴 불만 때문이었다.
그는 블리자드 노스에서 같이 일했던 12명의 직원과 함께 플래그쉽을 전격적으로 창립한다.
그는 현재 2007년 발매를 목표로 PC 용 FPS 게임인 헬게이트 런던을 제작 중에 있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게임이란 배우기는 쉽지만 최고수가 되기는 어렵고
매번 플레이 할 때마다 새로운 재미가 느껴지는 게임이다.
그는 게임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는 우선 매 순간 게임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순간 GTA와 같은 게임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영화를 통해서도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데
스타 크래프트의 저그는 영화 에일리언에서 프로토스는 영화프레데터를 참고 했다고 한다.
사실 회사이름도 팀원들과 같이 캐리비안의 해적을 보고 나서
커다란 배를 뜻하는 플래그쉽으로 결정한 것이다.
커다란 배는 전체 선원들이 합심해서 험난한 바다를 항해하듯이
회사의 모든 직원들이 일심동체가 되어서 앞으로 전진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리고 게임이라는 바다를 마음껏 항해 할 수 있는 베테랑이라는 의미로
플래그쉽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그는 책에서도 역시 게임 아이디어를 얻는 중요한 루트이다.
현재 개발중인 헬게이트 런던도 언더그라운드 런던이라는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또한 많은 사람과의 교류도 중요하다고 한다.
대규모 베타테스트 팀인 스트라이크 팀을 운영했던 그는 이 부분에서 확실한 강점이 있다.
게임 시장에서 가정용 게임기 시장의 비중이 커지면서
PC 게임은 몰락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그는 그런 의견에 동의하지만
PC게임은 온라인 게임으로 플랫폼으로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특히 지금의 아름다운 부인과 결혼하는데 있어서 바로 게임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원래 서로 아는 친구 사이였던 둘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현재 부인의 집에 놀러를 갔다고 한다.
마침 그때 디아블로 2를 재미있게 했던 그녀는 빌 로퍼에게 자신이 키운 로그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고 레벨 캐릭터를 능수능란하게 조작하는 모습에 빌 로퍼는 그녀가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 날 이후 둘은 연인 사이가 되었고 결국은 결혼을 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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