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 (Blizzard Entertainment)

시나리오/게임기획|2019. 10. 30. 13:30

 

 

기가막힌 우연이 만들어낸 창업 비화

 

 

블리자드는 1991년 2월 UCLA 대학의 졸업생이었던 알랜 애드햄(Allen Adham)을 중심으로 해서 

마이크 모하임(Michael Morhaime), 프랭크 피어스(Frank Pearce) 이들 삼인방이 의기투합하여 

실리콘앤 시냅시스(Silicon & Synapse) 라는 이름으로 

캘리포니아 남부의 코스타메이사 (Costa Mesa)에 창업한 컴퓨터 게임 전문 개발회사였다. 

 

그런데 블리자드의 시작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사장 알렌 애드햄이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때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와 

에스터 로이드(Asteroid)라는 게임을 처음 본 순간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는 학교에서 점심시간이나 방과후에는 바로 오락실에 달려가서 끊임없이 게임을 했다. 

마침 그의 형도 게임을 무척 좋아했는데

그래서 알렌 애드햄과 그의 형은 매일 집에서 게임을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린다.

아버지에게 공부에 필요한 것이니 애플2 컴퓨터를 사달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박사출신의 엔지니어인 아버지와 곤충학자인 어머니는

교육적인 측면에서 알렌 애드햄에게 애플2 컴퓨터를 구입해줬다.

비록 게임을 하기 위해서 애플2 컴퓨터를 샀지만

그래도 알렌 애드햄 인생전체로 보면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음악을 많이 듣다보면 직접 작곡을 하고 싶어지고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가 되고 싶어지기 마련이듯이 

게임을 오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직접 게임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마련이다. 

마침 그는 동네 친구였던 브라이언 파고(Brian Fargo ) 덕분에 

게임제작에 대한 여러가지 노하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분 코퍼레이션(Boone Corporation)이라는 회사에서 게임테스트를 담당했던 브라이언 파고는 

애플 2컴퓨터가 있는 알렌 애드햄을 끌어 들여서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그 후 브라이언 파고는 한때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의 명가로 통했던 인터플레이(InterPlay)를 창업한다. 

마침 미국의 명문대학 UCLA의 컴퓨터 공학과에 진학한 알렌 애드햄은 

뛰어난 프로그래밍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었고 브라이언 파고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브라이언 파고는 알렌애드햄에게 프리랜서 방식으로 여러가지 게임의 제작의뢰를 맡겼다. 

또한 알렌 애드햄 스스로 게임 관련일들을 찾아서 프로그래밍을 해주었다. 

이때 발표한 대표적인 게임으로는 

베틀체스(Battel chess), 마인드 쉐도우(MindShadow), 

건슬링거 (Gunslinger) 글로벌 커맨더(Global Commander)등 다수의 게임이 있었다. 

한때 그는 여름방학에만 1만2천달러나 벌 정도로 꽤 짭짤한 아르바이트였다.

한편 

대학에서 알렌 애드햄과 가장 친했던 친구가 바로 공동창업자중에 한명인 마이크 모하임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가까운 친구가 되는 데 있어서 꽤 운명적이고도 재미있는 인연이 작용했다.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던 대학초에 알렌 애드햄은 실습실에서 컴퓨터를 쓰다가 

프린팅을 하기 위해서 잠시 자리를 비웠다. 

이때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마이크 모하임은  장난끼가 발동하였다. 

알렌 애드햄 몰래 컴퓨터에 다가가 비밀번호를 바꾸었다. 

 

그런데 자리에 다시 돌아온 알렌 애드햄은 

원래 자신이 입력했던 비밀번호를 입력하고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컴퓨터를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순간 마이크 모하임은 깜짝 놀랐다. 

분명 비밀번호를 바꿨는데 알렌 애드햄이 컴퓨터에 아무런 이상 없이 접속을 했기 때문이다. 

마이크 모하임은 즉시 알렌 애드햄에 다가가 컴퓨터의 비밀번호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알렌 애드햄이 자신의 비밀번호를 순순히 이야기 할리가 없었다. 

그러자 마이크 모하임은  비밀 번호가 “JOE” 가 아니냐고 다시 되물었고 

이에 자신의 비밀번호를 들켜버린 알렌 애드햄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알렌 애드햄이 화들짝 하면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하는 표정을 짓자 

마이크 모하임은 재미난 표정을 하고는 아까 전에 있었던 전후사정을 들려주었다. 

같은 학과였지만 서로 대화도 나누지 않던 어색한 사이였던 둘은 

신기하게도 오래전부터  애용하는 컴퓨터 비밀번호가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사건 이후 묘한 인연을 느낀 알렌 애드햄과 마이크 모하임은 

대학내에서 둘도 없는 가장 친한 친구사이가 되었다.

1990년 대학을 졸업할 무렵 알렌 애드햄은 

평소 죽이  잘맞고 프로그래밍에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던 마이크 모하임에게 

게임회사를 공동창업하자고 말하였다. 

하지만 마이크 모하임은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고 

미국의 명문 대학으로 통하는 UCLA를 나온 그는 

미래가 불안한 게임회사를 차릴 생각이 없었다. 

그러자 알렌 애드햄은 이미 자신에게 게임에 대한 기술이 충분하고 

우리에게는 부양을 책임진 가족도 없고 대학등록금 융자로 빌린 빚도 없으니 

모험을 한번 하자고 꼬드겼다. 

또한 우리가 잃게 되는 것은 어차피 시간뿐이고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청년인 만큼 

한번 정도 사업을 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마이크 모하임은 안정된 직장을 원했고 

그래서 당시 컴퓨터 하드디스크 제조업체중에서 1등을 달리던 

웨스턴 디지털에 취직을 해서 부품설계를 담당하는 일을 하게된다. 

그런데 집념의 사나이 알렌 애드햄이 여기에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마이크 모하임이 다니는 웨스턴 디지털에 취직을 해서는 

무려 1년간이나 마이크 모하임의 뒤를 쫓아다니며 같이 회사를 차리자고 들들 볶았다. 

알렌 애드햄은 뛰어난 언변의 실력자이기도 했는데 

마이크 모하임은 회사를 차리기만 하면 당장 성공은 보장된것처럼 느낄정도로 설득당하였다고 한다. 

사실 알렌 애드햄은 회사를 창업한 후에도 여러 번 사업상의 위기를 겪었지만 

자신에게 가장 힘든 시기는 마이크 모하임과 회사를 차리기 위해서 그를 설득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게임 회사를 차리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던 

그의 꿈이 이루어지느냐 마느냐의 중요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블리자드 창업자 알랜애드햄의 성공 키워드

 

 

드디어 1991년 알렌 애드햄과 마이크 모하임은 

각자의 부모님으로부터 후원을 받은 1만달러씩을 공동출자하여 회사를 차리기로 약속하게 되고 

나중에 창업자이자 첫번재 직원으로 대학교 동문인 프랭크 피어스도 합류하였다. 

사실 알렌 애드햄은 이미 1990년 대학을 졸업하는 기념으로 

아버지에게 유럽 여행을 가겠다면서 1만달러를 받아놓았다. 

그리고 그 돈을 1년동안이나 보관한 끝에 사업자금으로 투자를 하게 된것이다. 

이렇게 창업을 한 실리콘 앤 시냅스는 

알렌 애드햄이 사장이었고 

마이크 모하임이 부사장 그리고 프랭크 피어스가 직원으로 이루어진 매우 작은 회사였다. 

하지만 알렌 애드햄은 뛰어난 수완가였다. 

인터플레이뿐만 아니라 버진 인터랙티브와 선소프트 등

LA 오렌지 카운티를 기반으로 한 업체들을 돌아다니면서

알렌 애드햄은 많은 일꺼리들을 찾아서 계약을 했고 첫해  25만달러라는 성공적인 매출을 올렸다.

 

실리콘 앤 시놉시스의 창업자들은 돈을 벌면 자신들의 월급으로 쓰기보다는

기숙사에서 혼자 게임을 개발하던 실력자 팻 와어이트(Pat Wyatt) 같은

UCLA의 동문들 위주로 직원을 뽑았다.

그래서 직원들은 고용주와 고용인이라는 딱딱한 관계가 아니라 친구처럼 친밀하게 지냈다.

덕분에 회사분위기는 대학교의 동아리 같았다.

건물 인테리어 자체가 컬러풀 하였고

회사 벽면에는 슈퍼맨이나 배트맨 같은 유명 만화들의 포스터가 붙여져 있었다.

또한 각 직원들의 책상에는 장난감들이 즐비하였다.

특별히 정해진 근무시간 없었던 그들은 회사내에서 수시로 게임을 하였다.

매직더 게더링이라는 카드 게임이 등장했을 때는

사원들 전체가 피자를 시켜놓고 함께 몇날 며칠을 게임에 매달렸다.

그들의 점심 시간은 회사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이기도 하다.

누군가 밖에 나가서 햄버거 같은 먹거리를 사오는 동안

직원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역시 게임을 하면서 친밀하게 지냈다.  

퇴근시간이 되면 직원 모두가 두 세대의 자동차에 나누어서 탄 후

함께 영화를 보고 맥주를 마시면서 재미있게 지냈다.

또한 주말에는 회사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만화를 함께 보기 위해서 회사에 모일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알렌 애드햄은 게임을 좋아하는 우리가 게임을 만들기 때문에 

결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게 될 것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 내에서 열심히 게임을 하도록 권장하였다.

컴퓨터 게임 전용룸을 만들어서 모든 종류의 게임기를 구비해놓고서

좋아하는 게임을 얼마든지 할 수 있게 하였는데

당시 최고 인기있었던 게임은 캡콤의 스트리트 파이터로 매일 동료들의 피나는 혈투가 벌어졌다.

또 다른 방에는 보드 게임 전용룸으로 만들어서 각종 카드게임과 보드게임을 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직원들에게 회사내에서 게임을 마음껏 즐기도록 하는 회사방침이

블리자드의 성공요인이기도 하지만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많은 게임회사들이 테스트가 아닌 경우 회사내에서 게임을 하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다.

업무시간에 게임을 하면 분위기가 흐트러지기 때문이고

게임을 즐기는것과 만드는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게임을 좋아한다고 해서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것도 아니고

능력이 있다는 소리는 더더욱 아닐뿐더러

게임을 좋아하게 되면 오히려 일보다는 게임에 매달려서 업무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또한 회사에서 게임을 하게 되면 업무와 일이 불분명해지고

회사 분위기 전체가 느슨해지면서 게임개발프로젝트 자체가 흔들리는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게임회사는 직원들이 회사에서 게임을 하는 것을 엄격하게 관리하는데

오히려 블리자드는 권장을 하였다.

특히 회사도 동아리 처럼 자유분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번에 20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할정도로 엄청난 생산성을 보이고 있었으니

다른 게임회사들의 입장에서는 블리자드가 미스터리한 존재였다.

이는 블리자드 직원들 자체가 훌륭한 아이디어들을 게임으로 만들 수 있는 기본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유저의 입장에서 게임을 느끼는 부분을 정확하게 캐취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고등학교시절부터 게임개발을 통해서 노하우를 쌓은 알렌 애드햄이 리더쉽이야 말로

중요한 요한 성공 키워드이다.

 

 

외주전문회사로 어려웠던 시절을 지낸 블리자드 창업 초기

 

 

블리자드는 창업 첫해인 91년도에는 주로 외부에서 제작의뢰를 받아서 컨버전작업을 해주었다. 

90년대 초반에는 

닌텐도의 슈퍼 패미콤과 세가의 메가드라이브 사이에 불꽃튀는 

16비트 가정용 게임기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또한 개인용 컴퓨터도 IBM 호환 PC와 매킨토시 이외에 여러 컴퓨터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래서 90년대 초반만해도 게임하나를 각 게임기와 컴퓨터에 맞춰서 개발을 해야 했다. 

슈퍼패미컴으로 출시한 게임을 

그대로 메가드라이브에서 똑같이 작동하는 게임으로 만드는 것을 컨버전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회사 규모가 큰 업체에서는 가 기기별로 똑같은 게임을 만드는 것은 시간낭비였다. 

컨버전은 많은 기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고급인력을 투입하는건 돈 낭비이기도 했다. 

그래서 실리콘앤 시냅스는 

이 틈새시장을 노려서 각종회사에 접근하여 게임들의 컨버전 업무를 맡았다. 

외주로 게임을 제작한 게임으로는 

배틀체스2, 반지의 제왕(he Lord of the Rings), 

데스 앤드 리턴 오브 슈퍼맨(The Death and Return of Superman), 

저스티스 리그 태그 포스(Justice League Task Force) 등이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컨버전 업무는 단순 하청 업무에 불과하다. 

외주를 주는 원청업체에서 넉넉한 돈을 줄리가 없었고 

게임이 히트를 해도 정해진 계약금만 받아야 하기 때문에 회사성장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알랜 애드햄은 외주제작을 하는 한편으로 자체적인 게임 개발을 준비하게 된다. 

그 첫걸음이 되는 게임이 바로 RPM Racing(Radical Psycho Machine Racing)이다. 

원래 인터플레이가 기획을 담당하고 

블리자드가 프로그래밍기술과 그래픽을 제공하는 형태로 제작된 공동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기획은 문서상에 존재하는 설계도였을 뿐이었고 

실질적인 게임개발은 전적으로 블리자드가 책임을 지고 있었던 만큼 

4달동안 걸쳐서 실제 개발 완료된 게임의 결과물에는 블리자드에서 내놓은 많은 아이디어들이 구현되었다. 

 

컴퓨터가 아닌 닌텐도의 슈퍼패미콤으로 제작된 RPM Racing은 아쉽게도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알렌 애드햄은 RPM Racing을 통하여 게임 개발에 대한 노하우를 얻고 

독자적인 게임을 개발하는데 자신감을 얻었다. 

그래서 알렌 애드햄과 마이크 모하임은 독자적인 게임 개발을 서두른다.

그는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레이싱에다가 락앤롤음악을 합친 게임 락앤롤 레이싱을 개발한다.  

이 게임을 통하여 회사를 알리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알렌 애드햄은

여기에 탄력을 더하여 로스트 바이킹을 개발하여 미국내에서 30만개나 판매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게임잡지에서는 락앤롤 레이싱과 로스트 바이킹을 높이 평가하여

게임기부분 올해의 최고 게임 개발사 뽑힐 정도로 게임성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알렌 애드햄이 로스트 바이킹 6만개 정도 팔릴것이라고 생각하고 

인터플레이와 4만달러에 판매계약을 맺었다. 

처음 인터플레이에서 계약을 마치고 사무실에 있는 마이크 모하임에게 계약서를 보여줬을때는 

말을 하지 못할정도로 믿기지 못했다. 

그전에는 만달러정도 받는게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판매량은 당초 예상했던 최대치보다 다섯배나 더 팔렸던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블리자드의 금전상황은 좋지 못했다. 

또한 외주작업을 의뢰해주는 퍼블리셔 업체들이 수표로 돈을 지급하였기 때문에 

결제 날짜까지 기다려야 했고 그로 인해서 제때에 돈을 지불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알렌애드햄과 마이크 모하임은 회사운영을 위해서 개인 빚 2만달러나 지고 있었지만 

회사의 임대료나 전기세처럼 급전이 필요할 때는 신용카드로 메꾸어야 했다. 

여러 번 신용의 위기를 겨우 넘기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갈수록 자금 압박사정이 심각해져 갔고  

알렌 애드햄과 마이크 모하임은 일하는 시간보다 돈을 빌리러 다녀야 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런데 알렌 애드햄과 마이크 모하임은 

많은 은행과 게임업체들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매우 중요한 사실 한가지를 알게 된다.  

사람들이 로스트 바이킹이나 락액롤 레이싱 처럼 그들이 만든 게임은 잘 알고 있었지만 

정작 그들의 회사이름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리콘 앤 시냅스라는 이름이 부르기도 힘들고 외우기도 힘들기 때문이었었다. 

특히 신경세포와 신경세포를 이어주는 시냅스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더더욱 회사이름을 쉽게 인지하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결국 회사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첫번째로 바꾼 이름이 카오스 스튜디오(Chaos Studios)이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뉴욕의 한 회사로부터 회사이름이 같다면서 항의를 받게 된다. 

10만 달러에 회사명을 구입하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알렌 애드햄은 새로운 이름을 찾기 위해서 사전을 꺼내들었다. 

알렌 애드햄은 다시 환타지속 소설중에 대표적인 몬스터인 오우거 스튜디오를 제안하지만 

모든 직원으로부터 거절을 당한다. 

결국 알렌 애드햄은 사전에서 무작위로 단어를 뽑아 냈고 그 이름이 바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였다. 

블리자드는 겨울에 부는 강력한 눈보라를 뜻하는데 

사람들에게 회사의 이미지와 브랜드를 강렬한 느낌으로 전달 하고 싶었던 마이크 모하임에게는 

블리자드라는 이름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알랜 애드햄이 보기에는 일반 사람들에게 회사의 브랜드 인지도가 낮았던 이유가 

회사이름이 기억하기에 어려웠던 것도 있었지만 

개발만 하고 독자적인 유통을 하지 않았던 것도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게임유저들은 유통사 브랜드에 주목하지 

실제 개발사까지는 신경을 쓰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 동안 인터 플레이를 통해서 게임을 유통했던 관례를 깨고 

개발에서부터 유통까지 직접 하기로 결정한다.

알랜 애드햄은 완벽주의자이자 일중독자였다. 

그래서 회사내에 개발되는 게임들이 자신의 손을 거치지 않고 개발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결국 회사내에서 개발중인 모든 게임 개발프로젝트에 처음부터 끝까지 손수 관여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서 알렌 애드햄은 과중한 업무로로 체력이 바닥이 나기 시작했고 

결국 회사의 프로젝트를 대폭 줄이고 

회사에 두 개의 프로젝트만을 운영하는 선택과 집중의 경영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그런데 당시 블리자드의 뛰어난 게임 개발능력에 매력을 느끼고 인수를 제의 하는 회사들이 몇 군데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당시 교육용 소프트웨어로 유명했던 Davidson & Associates였다. 

이 회사는 1989년 밥데이비슨과 그의 부인 잔 데이비슨이 함께 세운 소프트웨어 회사이다. 

저학년의 아이들에게 수학을 쉽게 가르쳐주는 멀티미디어 프로그램인 

매스 블래스터를 만들어서 큰 히트를 기록하게 되고 

풍부한 자금력과 전국적인 유통망을 갖춘 업체로 거듭났다. 

블리자드가 키드웍스(KidWorks)라는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Davidson & Associates 에 납품함으로써 

두 회사의 창업자간에 친분을 쌓게 된다.

처음  알랜 애드햄은 Davidson & Associates의 유통망을 이용해보고자 

창업자인 밥 데이빗슨과 잔 데이빗슨에게 회사의 사정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런데 밥데이비슨은 게임과 같은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었다면서 

블리자드를 자신들의 회사에 매각하라고 권유하였다. 

블리자드를 인수해서 주식시장에서 회사의 주식가치를 높이려는 경영계획의 일환이었다.  

처음에 알렌 애드햄은 돈을 벌기 위해서 게임을 만드는게 아니라면서 정중하게 거절한다. 

그렇지 않아도 멀쩡했던 게임회사가 

다른 규모가 큰 소프트웨어회사와 합병을 했다가 

시너지효과는 커녕 오히려 회사문화의 이질감 때문에 망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던 그였다. 

하지만 밥 데이빗슨은 끈질기게 알렌애드햄에게 전화를 걸어 설득하였다. 

결국 하루하루 자금 문제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알렌 애드햄은 

블리자드에 대한 경영과 관리에 참견을 안하는 대신 주식전체를 넘겨주겠노라고 말하였다. 

어차피 게임에 대해서 잘 몰랐던 데이빗슨 어소시에츠에서는 

게임 개발에 대한 어떠한 간섭도 안 한다는 약속을 해주었고 

블리자드는 전격적으로 데이빗슨 어소시에츠의 게임 사업부로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 블리자드는 10여명내외의 직원이었지만 그들의 기술력을 높이평가하여서 

회사의 주식가치는 675만 달러에 이르렀다. 

이 거래로 인하여 1994년 20대의 알렌 애드햄은 백만장자의 반열에 오른다. 

그는 그 돈을 받자 마자 닛산의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인 패스 파인더를 구입하면서 

백만장자로써의 기분을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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