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난학의 개척자 스기타 겐파쿠 (이종각, 2013)

시나리오/역사|2022. 9. 18. 18:00

책소개
일본 에도시대(1603~1867)에는 다양한 서양 문물이 일본으로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네덜란드를 통해 들어온 서양 문물과 과학에 관심을 갖고 직접적으로 연구를 한 학문이 바로 난학이다. 난학은 이후 유행처럼 번졌고, 일본이 근대 사회로 접어드는 데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스기타 겐파쿠(1733~1817)가 바로 난학의 유행을 이끈 장본인이다. 번의藩醫(다이묘 등을 진료하는 의사)에 불과하던 그는 어떻게 '난학의 선구자'가 되었을까? 이 책은 단순한 의사에서 위인이 된 그의 삶, 특히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서양 책 번역에 도전해 <해체신서解體新書>라는 인체 해부서를 성공적으로 펴내기까지 악전고투하는 과정과 당시 일본의 변화를 함께 잘 보여 준다.


목차
일러두기
프롤로그_에도 형장에서

1장 계기_인체 해부 참관
번의藩醫의 아들, ‘오란다 의학’에 흥미를 가지다 │ ‘후와케腑分’ 참관은 행운 │ 《타펠 아나토미아》와 인체 해부 │ 네덜란드 해부도에 감탄하다 │ 수십만 명에 이른 기독교 신자 │ 쇄국령 속 서양에 큰 관심을 둔 쇼군

2장 결의_무모한 도전
겐파쿠, 《타펠 아나토미아》 번역을 제안하다 │ 번역 작업의 맹주가 된 료타쿠│ 원본엔 없는 책 이름, 《타펠 아나토미아》 │ 번역을 위해 알파벳부터

3장 전진_악전고투 속 번역
남녀 나신도 │ 장벽에 부딪힌 번역 작업 │ 료타쿠 주도하에 한 발씩 전진│ 겐파쿠, 《홍모담》 사태를 걱정하다

4장 출간_수완을 발휘한 겐파쿠
막부 반응을 떠보다 │ 《해체약도》 간행 │ 《해체신서》 역자 이름 기재를 거부한 료타쿠 │ 《해체신서》, 드디어 출간 │ 한방의들의 거센 비난

5장 융성_난학의 선구자
난학의 후계자들 │ 사위가 된 양아들 │ 료타쿠와 겐파쿠의 합동 장수연 │ 돈과 명예를 한 몸에 │ 막부, 난학자들에게 번역을 명령하다

6장 대조 _ 화려한 겐파쿠, 곤궁한 료타쿠
오란다인 귀신, 란카 │ 가정적으로도 대조적인 료타쿠와 겐파쿠 │ 료타쿠의 죽음을 외면한 겐파쿠 │ 단순한 의사가 아닌 겐파쿠 │ 쇼군을 알현하다 │ 회고록 《난학사시》 집필

7장 조선의 사정
조선통신사 왕래의 의미 │ 조선에 들어온 유럽 문물 │ 소현세자와 아담 샬 │ 홍대용의 《을미연행록》 │ 아담 샬의 《주제군징》 │ 연암이 소개한 화란류 처방 │ 최한기의 인체 해부도

에필로그_겐파쿠가 죽은 뒤
맺는말
참고문헌
부록 1 스기타 겐파쿠 연보
부록 2 스기타 겐파쿠 회고록, 《난학사시》 전문
부록 3 《해체신서》 해부도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본 근대의 시작, 난학蘭學 그리고 스기타 겐파쿠
일본 에도시대(1603~1867)엔 다양한 서양 문물이 일본으로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네덜란드를 통해 들어온 서양 문물과 과학에 관심을 갖고 직접적으로 연구를 한 학문이 바로 난학이다. 난학은 이후 유행처럼 번졌고, 일본이 근대 사회로 접어드는 데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스기타 겐파쿠(1733~1817)가 바로 난학의 유행을 이끈 장본인이다. 번의藩醫(다이묘 등을 진료하는 의사)에 불과하던 그는 어떻게 ‘난학의 선구자’가 되었을까? 이 책은 단순한 의사에서 위인이 된 그의 삶, 특히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서양 책 번역에 도전해 《해체신서解體新書》라는 인체 해부서를 성공적으로 펴내기까지 악전고투하는 과정과 당시 일본의 변화를 함께 잘 보여 준다.

난학의 선구자, 근대 의학의 개척자가 된 의사
1771년 초봄, 일본의 에도(지금의 도쿄)의 한 형장에서 일본 근대 의학을 혁명적으로 바꾸고, 일본의 근대를 여는 단초가 되는 일이 일어난다. 스기타 겐파쿠를 비롯해 에도에서 근무하고 있던 각 번의 의사인 마에노 료타구, 나카가와 준안 등이 인체 해부를 난생 처음으로 참관하게 된 것이다.
이날 이들은 이전에 구해 놓은 네덜란드 인체 해부서 《타펠 아나토미아》를 가져간다. 그런데 이 해부서에 실린 인체도와 실제 인체의 모습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그리고 곧바로 이들은 이 해부서를 일본어로 번역하기로 결의한다.
당시 겐파쿠는 네덜란드어를 전혀 몰랐고, 함께 참관한 의사들의 네덜란드어 실력도 극히 초보 수준이었기 때문에, 이 결의는 무모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불가능에 가까운 이 일을 성공시키고야 만다. 약 4년에 걸친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번역을 끝내고 《해체신서》라는 번역서를 출판한 것이다.
이렇게 세상에 나온 《해체신서》는 일본 역사상 첫 서양 책 번역이라는 불후의 업적이자 일본 근대 의학의 여명을 밝힌 쾌거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주도한 스기타 겐파쿠는 ‘난학의 선구자’, ‘일본 근대 의학의 개척자’로 불리며 일본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불후의 업적, 《해체신서》와 《난학사시》
《해체신서》 출간 이후 서양 의학뿐 아니라 천문, 지리, 수학, 병학, 박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일본어로 번역돼 서양의 새로운 지식이 일본으로 들어왔다. 즉 난학이 100년 가까이 일본 근대 의학뿐 아니라 과학과 예술, 나아가 교육, 사고방식, 관습 등 일본인과 일본 사회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며 퍼져 나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난학 열풍에 불을 지핀 《해체신서》를 동료들과 함께 펴낸 뒤, 스기타 겐파쿠는 본격적으로 난학에 몰두한다. 의사 일을 하면서도 난학을 가르치는 사숙인 난학주쿠를 만들어 후계자를 양성했다. 그 후 난학주쿠는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난학주쿠 출신 젊은이들은 막부 말기와 메이지유신 시대에 걸쳐 일본을 변화시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또 겐파쿠는 말년에 《난학사시蘭學事始》라는 회고록을 펴냈는데, 난학을 개척한 인물이 직접 기록한 유일한 회고록이자 난학이 처음 어떻게 시작돼 점차 확산, 발전돼 갔는지를 잘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로 남았다.
이처럼 스기타 겐파쿠와 그가 남긴 두 권의 책은 일본 역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책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담아냄으로써 그동안 쉽게 접하지 못한, 일본 역사의 또 다른 면을 잘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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