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 극장 (카렐 차페크, 2012)

언어/문학|2022. 12. 18. 16:00

책소개
'열린책들 세계문학' 204권. 카프카, 쿤데라와 함께 체코 문학의 길을 낸 작가 카렐 차페크의 작품 세 편을 수록하였다. 형 요세프 차페크와 함께 창작한 표제작 '곤충 극장'은 체코의 연극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인기를 누리는 '곤충 극장'의 근본적인 힘은 사람을 벌레나 다를 바 없는 하찮고 무의미한 존재로 상정한 그 기본 설정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곤충의 세계를 여행하게 된 인간 관찰자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 극은 인간 존재와 무섭게 닮아 있는 곤충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들을 보여 주며 진행된다. 차페크의 벌레들은 혐오스럽고 치졸하지만 속속들이 인간적이다. 그들의 욕망과 잔악한 악행들은 곧 흉측하게 일그러진 인류의 초상이다.

차페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조리 속에서 위기를 맞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이, 찬란히 불타고 삶을 끝맺는 하루살이들의 아름다움과 같다는 휘발성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 데 성공한다. 금세 사그라지는 것, 너무나 힘없이 짓밟히고 피 흘리는 것, 의미를 찾기에는 너무나 짧고 어리석은 존재, 이 유한성과 한계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것을 흥미롭고 신비스럽게 한다.

삶이 유한하고 덧없기 때문에, 치졸하고 소소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또한 의미를 가진다는 차페크 특유의 테마는 '마크로풀로스의 비밀'로 이어진다. 또한 1937년 발표한 '하얀 역병'은, 스스로 인간의 조건을 초월한 초인이라 착각하는 독재자와 근시안적인 개인들의 뒤틀어진 이기주의가 결합해 파국을 초래하는 과정을 그린 희곡이다.


목차
곤충 극장
마크로풀로스의 비밀
하얀 역병
역자 해설: 인류여, 불멸을 꿈꾸지 말라 - 두 번의 세계 대전과 함께 완전 연소한 작가의 <삶>
카렐 차페크 연보


출판사 제공 책소개


양차 대전 사이, 광기의 유럽을 살아간 휴머니스트
카렐 차페크의 치열한 고민, 그러나 위트 넘치는 기록들.
유한하고 덧없고 치졸하고 비루하며 지독히도 어리석은,
그러하기에 아름다운 드라마로 변신하는 당신의 모든 순간에 바치는 찬가!

똥 한 덩어리에 일생의 욕망을 투자하는 쇠똥구리, 타자의 목숨을 빨아 부와 권력을 누리는 맵시벌, 무책임한 연애로 청춘을 탕진하는 나비, 과학으로 무장한 채 종족 학살을 위해 전진하는 개미들……. 개봉 박두! 무섭도록 인간을 닮은 벌레들이 당신과 나를 연기한다. -「곤충 극장」(1921)

젊음의 묘약을 마시고 무려 3백 년을 살아온 팜므 파탈 등장! 너무 오래 살아서 이제는 모든 것이 지루하고 덧없지만 죽음이 두려워 오늘도 마법의 약을 마시는 이 여인, 과연 그녀를 <초인>이라 불러도 되는 걸까? -「마크로풀로스의 비밀」(1922)

원인 모를 역병이 전 세계를 휩쓰는 와중에도 일단 전쟁부터 하고 보자는 독재자 양반. 백신을 개발한 의사에게 평화만 약속하면 만사형통인데 끝내 싸워서 세상을 다 가지겠다는 그분, 정말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하얀 역병」(1937)

욕망과 잔악한 악행들로 흉측하게 일그러진 인류의 초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란히 불타고 끝내 사그라지는 <인간의 삶>은 아름답다.
형 요세프 차페크와 함께 창작한 「곤충 극장」은 체코의 연극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인기를 누리는 「곤충 극장」의 근본적인 힘은 사람을 벌레나 다를 바 없는 하찮고 무의미한 존재로 상정한 그 기본 설정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살았던 작가 프란츠 카프카 또한 「변신」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린 소시민이 거대한 곤충으로 변해 죽음을 맞는 내용을 다루었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소위 부조리에 대한 시대적 인식의 반영인 셈이다. 곤충의 세계를 여행하게 된 인간 관찰자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 극은 인간 존재와 무섭게 닮아 있는 곤충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들을 보여 주며 진행된다. 

 

차페크의 벌레들은 혐오스럽고 치졸하지만 속속들이 인간적이다. 그들의 욕망과 잔악한 악행들은 곧 흉측하게 일그러진 인류의 초상이다. 다만 카프카와 달리 차페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조리 속에서 위기를 맞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이, 찬란히 불타고 삶을 끝맺는 하루살이들의 아름다움과 같다는 휘발성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 데 성공한다. 금세 사그라지는 것, 너무나 힘없이 짓밟히고 피 흘리는 것, 의미를 찾기에는 너무나 짧고 어리석은 존재, 이 유한성과 한계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것을 흥미롭고 신비스럽게 한다.

 

삶이 유한하고 덧없기 때문에, 치졸하고 소소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또한 의미를 가진다는 차페크 특유의 테마는 「마크로풀로스의 비밀」로 이어진다. 불후의 팜므 파탈 에밀리아 마르티, 모든 남성들을 수수께끼 같은 매혹으로 유혹하고 완벽한 성악으로 사로잡는 이 프리마 돈나는 알고 보면 3백 년의 생을 뒤로한 불사신이다. 본질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무의미한 욕망의 상징처럼 세대를 이어 가며 1백 년을 끌어 온 그레고르의 소송은, 에밀리아 마르티의 등장과 함께 짧고 처절하고 화려한 드라마로 변신한다. 소소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도, 그 속의 짧은 사랑과 늙으면 시들 열정도, 시든 장미 꽃다발처럼 쉽사리 휘발하는 무대의 감동이라도, 유한하고 덧없기에 의미가 있음을 차페크는 이 슬프고도 우스운 극으로 역설한다. 이처럼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향한 인간 욕망의 철저한 허망함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연극은 초인이 아닌 <평범한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덧없는 욕망과 아름다움, 지극히 일상적인 디테일,
그것이 곧 <사람>이며 <사람다움>이니…….
화려한 불멸의 유혹을 뿌리치고 평범한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휘발성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것, 이는 기자로서 매일 쓰던 칼럼 속에서도 차페크가 늘 주목하고 돌아보던 주제였다. 언론인으로서 이상적인 시민 사회를 꿈꾸며 <체코 자유 민주주의 공화국>을 열정적으로 옹호한 것도, 목숨을 걸고 반(反)나치 운동에 앞장선 것도, 오로지 이처럼 휘발적인 아름다움과 덧없는 욕망과 일상적인 디테일로 충만한 <사람>의 <삶>을 근심하는 행보였기 때문이다.

 

인류라는 추상이 아닌 <사람>이라는 실존을, 공허하게 현혹하는 수사나 클리셰가 아닌 명료한 언어를 바라보는 차페크의 시각은, 현란한 수사를 동원한 군중 선동가였던 히틀러의 이데올로기가 품은 무서운 위험성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렸다. 1937년 발표한 「하얀 역병」은, 스스로 인간의 조건을 초월한 초인이라 착각하는 독재자와 근시안적인 개인들의 뒤틀어진 이기주의가 결합해 파국을 초래하는 과정을 그린 희곡이다.

 

이 작품은 독일에서 히틀러와 나치즘이 승승장구하게 된 과정을 적나라하게 ? 거의 숨김없이 ? 그려 낸다. 청년 실업, 경제 독과점, 군수 산업과 정치권력의 결탁, 소시민의 이기주의와 침묵하는 이상주의까지. 그러나 이러한 시사적인 주제와 명료한 정치적 의도의 배후에는 <노화와 죽음이라는 슬픈 존재 조건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가>라는 질문, 즉 「곤충 극장」과 「마크로풀로스의 비밀」을 비롯한 차페크의 모든 글을 관통하는 실존주의적 문제의식이 자리한다. 그리고 이는 차페크 문학적 영감의 마르지 않는 샘이었으며 파시즘과 군중심리 앞에서 침묵하기를 거부하는 양심적 지식인의 정치적 힘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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