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 동화집 (샤를 페로, 2012)

언어/문학|2022. 12. 18. 14:00

책소개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 장화 신은 고양이….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가장 많이 읽힌 동화들이고 애니메이션으로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들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구전되던 민담들을 이야기로 재구성해 최초로 책에 수록한 사람이 샤를 페로다. 이 책은 수많은 버전으로 각색된 이 동화들의 오리지널 버전이다.

18세기 프랑스문학을 전공한 역자의 전문성 있는 번역은 페로가 창작한 처음 그대로의 모습을 가감 없이 느낄 수 있다. 이 책에는 산문동화 8편, 운문동화 3편이 알차게 실려 있다. 페로의 운문동화는 국내 독자들이 잘 모르지만 산문동화 못지않게 재미있다. 동화라고는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이 이야기들이 어린이들만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책에는 19세기 유럽 최고의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의 삽화 41컷이 실려 있다. 도레의 삽화를 통해 페로의 이야기들은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페로의 동화집에는 도레의 삽화가 수록되어야 정통성을 인정받는다.


목차
헌사 : 공주님께
산문 동화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빨간 모자
푸른 수염
장화 신은 고양이
요정들
상드리용(신데렐라)
도가머리 리케
엄지 동자

운문 동화
그리젤리디스
당나귀 가죽
어리석은 소원
해설
지은이에 대해
작품 연보
옮긴이에 대해


1683년 자신의 정치적 후원자였던 콜베르의 사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페로는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동화집의 집필에 전념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아닌 셋째 아들 피에르를 이 책의 저자로 내세운다. 르네상스 이래 프랑스 식자층과 문단의 작가들이 구비적 성격이 강한 서사체에 의미를 크게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림원 회원인 페로의 동화집 간행은 구비문학의 범주에 있던 동화를 기록문학의 단계로 발전시켰다는 의미를 갖는다.

만일 페로가 민담을 모아 이야기를 엮지 않았다면 후대의 인류는 이렇게나 훌륭하고 교훈적인 문학을 만나보지 못했을 것이다. 페로의 동화는 프랑스를 위시해 이탈리아 같은 인접 국가에서 전하는 구비문학에서 다수의 소재를 가져왔다.
독일의 그림형제는 페로의 동화 중 몇 편을 각색해 자신만의 스토리를 구성했다. 어린이들이 읽기에 잔혹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순화한 것이다. 페로의 동화와 그림형제의 동화를 비교하면서 읽어보는 것도 묘미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나폴리 출신의 동화 작가 바실레가 1634년에 출간한 동화집 ≪펜타메로네≫의 <태양, 달, 탈리>에서 소재를 취했다. 1812년에 간행된 그림 형제의 동화집에도 같은 제목으로 수록되었다는 점에서 서유럽 주요 국가에 널리 퍼진 이야기로 여겨진다. 바실레의 동화가 귀족층을 대상으로 부부 간의 충실함과 상속의 문제를 강조했다면, 상류층 부르주아를 염두에 두고 각색한 페로의 동화는 인내의 가치와 여성의 순종을 강조했다.

<빨간 모자>
1697년에 출간된 페로의 동화집 가운데 <요정들>과 더불어 사건의 전개가 매우 간략하면서도 비극적으로 종결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할머니에게 물건을 전하려는 소녀가 도중에 늑대를 만나서 경계심을 늦추지 않던 나머지 할머니와 더불어 희생된다는 이야기가 지나치게 잔혹하다고 판단한 그림 형제는 할머니와 소녀가 사냥꾼의 도움으로 늑대의 배에서 나와 목숨을 부지하는 것으로 결말을 처리했다.

<푸른 수염>
<상드리용>(신데렐라)과 더불어 페로의 동화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이 작품의 기원에 대해서는 작가의 고유한 창작으로 보는 견해와 오래전부터 구전된 민담을 정리한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공존한다. 문학적인 해석과 무관하게 평생 여섯 명의 부인을 두었으며 두 번째 부인과 다섯 번째 부인을 사형에 처한 이력이 있는 영국의 헨리 8세는 이 작품이 간행된 후 ‘푸른 수염’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동화의 주인공과 유사한 행적을 남겼다.

<장화 신은 고양이>
하찮게 여겼던 동물이 인간에게 보은을 한다는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시대의 동화에도 다루어졌다. 고양이를 소재로 삼은 동화의 사례는 이처럼 이탈리아 작가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발견된다. 서양의 봉건사회에도 장자상속의 관습이 엄연히 존재했다. 상속자들 사이에 불가피하게 남은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물려받은 재산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특별한 지혜와 처세술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요정들>
<장화 신은 고양이>, <상드리용>, <엄지 동자> 등처럼 부모에게 차별받는 자녀의 테마가 다루어진다. <상드리용>의 여주인공이 계모에게 핍박받는다면, <요정들>의 둘째 딸은 기질적인 차이로 인해 친모에게 구박을 받는다. 요정은 상대방의 품격에 어울리는 보상을 함으로써 다정한 말씨와 겸손함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상드리용(신데렐라)>
‘신데렐라’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까닭에 페로라는 작가의 명성을 널리 알리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 작품이 바로 <상드리용>이다. 월트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으로도 수차례 제작되어 그 원조가 프랑스라는 사실조차 상당 부분 가려진 작품도 바로 이 상드리용의 이야기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서 이 작품에 한해 프랑스어 제목과 영어권에서 통용되는 제목을 병기했다. 계모가 등장해 전처의 자식을 구박한다는 구전동화는 서양은 물론 동양에도 존재하며 우리나라의 고전소설 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한편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에게 의존하려는 여성들의 심리를 지칭하는 ‘신데렐라 콤플렉스’, 보잘것없는 환경에 있었던 여성이 하루아침에 신분이 상승하거나 유명해지는 현상을 빗댄 ‘신데렐라 신드롬’과 같은 표현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까지도 공감을 주는 동화다.

<도가머리 리케>
17세기 전반부를 대표하는 극작가인 코르네유의 질녀이자 작가로도 활동한 여류 문인 베르나르의 단편집에 포함된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왕자로 등장하는 ‘리케’라는 이름을 고유명사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베르나르 부인의 출신 지역 이름이자 노르망디어로 ‘곱사등이’를 뜻한다는 점에서 주인공의 흉측한 외모를 강조하기 위한 작명으로 해석된다.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민담에서 영향을 받은 동화와 달리 당시 사교계에서 활발하게 논의되었던 화두를 반영한다.

<엄지 동자>
17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여러 차례 발생한 기근에 따른 생활고를 그대로 반영한다. 요정과 같은 구원자가 등장하지 않는 이 동화에서 해결사로 등장하는 인물은 제일 어리고 체구도 엄지손가락만큼 작은 막내다. <장화 신은 고양이>의 막내가 고양이 덕분에 부마가 되었다면, 엄지 동자는 모든 위기를 스스로 넘겼다는 점에서 그 능력이 더 평가된다. 전 세계 독자들에게 더 알려진 작품은 그림 형제의 <헨젤과 그레텔>이다. 그림 형제는 이 작품에서 아이들을 버리자고 제안하는 사람을 나무꾼에서 계모로 바꾸고, 아이들의 수는 일곱 명에서 두 명으로 줄이고, 식인귀와 그의 가족 대신 할멈으로 변신한 마녀를 등장시키는 등 페로의 원작을 상당 부분 개작했다.

<그리젤리디스>
≪지난 시절의 이야기 혹은 콩트≫의 출간 시기보다 6년이나 빠른 1691년에 발표된 이 작품의 원제는 <살뤼스 후작 부인 혹은 그리젤리디스의 인내>다. 이탈리아 작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서도 소재를 취했으며 넓은 의미에서 동화의 범주에 포함시켜 출판되고 있다. 대표적인 운문 동화며 페로 동화 가운데 분량이 가장 길며, 그 내용도 아동 독자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사건을 포함하고 있어 이 분야의 연구자 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여성을 혐오하던 왕이 결혼한 후에도 왕비를 의심해 갖가지 기행을 벌이며 근친상간을 떠올리는 결혼까지 모의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을 부정하고 마초이즘을 극단적으로 과장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당나귀 가죽>
운문으로 쓰였으며 1694년에 처음 발표되었다가 ≪지난 시절의 이야기 혹은 콩트≫(1697)에 수록되었다. 왕은 사랑하던 왕비의 유언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딸과 실제로 결혼하기 위해 딸의 여러 가지 무리한 요구를 전부 들어준다. 근친상간의 죄악을 피하기 위해 공주는 금화를 만들어 내는 당나귀도 희생시키고 그 가죽을 뒤집어쓴 채 왕궁을 떠나 어느 시골 농장에서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가금 사육장을 운용하던 왕국의 왕자는 미지의 여인에게 첫눈에 반해 상사병을 앓게 되고, 그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당나귀 가죽을 뒤집어쓴 공주는 정성을 다해 과자를 만들고 그 안에 반지를 숨기는데, 이 반지는 상드리용의 유리 구두처럼 왕자와 공주를 연결해 주는 상징적인 고리로 작용한다. 두 사람의 결혼이 성사되자, 한때 패륜적 욕망을 드러냈던 부왕도 과거의 일을 회개하고 젊은이들의 행복을 축하한다.

<어리석은 소원>
생활고에 찌든 나무꾼 부부에게 신의 출현 후에 벌어진 상황에서 희화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이 발동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절대 권력을 가진 신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은 자신들의 사회적인 위상을 바꾸기 어렵다는 점에서 작가의 비관적인 세계관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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