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니머스의 여러 가지 얼굴 - 트롤에서부터 액티비스트까지 (가브리엘라 콜맨, 2016)

책소개
어나니머스의 정체는 무엇인가? 어나니머스에 참여하는 이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컴퓨터 괴짜들? 스테로이드를 맞은 해커들? 이들은 사회의 안녕을 해치는 체제 반대론자들인가 아니면 냉소주의와 허무주의가 만연한 현실에서 방관하고 체념하는 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인가?

단순히 그들만의 유머, 룰즈를 위해서 다른 이들의 신상을 털고 괴롭히며 '너의 삶을 망쳐주마' 캠페인을 벌이던 지하 세계 트롤의 모습에서부터 사이언톨로지 교회의 인권 탄압에 반대하고 튀니지 정부의 검열에 맞서 싸우고 북미 강간 문화를 공격하고 주코티 공원과 타히르광장에서 경제적·정치적 불평등에 대해 규탄하는 액티비스트의 모습까지…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어나니머스의 여러 얼굴을 파헤친다.


목차
서론: “여러분, 어나니머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01장. 트롤, 트릭스터, 룰즈
02장. 채놀로지 프로젝트 - 룰즈 때문에 왔다가 화가 나서 머물렀다
03장. 괴짜들의 무기
04장. 전 세계에서 울려 퍼진 총성
05장. 어디에나 있는 어나니머스
06장. 모랄패그가 판치는 세상
07장. 룰즈의 복수
08장. 룰즈섹
09장. 안티섹
10장. 비밀을 가지고 있으면 말하고 싶어진다
11장. ‘사부타주’
결론: 서광(曙光)


출판사 제공 책소개

 

★ 옮긴이의 말 ★

4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보고 이렇게 묻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다. "어나니머스가 도대체 뭔데?", "어나니머스에 대해 이렇게 할 말이 많아?"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조금이라도 얻으려고 책 본문을 보기 전에 저자 후기나 역자 후기를 먼저 펼쳐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 책은 문화인류학자가 쓴 어나니머스에 대한 책이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한국문화인류학회에서 펴낸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2006)에서는 문화인류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문화인류학은 세계 여러 민족의 문화를 비교 연구함으로써 '인간은 무엇인가'하는 문제를 규명하는 학문이다. 문화인류학자는 자신이 자라난 자국의 문화보다는 다른 문화를 연구 대상으로 삼으며 현지조사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연구 자료를 수집한다. 현지조사란 자신이 연구하려는 다른 문화 집단에 가서, 적어도 일년 이상 그곳의 주민들과 같이 거주하면서 참여관찰과 대담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는 문화인류학만의 독특한 연구 방법을 말한다." 이 설명을 토대로 이야기해보면, 저자 가브리엘라 콜맨은 어나니머스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 어나니머스 세계에 직접 가서 그 세계에 참여하고 그 세계를 관찰하고 그 세계의 일원들을 만난 뒤 이 책을 썼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신의 고생담'을 털어놓은 책이다. 저자는 '두려운' 그리고 '무시무시한' 그 세계의 일원을 만나서 무시당하기도 하고 협박을 받기도 하고 정부가 자신의 집을 찾아오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저자는 어나니머스를 '미로'라고 설명한다. 전혀 출구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어떤 행동을 하면 그게 또 다른 자극이 되어 다시 새로운 길이 끊임없이 생기는 것 같은 무한동력을 가진 미로 말이다. 저자는 어나니머스란 미로 속에서 절망하기도 했지만 그 미로 속에서 자신을 출구로 이끌어줄 수많은 이들을 만났고, 마침내 미로 속에서 빠져나와서 자신이 겪은 일과 깨달은 바를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어나니머스의 정체가 궁금한 건 일반 대중뿐만이 아닌가 보다. 이 책을 보면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을 국가기관이나 기업, 기구에서도 '도대체 어나니머스의 정체가 무엇인지' 저자에게 물어왔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어나니머스를 한 단어로 정의하기는 힘들다. 이 책의 제목이 나타내듯이 어나니머스에는 많은 얼굴이 있기 때문이다. 어나니머스는 하나의 단체가 아니라 여러 단체가 모인 단체'들'이다. 어나니머스란 이름과 함께 룰즈섹, 안티섹 등의 단체가 함께 등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수많은 이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어떤 사안에 대해 동의하지 않으면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새로운 분파를 만들고 또 그 안에서 의견이 갈리면 또 다른 분파가 만들어진다. 즉 어나니머스에는 촉수나 히드라의 머리처럼 수많은 분파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어나니머스는 하나의 모습일 수 없다.

 

2008년 사이언톨로지에 반대하는 '채놀로지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어나니머스의 행보는 크게 변했다. 채놀로지 프로젝트 이전의 어나니머스는 재미를 위해 타인을 골탕먹이고 타인의 고통을 웃음거리로 삼는 '인터넷에서 가장 비열한 곳'이었다면, 채놀로지 프로젝트 이후의 어나니머스는 액티비즘 또는 핵티비즘의 모습을 보였다. 어나니머스는 위키리크스를 지지하고 아랍의 봄과 아프리카의 봄, 점령 운동에 참여하는 등 정부와 기업의 기밀을 폭로하고 정부와 언론의 만행을 규탄하고 일부 국가에서 정권 퇴진을 이끌기도 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건 대외적으로 이런 큰 작전을 진행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져도 어나니머스 내부에서는 여전히 각기 다른 의견이 오고 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보자. 위키리크스가 미 외교 전문을 공개한 후 페이팔과 비자 같은 기업들이 위키리크스 기부금 결제를 막아버렸다. 이후 어산지에 대한 탄압까지 이루어지자 어나니머스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기업과 정부기관 여러 곳의 웹사이트를 해킹하고 다운시키고 내부 기밀을 유출했다. 이를 두고 어나니머스 내부에서는 어나니머스의 작전이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다는 대의명분을 갖고 있으면서 기업과 정부기관의 웹사이트를 다운시켜서 이들의 '표현의 자유'를 막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이렇게 어나니머스에는 수많은 목소리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 바라보는 또는 표현하는 어나니머스는 지나치게 단순화되거나 왜곡된 경우가 많은 듯하다. 이 때문일까, 개인적으로 저자가 가장 말하고 싶었던 건 '어나니머스는 우리와 다르지 않다'라는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어나니머스 구성원이 말했듯이 어나니머스는 저기 지구 바깥에 존재하는 비현실적인 존재도 아니고 환상 속의 존재들도 아니다. 이 책 전반에 걸쳐 어나니머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줄이려고 하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김소연 시인의 글이 계속 생각났다. 김소연 시인은 유리창에 달라붙은 매미를 보고 매미와 자신의 사이에 유리가 있어서 곤충을 가까이하기 두려운 자신이 매미의 배를 한참 동안 바라볼 수 있었다고 했다. 나에게 해커나 어나니머스는 왠지 두렵고 무시무시해서 피하고 싶은 존재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안전하게 어나니머스를 접하고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어나니머스가 야기한 사건들의 이면에 숨겨진 동기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세상에는 내가 세상과 나 사이에 그어놓은 선 바깥에 있어서, 또는 그 선 위에 있어서 그저 존재만 할 뿐 나에게 큰 의미가 없는 존재들이 있다. 하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나와 상관없는 세상 속에서 부유하고 있던 것들이 갑자기 형체를 갖추고 내가 그어놓은 선 안으로 쑥 밀고 들어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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