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aris - 머나먼 북방의 슬픈 기사극 (벤 레만, 2014)

책소개
폴라리스는 ‘던전 앤 드래곤’이나 ‘겁스’처럼 특정한 캐릭터를 만들고, 그 캐릭터의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TRPG이다. 그러나 다른 TRPG와는 달리 폴라리스에서는 플레이어를 제외한 배경 세계를 맡아 관리하면서 정해진 이야기를 만드는 ‘마스터’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폴라리스에서는 각 장면마다 플레이어들이 돌아가며 주인공 역할을 맡으며, 다른 플레이어들은 기존 TRPG에서의 마스터 역할을 분담하여 각각 NPC 및 적대자의 역할을 한다.

또한 기존 TRPG는 워게임 같은 명확한 전투규칙과 플레이어들의 역할 분담을 주로 강조하는 한편, 폴라리스는 ‘의식 문구’라는 이야기의 방향과 흐름을 관리하는 규칙을 사용해 비극적 이야기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점도 다른 TRPG와 다른 폴라리스만의 개성이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즐겁게 만들어가는 가슴 아린 비극, ‘폴라리스’

오랜 옛날, 북쪽에서도 가장 북쪽에 이 세상 모든 민족 중 가장 위대한 민족이 살았도다.
민족의 옛 모습은 사라졌지만, 햇살 속에 사라지는 눈송이처럼 죽어가는 그들을 이해할 수는 있으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앞에서 죽음을 택한 로미오와 줄리엣, 마지막 순간까지 나라를 걱정하며 장렬히 스러진 이순신 장군,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삼은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면서 두 눈을 뽑은 오이디푸스의 이야기 등 비극에는 우리의 마음을 잡아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서양고전학자 강대진씨는 비극은 불행 속에서 더욱 빛나는 인간 내면의 힘을 보여주는 이야기라면서 비극의 매력을 설명하기도 했다.

현실에서 이러한 비극을 겪기는 쉽지도 않고, 또 겪어서는 곤란하지만, ‘폴라리스 : 머나먼 북방의 슬픈 기사극’은 이러한 아름답고도 고통스러운 비극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기 위한 ‘이야기 놀이’ 이다.

다 함께 비극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놀이
그러나 희망은 아직 남아있어
그대의 귀에는 별들의 노래가 들리나니...

폴라리스는 ‘던전 앤 드래곤’이나 ‘겁스’처럼 특정한 캐릭터를 만들고, 그 캐릭터의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TRPG이다. 그러나 다른 TRPG와는 달리 폴라리스에서는 플레이어를 제외한 배경 세계를 맡아 관리하면서 정해진 이야기를 만드는 ‘마스터’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폴라리스에서는 각 장면마다 플레이어들이 돌아가며 주인공 역할을 맡으며, 다른 플레이어들은 기존 TRPG에서의 마스터 역할을 분담하여 각각 NPC 및 적대자의 역할을 한다.

또한 기존 TRPG는 워게임 같은 명확한 전투규칙과 플레이어들의 역할 분담을 주로 강조하는 한편, 폴라리스는 ‘의식 문구’라는 이야기의 방향과 흐름을 관리하는 규칙을 사용해 비극적 이야기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점도 다른 TRPG와 다른 폴라리스만의 개성이다.

사라진 영광의 잔재, 지키는 자의 슬픔
폴라리스는 첫머리부터 상실의 비극을 노래하며 시작한다. 영원한 별빛 속에 찬란한 영화를 자랑했던 북극 정점의 도시, 폴라리스는 민족 자신의 죄로 인하여 무너졌다. 민족의 타락은 태양이라는 무서운 불길을 하늘에 불러왔고, 폴라리스의 흔적은 이전에는 도시 변두리에 불과했던 네 개의 잔해 뿐이다.

한 때 영광스러운 궁전이 있던 옛 폴라리스의 중앙에는 ‘후회’라 불리는 뒤틀리고 추악한 구조물이 솟아오르고, 후회에서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온갖 악마가 쏟아져나와 민족의 육체와 영혼을 집어삼키려고 잔해로 몰려든다.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주인공(PC)은 이들 잔해를 지키는 별빛의 기사이다. 별빛의 기사들은 후회의 악마들과 싸우며 민족을 지키려고 분투하지만, 악마는 나날이 창궐하기만 하고, 민족은 후회라는 현실을 애써 무시한 채 사치와 음모에 열중하며, 동료 기사는 하나씩 둘씩 죽어가거나 민족을 저버린다.

이렇듯 악전고투할 수밖에 없는 배경 속에서 별빛의 기사들은 고뇌하고, 음모에 휘말리고, 자신의 한계 앞에서 절망한다. 그러다가 극한상황에 몰려 잔혹한 행동을 저지르거나 분노와 슬픔에 빠져 민족을 원망하며 악행을 저지르게 되고, 점점 민족을 지키겠다는 열정이 식어가면서 노병이 되어 간다.

이러한 기사의 이야기는 두 가지 중 하나로 끝난다. 죽거나, 혹은 타락하거나. 이러한 슬픈 필연성 속에 폴라리스의 비장미는 빛을 발한다. 세상이 모든 아름다운 것을 소멸시키듯 별빛의 기사단 역시 몰락해 갈 뿐이다. 시간의 뒤안길에 기억만을 남긴 채.

비극을 만드는 도구 : 교섭과 의식 언어
폴라리스에서는 각 장면마다 돌아가면서 ‘마음’과 ‘후회’ 의 역할을 맡은 두 플레이어가 이야기를 만든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각각 ‘달’이라는 주변 인물의 역할을 맡아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도와준다.

마음은 전통적인 의미의 주인공으로, 기사가 하는 행동과 그 결과를 서술하고 기사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간다. 후회는 이에 맞서 기사와 대립하는 인물 및 악마 역할을 맡아 기사가 불행해지도록 이야기를 이끈다. 이들이 밀고 당기면서 부딪치는 과정 속에서 기사의 이야기는 비극의 나락으로 빠진다.

이러한 교섭은 아무렇게나 하지는 않는다. ‘플레이가 끝난 후 밥 한 끼 살 테니까 이번엔 이기게 해달라’ 같은 식의 거래는 아니다. 마음과 후회는 의식 문구를 사용해서 교섭하며, 그 긴장 속에서 기사의 비극은 마치 고대의 제전처럼 엄숙하게 한 장 한 장 펼쳐집니다. 의식 문구의 예는 다음과 같다.

마음 : 나는 적들의 칼을 가볍게 피하고 그들을 모두 베어버린다.
후회 : 그러나 그러려면... 기사가 죽인 상대 중 하나는 약혼녀의 오빠여야 한다.

마음과 후회는 자신이 맡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해나가는 동시에, 위 예시처럼 ‘그러나 그러러면…’ 같은 의식 문구를 사용하여 상대방의 이야기에 조건을 덧붙여서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폴라리스에는 이 외에도 상대방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도록 요구하거나 상대의 이야기 자체를 아예 부정하는 규칙도 준비되어 있다. ‘달’ 역할을 맡은 다른 플레이어들은 둘을 중재하고 도와주면서 이야기가 완성되는 데 한 몫을 한다. 마음과 후회가 각자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만들면 만들수록 이야기는 더욱 깊은 비극을 향해 내달린다.

슬픈 이야기와 큰 웃음이 교차하는 독특한 재미
서둘러, 후회의 악마들에게 붙잡힌 자네 약혼자를 구해야지!
내가 왜 가야 하지? 그를 사랑하지도 않는데.

이렇게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면 플레이 분위기도 가라앉으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 폴라리스의 묘미이다. 놀이 속의 기사는 운명의 덫에서 몸부림치며 파멸해 가는데 정작 그 비극을 만들어가는 장본인은 시종일관 싱글벙글하면서 종종 박장대소하는 역설이 바로 폴라리스를 플레이하는 재미이기도 하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폴라리스의 매력은 게임마스터가 따로 없이 모두가 돌아가며 주인공을 맡는다는 점이다. 총 4인이 기본인 폴라리스에서는 각 플레이어가 기사를 하나씩 만들고, 각 기사가 돌아가면서 장면의 중심이 된다. 나머지 플레이어는 앉은 위치에 따라 후회와 그믐달, 보름달 역할을 맡는다. 따라서 폴라리스에서는 ‘정해진 이야기’가 없으며, 플레이어들의 교섭과 합의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폴라리스는 기존 TRPG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단일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는 플레이 구조를 지원한다. 따라서 일행 중심의 모험이라는 전형에서 벗어나 내밀하고 정서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싶은 분에게 특히 추천할 만한 TRP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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