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의 역사 - 현대판 노예노동을 끝내기 위한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 2015)

시나리오/역사|2022. 12. 29. 17:00

책소개
프랑스 철학자 들라캉파뉴가 노예제도의 요람 고대 수메르 문명부터 역사상 최대 규모로 전 세계적으로 노예가 거래되었던 계몽시대를 거쳐 노예제도의 철폐가 실질적 성과를 이루기 시작한 1960년대 미국의 흑인민권운동 그리고 아동병사.아동매춘, 스웻숍 노동자 등 현대판 노예에 이르기까지 5천 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나타난 다양한 형태의 노예제도를 상세히 살펴보며 어떤 범주의 사람들이 어떤 이유에서 인류에서 배제되어 멸시와 착취를 당해왔는지 밝힌다.

이를 통해 노예제도는 인류의 필요악이나 숙명이 아닌 특정한 조건에서 나타나 끈질기게 살아남은 제도일 뿐임을 우리에게 확인해 준다. 그리고 이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행동할 것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알려 예방하고 사법.정치.행정은 물론 필요하다면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처벌할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


목차
들어가며 | 증언의 의무
지도 1. 삼각무역
지도 2. 사하라사막횡단 흑인노예무역의 주요 경로
지도 3. 아프리카 동부 연안 노예무역의 주요 경로

01 _ 국가와 문자의 탄생 그리고 노예제도
고대 노예제도에 대한 연구, 철학·경제학에 빚지다 | 메소포타미아, 국가·문자 그리고 노예제
도를 낳다 | 이집트, 노예노동으로 피라미드를 세우다 | 후르리인과 히브리인, 노예에 대한 정교
한 법령을 만들다 | 인도, 중국, 동남아시아, 한반도, 일본의 노예제도

02 _ 고대 그리스의 숨겨진 얼굴
미케네 문명, 왕 외엔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 고전기 이전, 노예를 사고팔다 | 고전기, 노예제도
가 중요한 생산도구가 되다 | 노예, 폴리스 사회에서 철저히 배제되다, | 노예가 지탱한 폴리스의
경제와 사회 | 누가 폴리스의 노예가 되었나 | 노예해방, 철저히 제한된 자유 | 아리스토텔레스,
노예제도를 정당화하다

03 _ 고대 로마, 반란의 시대
로마공화정의 노예, 검투사에서 지식인까지 | 로마의 노예들, 사회불의에 항거하다 | 로마제국,
노예제도에 기반을 둔 생산양식이 해체되다

04 _ 중세 서양에도 노예가 있었다
봉건제도, 농민을 땅에 구속하다 | 노예, 농노가 되다 | 기독교 세계의 노예 | 이슬람 세계의 노예

05 _ 유럽, 탐욕의 길을 열다
아프리카 연안의 탐험, 흑인 약탈의 길을 열다 | 아프리카, 흑인노예무역의 공범이자 희생자 | 포
르투갈과 에스파냐의 아메리카 정복 | 아메리칸인디언의 파멸

06 _ 흑인노예무역, 자본주의적 세계화의 시작
아메리카 정복, 전 유럽의 사업이 되다 | 노예무역의 비약적 증가 | 흑인노예무역의 세계화 | 최
초의 다국적기업들 | 밀수입과 해적행위 | 최초의 무역규제완화 | 『흑인법전』, 인간에 대한 폭력
을 합법화하다

07 _ 계몽시대, 흑인노예무역 전성기
해상전쟁, 노예무역 그리고 산업혁명 | 대항로, 예속과 죽음의 통로 | 대농장 노예의 삶 | 노예는
저주받고 열등한 외국인일 뿐이다 | 침묵하는 철학자 | 천천히 그리고 뒤늦게 깨어난 비판정신

08 _ 노예제도 폐지를 향한 투쟁
영국과 아메리카가 앞장서다 | 프랑스, 첫 번째 노예제도 폐지 그리고 후퇴 | 국제적 차원의 행동
개시 | 작은 개혁에서 시작된 노예제도 전면 폐지 | 프랑스 식민지의 최종적 노예제도 폐지 | 미
국, 남북전쟁 그리고 노예제도 폐지

09 _ 아프리카, 독립을 향해
탐험가, 선교사, 식민지개척자 | 대분할 | 식민지개발, 노예제도, 강제노동 | 국제 사회, 노예제도
와 강제노동 퇴치의 의무를 지다 | 독립의 시대, 암울한 시작 |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

10 _ 미국, 노예 후손들의 대장정
린치의 시대, 재건에서 1차세계대전까지 | 투쟁의 시대, 대공황에서 2차세계대전까지 | 승리의 시
대, 트루먼에서 아이젠하워까지 | 영광의 시대, 케네디에서 존슨까지 | 닉슨 이후, 인종차별을 어
떻게 해결할 것인가

11 _ 21세기의 노예제도
사라지지 않은 노예제도 | 현대판 노예 | 아동노예

12 _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국제기구, 정치적 이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비정부기구와 민간단체

마치며 |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부록 1: 사하라사막횡단 흑인노예무역 추정치
부록 2: 대서양횡단 흑인노예무역 관련 통계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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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노예제도, 인간이 인간을 멸시하고 착취한 5천 년의 추문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파렴치의 역사

최근 ‘노예’라는 말이 세간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서해안 한 염전에서 감금.혹사당하던 장애인 2명이 구출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안군 염전 섬노예 사건’, 현대판 노예의 규모가 전 세계적으로는 3600만 명 한국에만 9만 3700명에 달한다는 국제인권단체 ‘워크프리’의 보고서, ‘현대판 노예노동’을 극복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협력을 촉구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요청 등에 여론이 환기된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거비와 식비를 가까스로 충당하는 정도의 임금을 받는 노예노동이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지탱하고 있는 현실이 가장 큰 이유다. 노예제도는 폐지되었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은밀한 형태의 노예노동에 내몰리고 있다.

그러므로 노예제도는 여전히 우리의 현실을 짓누르고 있는 패악이다. 이것이 <인종차별의 역사>를 쓴 프랑스 철학자 들라캉파뉴가 노예의 역사를 천착한 이유다. 저자는 노예제도의 요람 고대 수메르 문명부터 역사상 최대 규모로 전 세계적으로 노예가 거래되었던 계몽시대를 거쳐 노예제도의 철폐가 실질적 성과를 이루기 시작한 1960년대 미국의 흑인민권운동 그리고 아동병사.아동매춘, 스웻숍 노동자 등 현대판 노예에 이르기까지 5천 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나타난 다양한 형태의 노예제도를 상세히 살펴보며 ‘어떤 범주’의 사람들이 ‘어떤 이유에서’ 인류에서 배제되어 멸시와 착취를 당해왔는지 밝힌다.

이를 통해 노예제도는 인류의 ‘필요악’이나 ‘숙명’이 아닌 특정한 조건에서 나타나 끈질기게 살아남은 제도일 뿐임을 우리에게 확인해 준다. 그리고 이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행동할 것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알려 ‘예방’하고 사법?정치?행정은 물론 필요하다면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처벌’할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

고대의 노예제도
메소포타미아에서 국가.문자의 출현과 동시에 나타난 노예제도는 고대 이집트에서 대대적으로 활용되어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웠으며, 그리스의 폴리스에 이르러서는 사회와 경제 전반을 지탱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제도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했고, ‘인종차별’적인 그의 주장은 기독교 교리의 기반으로, 이후 유럽인들이 아메리칸인디언과 흑인이라는 ‘이국인’을 착취하는 가장 파렴치한 형태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쓰인다.

하지만 그리스 폴리스의 노예제도를 이어받은 로마는 노예 대반란으로 홍역을 치렀다. 고대 로마에서 노예들이 일으킨 반란들은 피압박자들이 사회불의에 대항하여 일으킨 인류 역사상 최초의 시위였다. 그중 스파르타쿠스가 이끈 반란은 노예들이 거둔 가장 커다란 승리였지만 가장 참혹하게 진압당했고 이후 제국의 재산가와 노예 모두에게 깊은 공포를 남겼다.

유럽의 탐욕, 자본주의 그리고 끊임없는 분쟁
로마제국하에서 해체의 길을 걷는 듯했던 노예제도는 이후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발견하기까지 중세 천 년 동안 유럽 땅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사실과는 다르다. 노예제도는 사라지지 않고 16세기 말까지 계속해서 유럽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후 유럽의 식민지 경제체제가 강요하게 될 노예제도의 직접적인 전조가 되었다.

15세기 투르크인의 발칸 침략과 콘스탄티노플 점령으로 노예를 얻기 위해 흑해의 북쪽과 동쪽으로 가던 길들이 막히자 유럽인들은 지중해 연안 남쪽, 곧이어 ‘검은 아프리카’ 로 눈을 돌렸고 노예제도는 일대 전환을 맞았다. 마침 십자군원정으로 설탕 맛을 본 유럽은 지중해, 대서양의 섬들에서 사탕수수 경작에 열을 올리던 참이어서 노동력 확충이 시급했다. 그리고 몇 년 뒤 아프리카에 이어 아메리카로 진출하면서 아프리카에서 포획한 노예노동자를 강제로 아메리카로 들여온다는, 유럽인들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구상이 세워지게 된다. 이 구상으로 실현된 흑인노예무역과 대농장 체제는 산업자본주의와 ‘자본주의적 세계화’의 요람이 되어 유럽에는 ‘경제발전’을 이루게 해주었지만 아프리카에는 재난의 불씨가 되었다. 아프리카 부족들이 서로 끊임없이 싸우게 해 노예노동력 확보를 수월하게 했던 이들의 전략은 오늘날까지도 아프리카 중서부 지역은 물론 유럽에서 민족 간 분쟁이 끊이지 않게게 만들었다.

인간은 깊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깃발을 세워왔다
노예제도는 가족제도 다음으로 오래 존속한 제도지만 이에 대한 비판은 18세기 말에야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유의 기치를 높이 세웠던 18세기 계몽시대는 오히려 흑인노예무역의 전성기였다. 백인 기독교도의 계몽적 이성은 흑인을 동일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18세기 후반 노예제도폐지운동이 벌어지고 19세기 말~20세기 초 전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되었다. 이는 폐지론자들이 마침내 다수파가 돼서 요구를 관철시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제적 동기가 작용한 탓이 크다. 18세기 후반 대농장 체제가 정점을 찍은 뒤 노예 가격이 계속 올랐고, 식민지의 노예 수가 위협적일 정도로 증가하면서 노예제도가 경제적으로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점차 많은 사람들이 분명하게 깨달았다. 이와 동시에 유급노동이 더 쉽고 저렴한 해결책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노예제도가 폐지되었다고 원칙적인 수준에 그칠 뿐이어서 흑인들은 현실에서 여전히 노예였다. 실제로 흑인의 자유가 마침내 백인의 자유와 동등하게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미국의 흑인민권운동이 일어나면서부터였다. 남북전쟁 후 백인과 타협을 모색해 왔던 흑인들은 인종분리와 참혹한 린치에 시달리다가 1900년대 초부터는 스스로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에 나섰다. 마틴 루터 킹과 존 F. 케네디의 시대로 대변되는 이 시기 흑인민권투쟁은 인종분리를 폐지하고 흑인에 대한 린치가 실질적으로 처벌되게 만들었으며 무엇보다도 ‘소수민족 우대정책’ ‘동등고용기회위원회(EEOC)’과 같은 중요한 성과를 올렸다.

우리는 어떻게 노예제도와 싸울 것인가
하지만 노예노동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아랍에서는 ‘동산動産’으로서의 노예가 아직도 공공연히 거래되고 있고, 유럽에서는 가사 노예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으며, 일제의 성노예 ‘위안부’는 사과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노예제도와 유사한 형태의 착취가 문제다.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그 피해자가 대부분 아동이라는 점이다. 위험한 노동, 매춘, 병력에 어린아이들이 노예와 다름 없이 착취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통탄할 일이다..

UN헌장, 세계인권선언, 노예제도와 관련된 각종 조약 등 노예노동 퇴치를 위한 국제기구 차원의 제도적 기초는 충분하다. 문제는 국제기구들이 태생적으로 각국의 정치적 이권 다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정부기구와 민간단체의 역할이 극히 중요하다. 또한 현대판 노예제도의 척결은 테러리즘이나 마약.무기 거래, 환경 문제처럼 국제적이고 불법적인 조직망을 타파해야 하는 싸움이다. 따라서 국제적 공조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거나 모욕할 기회를 잡았을 때 무슨 짓을 벌이는지 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과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잘못된 관행에 분명하게 맞섬으로써 인류의 역사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도울 의무가 있다. 이것이 프랑스 식민지 시절 세네갈 다카르에서 유일한 백인 아이로 태어난 저자가 아프리카에 대해 증언해야 한다는 의무로 집필한 이 책에서 간곡하게 전하는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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