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앤터니 비버, 2009)

시나리오/역사|2022. 12. 29. 16:00

책소개
스페인 내전 연구의 권위자인 영국의 전쟁사학자 앤터니 비버가 쓴 <스페인 내전>은 그동안 전쟁의 실상을 가려온 혁명적 낭만주의의 베일을 걷어내고,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전쟁의 맨 얼굴을 보여준다.

저자는 스페인 내전의 전모를 역사적 · 정치적 맥락에서 세밀하게 조망함과 동시에 승패를 가른 결정적 전투의 현장들을 다큐멘터리 같은 생생한 필치로 재현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왜 공화 진영이 그토록 열렬한 세계 여론의 지지와 소련의 군사적 지원을 얻고도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끝없이 논란이 된 의문에 명쾌한 답을 내놓는다.


목차
감사의 말 / 머리말 / 스페인 내전의 정당과 정치 단체들
제1부 제2공화정의 탄생
제1장 스페인의 국왕들 “백성과 만나는 것이 왕의 소망입니다.”
제2장 국왕의 퇴진 “국민의 마음에서 왕은 죽었다.”
제3장 제2공화정 “스페인은 민주공화국이다.”
제4장 인민전선 “스페인 안에 러시아를 세우자.”
제5장 치명적인 무능 “이것이 공화국인가?”

제2부 두 스페인의 전쟁
제6장 장군들의 반란 “우리와 뜻이 다른 자는 모두 적이다.”
제7장 주도권 다툼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제8장 적색 테러 “지하 세계가 혁명을 먹칠하고 있다.”
제9장 백색 테러 “우리가 로르카를 죽였다.”
제10장 국민 진영 “지성에 죽음을! 죽음 만세!”
제11장 공화 진영 “이제 여러분이 카탈루냐의 주인입니다.”
제12장 국민군 대 의용군 “알카사르 이상 무.” “규율은 죄악이다.”

제3부 내전의 국제화
제13장 외교 전쟁 “공화 정부를 돕지 마시오.”
제14장 국가 만들기 “하나의 조국, 하나의 카우디요.”
제15장 소련의 지원 “스페인을 돕자, 은밀하게.”
제16장 국제여단 “나는 붉은군대 출신의 용감한 수병.”
제17장 마드리드 사수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

제4부 대리인들의 세계 대전
제18장 전쟁의 변모 “단 1센티미터도 후퇴하지 말라.”
제19장 하라마 전투와 과달라하라 전투 “파시즘과 무솔리니에게 치욕을!”
제20장 바스크 전투 “게르니카, 불타고 있음!”
제21장 지식인들의 전쟁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제5부 내전 속 내전
제22장 권력 다툼 “공산주의자들에게 너무 많이 양보했다.”
제23장 전선의 분열 “제5열의 정체가 드러났다. 트로츠키였다.”
제24장 브루네테 전투 “이 버릇없는, 한심한 게릴라들.”
제25장 포위당한 공화국 “구멍 뚫린 댐이지만 아직 쓸 만하다.”
제26장 아라곤 전투 “스탈린주의 편집증이 다시 도졌다.”
제27장 공화주의 이상의 붕괴 “우리의 지성을 모욕하지 말라.”

제6부 파국으로 가는 길
제28장 프랑코의 ‘승리의 칼’ “프랑코의 칼이 스페인을 둘로 갈랐다.”
제29장 깨어진 평화 협상의 꿈 “협상이라고? 일고의 가치도 없다.”
제30장 스페인 만세! “위대한 지도자 돈 프란시스코 프랑코 바아몬데.”
제31장 에브로 강 전투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
제32장 파시즘 진군과 유럽의 위기 “국제여단 동지들이여! 여러분은 역사입니다.”
제33장 카탈루냐 함락 “병든 바르셀로나는 정화되어야 한다.”
제34장 공화국의 붕괴 “콘도르 군단의 임무가 끝났다.”

제7부 끝나지 않은 전쟁
제35장 옛 스페인의 귀환 “나라를 구하려면 대수술이 필요합니다.”
제36장 망명자들 “매일 100여 명이 죽어 나갔다.”
제37장 살아남은 자들의 전쟁 “제9중대라 불러주시오.”
제38장 무너진 대의명분 “총알아, 증오 없이 죽여 다오.”
주석 / 옮긴이의 말 / 주요 인물 / 스페인 연표 / 찾아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피카소의 〈게르니카〉, 로버트 카파의 〈어느 병사의 죽음〉 등
수많은 걸작의 배경이 된 전쟁, 현대사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수행된 이념 전쟁이자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었던 전쟁,
스페인 내전을 빼놓고 20세기를 말할 수는 없다!

스페인 내전은 조지 오웰, 어니스트 헤밍웨이,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앙드레 말로, 파블로 네루다, 시몬 베유 등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 수많은 지식인과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전한 유례없는 전쟁이었다. 1936∼1939년 3년 동안 스페인을 초토화한 이 내전은 이념과 계급과 종교가 뒤엉켜 폭발한 전쟁이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아나키즘, 파시즘 등 온갖 정치 이념들의 격전장이었으며, 자본가·지주 계급과 노동자?농민 계급이 맞붙은 계급 전쟁이었다. 또한 스페인 민중과 민중을 억압하는 권위주의적 가톨릭교회가 격돌한 종교 전쟁이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었다. 소련과 독일이 이 전쟁에 개입해 자신들의 군사력과 전략을 실험했고, 그 결과가 제2차 세계대전에 그대로 반영되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위해 전쟁터로 뛰어든 3만 5천 명의 국제여단 병사들로 인해 스페인 내전은 불굴의 용기, 숭고한 이념, 전 세계 양심의 투쟁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혁명적 이상의 좌절과 환멸, 배신과 분열은 이 전쟁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스페인 내전 연구의 권위자인 영국의 전쟁사학자 앤터니 비버가 쓴 《스페인 내전》은 그동안 전쟁의 실상을 가려온 혁명적 낭만주의의 베일을 걷어내고,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전쟁의 맨 얼굴을 보여준다. 저자는 스페인 내전의 전모를 역사적 · 정치적 맥락에서 세밀하게 조망함과 동시에 승패를 가른 결정적 전투의 현장들을 다큐멘터리 같은 생생한 필치로 재현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왜 공화 진영이 그토록 열렬한 세계 여론의 지지와 소련의 군사적 지원을 얻고도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끝없이 논란이 된 의문에 명쾌한 답을 내놓는다.

20세기 정치 이념들의 폭발 현장 ‘스페인 내전’의 결정판!
《스페인 내전》은 2005년 말 스페인에서 먼저 출간되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스페인 언론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출간된 스페인 내전 관련서 가운데 가장 뛰어난 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출간 즉시 스페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12주 동안 자리를 지켰다. 이 책으로 앤터니 비버는 스페인 최고 권위의 ‘라 방과르디아 상’을 수상했다. 스페인 내전 발발 70돌인 2006년 봄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9개국에서 출간되어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베스트셀러로 자리를 잡았다.
스페인 내전은 ‘러시아 혁명’, ‘제2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20세기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이 중요한 사건을 제대로 다룬 책이 출간된 적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스페인 내전이 종결된 지 꼭 70년이 되는 올해 비록 많이 늦기는 했지만 스페인 내전 연구의 결정판으로 불리는 앤터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을 소개하게 되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옮긴이의 말) 특히 한국어판에는 원서에 없는 ‘스페인 연표’와 ‘주요 인물’을 실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공화 진영은 왜 실패했는가?
좌파의 권력 투쟁과 분열이 초래한 파국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내전은 전쟁이 아니라 병(病)이다. 적(敵)이 내 안에 있고,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싸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의 비극은 그 이상이었다. 스페인 내전은 정치적 신념의 차이가 어떤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1936년 7월 17일, 군부 쿠데타로 시작된 스페인 내전은 스페인 내부의 전쟁인 동시에 전 세계 강대국들이 개입한 국제전이었다. 내전을 일으킨 ‘국민 진영’은 공화 정부를 무너뜨리고 ‘옛 스페인’을 되살리기 위해 파시즘 운동 세력인 ‘팔랑헤당’과 프랑코 장군 중심의 군부, 보수적 가톨릭교회, 자본가·지주 등 상류계급이 단결한 세력이었다. 스페인의 모로코 용병을 이끌었던 프랑코는 풍부한 실전 경험과 주도면밀한 정치력으로 수많은 군부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지도자 자리에 올랐다. 그에 맞서는 ‘공화 진영’은 1936년 2월 선거로 집권한 인민전선 정부를 수호하기 위해 자유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아나키즘 등 여러 세력이 집결해 만들어졌다. 일사불란한 ‘국민 진영’에 비해 공화 진영은 특별히 어느 한 세력이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전쟁을 수행했다. 여기에 전쟁 초반부터 파시즘 국가인 독일과 이탈리아가 국민 진영을 지원하고, 소련이 공화 진영을 지원하면서 내전은 국제전의 양상을 띠었다.

과연 외세의 개입이 전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는가? 왜 공화 진영은 소련의 지원과 세계 여론의 열렬한 지지를 얻고도 패배했는가? 스페인 내전 연구에서 가장 큰 쟁점인 이 질문을 두고 많은 역사학자들이 콘도르 군단으로 대표되는 독일의 막강한 군사 지원이 국민 진영의 승리에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에서 앤터니 비버는 군사력의 차이가 아니라, 공화 진영 내부의 분열과 공화 정부의 치명적 무능이 결정적 패인이었다고 말한다. 보수 반동 세력에게 맞서기 위해 연합했던 온건 개혁 세력과 혁명 세력은 내전 초기부터 서로의 이질적 성격을 극복하지 못한 채 분열과 다툼을 계속했다.

진짜 적인 국민군을 눈앞에 두고 공화 진영은 사분오열했다. 1937년 봄 스탈린의 지시를 따르는 스페인 공산주의자들이 권력 장악을 결심하면서 공화 진영 내에서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이 시작되었다. 결국 공산당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수많은 아나키스트와 사회주의자, 노동자들이 ‘트로츠키주의자’ ‘프랑코의 사주를 받은 파시스트 제5열’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탈주자, 반역자, 스파이로 몰려 고문당하고 살해되었다. 공산당 소속이 아닌 병사들은 무기를 지급받지 못했고, 부상을 입었을 때 진료를 거부당하기도 했다. 병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지켜야 할 이상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의명분을 잃어버린 공화국은 더욱 빠른 속도로 붕괴했다. 그런 군대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는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프랑코를 지지하는 역사가들이 주장하듯이, 소련의 개입이 1936년 11월 공화 진영의 마드리드 수호에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독일과 이탈리아 군대가 국민군이 승리하는 쪽으로 전쟁 기간을 크게 단축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프랑코가 순전히 독일과 이탈리아 군대 덕분에 승리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주장일 것이다. 콘도르 군단은 무엇보다도 북부 지역 정복을 앞당겼고, 덕분에 국민군은 북부 지역 군대를 중부 지역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콘도르 군단이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완벽한 환경을 제공한 것은 공산주의자 군 지휘관들과 소련 군사 고문들의 형편없는 지도력이었다. - 제38장 무너진 대의명분(733쪽)

20세기 모든 정치 이념들의 격전장
20세기를 이념의 시대로 부른다면 스페인 내전은 가장 20세기다운 전쟁이었다. 사회주의, 자유주의, 공산주의, 아나키즘, 파시즘 등 온갖 정치 이념들이 몰려들어 폭발한 현장이 바로 스페인 내전이었기 때문이다. 《스페인 내전》에서 비버는 내전을 촉발한 다양한 정치 이념들이 어떻게 스페인에 들어와 뿌리를 내렸으며, 내전 발발과 경과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명쾌하게 보여준다.

1930년대 유럽은 대체로 자유민주주의, 파시즘, 공산주의라고 하는 세 정치 세력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로 대표되는 자유민주주의는 부르주아 중간계급에 뿌리를 두고 개혁주의 모델을 지향했다. 혁명 모델을 추구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기본적으로 노동계급이 주류를 이루었고, 반(反)부르주아적이었으며, 자본주의 경제의 해체와 공산주의 혹은 절대자유주의(libertarianism) 체제 도입을 지향했다. 마지막으로, 무솔리니와 히틀러로 대표되는 파시즘은 보수 반동 세력으로서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공산당을 비롯한 반대파를 축출하는 방식으로 기존 질서를 수호하려 했다.
이러한 정치 지형이 1930년대 스페인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특히 스페인에서는 아나키즘이 정치 이념으로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는데, 스페인 내전은 비록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역사상 전무후무한 아나키즘의 실험 무대가 되었다.

일찍이 1830년대에 스페인에서 노동조합을 조직하려는 첫 시도가 있었고, 19세기 중엽이면 비정치적인 소규모 조합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후 새로운 정치 이념들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에 뿌리를 내렸다. 아나키즘적 혹은 절대자유주의적(libertarian) 사회주의가 먼저 들어왔는데, 이 이념과 마르크스 사회주의의 근본적인 불화는 훗날 스페인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 초기에 아나키즘이 스페인 노동계급 내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아나키즘은 자유롭게 연합하는 공동체들의 협력 구조를 주장했는데, 이것이 스페인 노동자들의 뿌리 깊은 상호부조 전통과 맞아떨어졌다. 또한 아나키즘이 내세우는 연방주의적 조직은 중앙집권적 경향에 적대적이었던 노동자들에게 호소력이 컸다. 아나키즘은 부패한 정치 제도와 위선적인 교회에 맞서 강력한 윤리적 대안을 제시했다. - 제2장 국왕의 퇴진(41∼42쪽)

또한 스페인에서는 독특하게도 가톨릭 신앙이 이데올로기로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스페인에서 “가톨릭교회는 보수 세력의 성채였다.” 스페인 내전은 이념 전쟁이면서 동시에 스페인 민중과 민중을 억압하는 권위주의적이고 부패한 가톨릭교회가 격돌한 종교 전쟁이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지식인들의 참여와 국제여단
스페인 내전만큼 세계 시민 혹은 예술가들의 이데올로기적 열정을 불러일으킨 전쟁도 없을 것이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 앙드레 말로의 《희망》은 모두 스페인 내전이 낳은 걸작이다. 실제로 유명 작가와 예술인들의 지지는 공화 진영의 선전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이 책에서도 앙드레 말로와 조지 오웰, 어니스트 헤밍웨이, 파블로 네루다, 시몬 베유 같은 내전에 직접 참여했던 지식인들을 만날 수 있다.

스페인 내전에서는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전쟁에 개입했다. 그들 중 압도적 다수는 공화 정부 편이었다. 스페인 내전은 인간애(휴머니티)라고 하는 기본적 요소를 비롯한 서사적 드라마의 매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열정적 관찰자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 지식인들이 공화 정부의 대의에 보낸 지지를 보면, 앙드레 말로, 조지 오웰, 존 콘포드 같은 몇몇 작가들은 직접 참전했으며, 헤밍웨이, 존 더스 패서스,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 W. H. 오든, 스티븐 스펜더, 세실 데이 루이스, 허버트 리드, 조르주 베르나노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루이 아라공, 폴 엘뤼아르 등이 길고 짧은 시간을 스페인에서 보내기는 했지만, 대개는 현실적이라기보다는 도덕적 의미를 지닌 참여였다.
- 제21장 지식인들의 전쟁(437∼438쪽)

그러나 사실 예술가와 작가들은 스페인에서 싸운 수많은 자원병 가운데 극히 일부였을 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국제여단이 중간계급 지식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잘못된 인식을 지적한다.

국제여단에 관한 이야기는 후에 여러 가지 점에서 왜곡되었는데, 그것은 단순히 스페인 군대와 전혀 균형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역할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선전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었다. 특히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여단이 대부분 중산층 지식인이나 확고한 이념으로 무장한 사람들로 구성되었다는 인상이 생겨났다. 이런 인상은 소수 지식인들이 주요 뉴스거리가 되었기 때문이고, 부분적으로는 그들이 확고한 소신을 가지고 있었고 후에 출판업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다. 사실 영국 출신 자원병 가운데 80퍼센트가 직장을 그만두거나 실업 상태에 있던 육체 노동자들이었다.
- 제16장 국제여단(290쪽)

전쟁에서 맛볼 수 있는 짜릿한 흥분을 즐기려고 스페인에 간 자원병도 있었지만, 국제여단 병사들 대부분의 참여 동기가 이타적이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파시즘을 국제적 위협으로 보았고 국제여단이 거기에 맞서 싸우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었다. 또한 스페인을 세계의 미래를 결정짓는 전장으로 생각했다.

스페인 내전의 주요 인물들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 별칭은 지도자라는 뜻의 ‘카우디요’. 1915년 스페인 육군에서 최연소 대위에 올랐으며, 1934년 10월 발생한 아스투리아스 노동자 총파업을 진압한 공을 인정받아 모로코 주둔군 사령관에 임명되는 등 군 내부에서 승승장구했다. 1936년 2월 총선에서 인민전선이 승리하자 7월에 공화 정부에 대항한 군사 반란을 일으켰다. 1936년 10월 1일 부르고스에서 육·해·공군 총사령관 겸 국가 원수에 올라 권력을 장악했다. 1939년 4월 1일, 3년여에 걸친 내전이 국민 진영의 승리로 끝난 후 37년 동안 스페인에서 절대 권력을 누렸다.

유이스 콤파니스(1882∼1940) 극좌파 성향을 보인 공화주의자로서 1931년 3월 카탈루냐 공화좌파 수립에 참여해 같은 해 4월 지방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가 이끌던 카탈루냐 공화좌파는 내전에서 반파시즘 의용군중앙위원회와 마르크스주의 통합노동자당, 아나르코 생디칼리스트 조직인 전국노동연합과 힘을 합쳐 국민군에 대항해 싸웠다. 1939년 내전 종결 후 프랑스로 망명했는데, 1940년 10월 나치 독일 정부에 체포되어 프랑코 정부로 이송되었다. 나흘 뒤 군사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처형되었다.

후안 네그린(1894∼1956) 교수 출신 온건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1929년 에스파냐 사회주의노동자당에 가입하고 2년 뒤 코르테스 의원으로 선출된다. 1937년 5월 소련의 후원으로 공화 정부 총리가 된 뒤에는 소련에 의존하는 정책을 펼쳤는데, 이는 좌파 세력의 분열과 갈등에 치명적이었다. 국민군의 마드리드 점령이 확실해진 1939년 3월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공화파 국외 망명 정부의 총리를 지내다가 1945년 자리에서 물러났다.

프란시스코 라르고 카바예로(1869∼1946) ‘스페인의 레닌’이라 불렸던 미장공 출신의 급진 사회주의자. 1925년 노동자총동맹 지도자가 되었으며, 1936년 9월부터 총리직과 전쟁부 장관을 맡았다. 1937년 5월 바르셀로나에서 공산주의자와 비(非)공산주의자 간에 ‘내전 속 내전’이 일어나 자신이 이끌던 내각이 궁지에 몰리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네그린 정부가 들어서자 정치적으로 고립된 그는 1939년 프랑스로 망명했으며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돌로레스 이바루리(1895∼1989) 별칭은 ‘정열의 꽃’ ‘수난의 꽃’이라는 뜻의 ‘라 파시오나리아’. 광부의 딸로 태어나 재봉사와 요리사로 일하다 1920년 에스파냐 공산당에 가입했다. 여러 차례 투옥을 거쳐 의원에 당선되었다. 내전 동안에는 공화파 구호인 ‘노파사란(‘그들은 통과할 수 없다’)’을 만드는 등 열정적 웅변가로서 내전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 내전에서 패하자 소련으로 망명하여 에스파냐 공산당 대표로 활동했다. 1977년 스페인으로 돌아와 그해 6월 총선에서 다시 의원에 당선된다.

안드레스 닌(1892∼1937) 1921년 에스파냐 공산당을 세우고 노동조합 지도자로 활약했다. 소련에서 트로츠키의 참모를 지냈으나 트로츠키와 결별하고 1935년에 스페인에서 좌익 반대파 노선의 마르크스주의 통합노동자당(POUM)을 설립했다. 1937년 5월 카탈루냐에서 공산주의자들과 벌인 무력 투쟁에서 통합노동자당이 패하자, 공화 정부는 통합노동자당을 불법 단체로 선언했다. 닌은 다른 통합노동자당 지도자들과 함께 체포되어 마드리드 근처 수용소에 보내졌으며, 1937년 6월 20일 사망했다. 아직도 죽음의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다.

부에나벤투라 두루티(1896∼1936)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혁명가. 열네 살 때 철도 노동자가 되었으며, 전국노동조합에 가입해 혁명 활동에 투신했다. 1917년 총파업 이후 쫓기는 몸이 되어 동료들과 함께 망명했다. 여러 나라에서 직업 혁명가로 활동하다 수감 생활을 하였으며, 스페인, 칠레, 아르헨티나에서 각각 한 번씩 사형 선고를 받았다. 다시 바르셀로나에 돌아와 당시 스페인에서 가장 큰 아나키스트 조직인 아나키스트연합과 전국노동연합 내에 무장 군대를 조직한다. 내전이 일어난 후 아라곤 지역에서 영웅적으로 싸웠으나 1936년 11월 20일 ‘의문의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다.


본문 내용

제1부 제2공화정의 탄생
"스페인은 민주공화국이다!", ''스페인에 러시아를 세우자!"
16, 17세기에 식민지 개척으로 엄청난 부를 누렸던 스페인의 황금시대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봉건적이고 권위주의적이고 중앙집권적인 지배 왕조의 성격 때문에 스페인은 점점 더 시대에 뒤떨어졌고, 유럽 국가들과의 경쟁에서도 뒤처졌다. 스페인 왕국의 몰락은 19세기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 1875년의 제1공화국은 11개월 만에 막을 내렸지만, 20세기에 들어와 개혁을 요구하는 민중의 요구는 더욱 거세게 폭발했고 마침내 1931년 스페인 제2공화국이 탄생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과 자유주의적 공화주의자들이 세운 정부는 1933년 11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우파에게 내각을 빼앗기고 1936년 2월에 있을 총선을 준비해야 했다.

1936년 1월 15일 중도 좌파와 좌파의 여러 정당들이 단일 연합체 형태로 선거를 치르기 위해 협약을 체결했다. 인민전선은 선거 전략에 무엇보다도 농업 개혁, 카탈루냐 자치법 재도입, 10월 혁명 때 체포되어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사면 등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았다. …… 2월 16일 긴장은 고조되어 있었지만 차분한 분위기에서 투표소들이 문을 열었다. 좌파와 우파, 두 연합 세력은 모두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했다. 후에 프랑코 장군의 선전원들은 선거에서 심각한 부정 행위가 있었기 때문에 결과가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심지어 왕당파 신문 <아베세>까지도 2월 17일자 기사에서 투표가 “파업도, 협박도, 그 어떤 사고도 없이 치러졌다. 모든 사람이 완전히 자유롭게 자신이 찍고 싶은 곳에 투표했다.”라고 썼다. - 제4장 인민전선(83, 87쪽)

1936년 2월 총선은 좌파의 연합 세력인 ‘인민전선’의 승리로 끝났다. 새 내각이 비교적 온건한 성격이었음에도 우파는 곧 폭력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시작될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였다. 우파는 ‘옛 스페인’을 되찾기 위해 세력을 결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37년 7월 17일, 프랑코 장군을 중심으로 산후르호, 몰라 등 군 장성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반란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여러 가지 증거가 드러나는데도 공화 정부 지도자들은 이 두려운 진실을 한사코 믿으려 하지 않았다. 대통령 아사냐와 총리 카사레스 키로가의 행동은 체임벌린이 히틀러를 대하는 것과 비슷했다. 공화국 대통령은 정치적 감각을 완전히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병적인 쾌감의 발작을 동반하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아사냐와 카사레스 키로가는 심지어 공화국에 충성을 바치는 장군들과 프리에토의 경고마저 귀담아 듣지 않았다. 또한 팜플로나에서 몰라가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로 카사레스 키로가에게 빨리 대비하라고 촉구했던 공산당 소속 의원 돌로레스 이바루리(DoloresIb?rruri, 이바루리는 ‘라 파시오나리아’로 알려져 있었다)의 경고를 전해 듣고도 대통령은 “몰라는 공화국에 충성을 다하고 있다.”라고 답할 뿐이었다.
- 제5장 치명적인 무능(111쪽)

제2부 두 스페인의 전쟁
국민 진영 대 공화 진영, "우리와 뜻이 다른 자는 모두 적이다!"
‘옛 스페인’의 민족주의적 이상을 신봉하는 파시즘 성향의 팔랑헤당과 전통주의적 강경 가톨릭 왕정의 이념을 선호하는 카를로스파가 중심이 된 국민 진영의 쿠데타는 곧 내전으로 확산되었다. 반란 세력의 전략 핵심은 ‘정화(淨化, limpieza)’ 개념이었는데, 병사들에게 ‘좌익 분자, 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 노동조합원, 프리메이슨 등을 모조리 근절’하도록 명령했다.

8월 초에 이르자 각각의 진영이 분명해지고 전선이 확실히 구분되기 시작했다. 이때쯤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스페인이 폭력적 형태로 권력을 다투는 쿠데타가 아니라 진짜 내전에 돌입했다는 사실이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국민 진영은 이미 산업 시설과 우수한 인적 자원을 보유한 대도시, 함선과 상선 대부분, 국가 보유 금과 본토 총 면적의 3분의 2를 수중에 두고 있던 공화 정부에 비해서 불리했던 상황을 외국으로부터 끌어낸 지원과 주요 농업 지대 장악으로 충분히 보상받았다. 국민 진영의 주요 병력 공급원은 한동안 모로코의 리프족 원주민들과 전투 경험이 풍부한 4만 명의 아프리카 주둔 군대였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국민 진영에 육해공군과 전략·기술적 지원을, 미국과 영국의 사업가들은 전쟁에 필수적인 신용 대부와 석유를 제공할 터였다.
- 제7장 주도권 다툼(156∼157쪽)

제3부 내전의 국제화
영국 주도의 불간섭 정책, "공화 정부를 돕지 마시오!"
스페인 내전이 널리 확산될까 두려워한 영국은 프랑스가 스페인 공화 정부를 돕는 것은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국민군을 돕도록 자극할 뿐이라고 경고하며 ‘불간섭’ 정책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 전쟁에 관련될 나라 모두를 포함시키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일명 ‘불간섭위원회’는 당시 국민 진영을 적극 지지하고 지원했던 독일과 이탈리아 정부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 결국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과 국제 기업가 집단으로부터 외면당한 공화 정부는 소련의 지원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영국 외무장관) 이든은 스페인 내전에 대해 결코 불편부당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프랑스 외무장관 이본 델보에게 영국은 공화 진영이 승리하는 것보다는 반란 세력이 승리하는 것을 더 낫게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파시스트를 자처했던, 이미 처형당한 칼보 소텔로를 존경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이든은 또 공화 진영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들에는 증오심을 드러내면서도 국민 진영에서 벌어진 만행에는 입을 다물었다. …… 이든은 1937년까지도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으며, 1938년 초까지도 유화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않았다. 내전 초반에 그는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공산주의자의’ 승리보다는 오히려 ‘파시스트의’ 승리를 선호했다. - 제13장 외교 전쟁(248∼249쪽)

제4부 대리인들의 세계 대전
“게르니카 불타고 있음!”
독일과 이탈리아, 소련이 참전하면서 스페인 내전은 국제전으로 변모했고 전투의 양상은 더욱 복잡하고 치열해졌다. 특히 유럽에서 영토 확장을 꾀하던 히틀러에게 스페인 내전은 독일군의 최신 전략과 무기들을 실험할 좋은 기회가 되었다. 독일 콘도르 군단이 펼친 작전 중에서 악명 높은 게르니카 공습은 독일 공군의 공중 폭격 능력을 실험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1937년 4월 25일) 5시 15분경, 둔탁한 비행기 엔진 소리가 들렸다. 병사들은 즉각 그것이 육중한 융커52기의 별명인 ‘전차’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르고스에서 출발한 3개 비행대대가 두 시간 반에 걸쳐서 20분 간격으로 게르니카 시에 매우 체계적으로 융단 폭격을 가했다. 목격자들은 폭격 때문에 도시에 펼쳐진 참상을 ‘지옥’ 혹은 ‘세상 종말’ 같은 말로 묘사했다. 가족 전체가 자기 집 흙더미에 파묻혔는가 하면 피난민 수용소에 있다가 그대로 깔려 죽은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소나 양들이 불에 타 하얀 인광을 내뿜으며 화염에 휩싸인 건물들 사이로 미친 듯이 뛰어다니다가 쓰러져 죽었다. 검게 그을은 사람들이 화염과 연기, 먼지 사이를 넋이 나간 채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가 하면 가족이나 친구를 찾으려고 돌무더기를 미친 듯이 맨손으로 파헤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 제20장 바스크 전투(412∼413쪽)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공화 정부가 국제 사회의 여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전투에서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었을지 몰라도, 국민 진영은 영국과 미국의 소수 유력 인사들에게 힘을 집중함으로써 결정적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국민 진영은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정서에 호소하면서 동시에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최대한 이용했다. 공화 진영의 선전도 대개 국민 진영의 선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양측은 모두 실제 사건을 과대 포장했으며, 상대방에게서 인간성을 제거해 괴물로 보이게 만들었다.

1936년 7월 외국의 가톨릭 언론들은 국민 진영의 봉기를 지지하고 공화 진영의 반(反)교권주의, 교회에 대한 신성 모독 행위, 성직자 살해를 맹비난하는 기사를 앞다투어 내보냈다. 그중에서도 가장 선정적인 고발은 수녀를 강간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중세로까지 기원이 거슬러 올라가는, 즉 유대인 학살을 정당화하려고 꾸며낸 것과 유사한 조작이었다. 두 가지 입증되지 않은 사건이 지독한 악선전을 퍼뜨릴 수 있는 구실을 제공했다. 그중 성직자를 살해했다는 국민 진영의 주장은 수녀 강간보다는 좀 더 확실한 근거가 있었다. 그리고 교황은 그들을 순교자로 선언하여 국민 진영의 입장을 지지해주었다. - 제21장 지식인들의 전쟁(428쪽)

제5부 내전 속 내전
"제5열의 정체가 드러났다. 트로츠키-파시스트다!"
1937년 봄, 공화 정부 내 권력 투쟁이 극으로 치달았다. 권력을 집중화하려는 공산주의자들의 정책이 공화 진영 내 주요 동맹 세력이었던 아나키스트들의 완강한 저항에 맞닥뜨린 것이다. 공산당은 아나키즘 계열인 마르크스주의 통합노동자당을 축출하는 작업에 들어갔고, 끝내 공화 진영은 ‘내전 속의 내전’ 상태로까지 치달았다. 공화 진영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은 공산당의 승리로 끝났고, 공산주의자들은 좌파 내 경쟁자들을 ‘파시스트 제5열’로 몰아 제거했다. 군 내부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전향 공작과 탄압은 공화군 병사들과 국제여단의 사기를 땅에 떨어뜨렸고 이는 전력 약화로 이어졌다.

공산주의 계열 신문들은 아나키스트들의 행동이 트로츠키주의자들의 반역 행위와 같다는 당의 공식 노선을 그대로 표출하는 도덕적 폭력을 마구 휘둘렀다. 이 경향은 모스크바의 코민테른에 보내는 보고서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이번 소요가 치밀한 사전 계획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코민테른 대표는 바르셀로나 사건은 한마디로 ‘반란’이라고 주장하면서 “스페인 내 트로츠키파와 프랑코 간의 커넥션을 보여주는 매우 흥미로운 문건이 발견되었다. …… 반란을 일으키기 위한 준비가 이미 두 달 전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역시 입증되었다.”라고 덧붙였다. …… 가끔 스탈린주의자들의 거짓말은 기대 섞인 환상으로까지 발전했다. 다른 보고서는 “몇몇 가장 혐오스러운 약탈 행위가 여러 곳에서 자행되었다. 트로츠키주의자 깡패들이 민간인들에게서 희귀 물자와 값 나가는 것으로 여겨지는 물건들을 모두 탈취해 갔다. 이에 무기를 지니고 있던 스페인 사람들은 즉각 대응했다. 트로츠키주의 반역자들은 문자 그대로 불과 몇 시간 안에 일소되었다.”라고 주장했다. - 제23장 전선의 분열(474, 4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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