둠 (DOOM)의 아버지 존 카멕

시나리오/게임기획|2019. 11. 2. 09:30

둠의 아버지 존 카멕 (1) 둠으로 전세계 프로그래머들의 영웅이 된 존 카멕

한가지 일에 열심히 일하는 것은 성공을 위한 가장 실질적인 방법이다. 

오직 목표에만 초점을 맞춰라. 

그리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음 발걸음을 내딛더라. 

만약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길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다른 길도 함께 가보고 더 나은 것이 어떤 것인지 찾아내라. 

존 카멕은 그야말로 천재라는 말 이외에는 표현 할 수 없는 역사상 최고의 슈퍼 게임 프로그래머이다.

 

 

그는 게임계에 

FPS(First Person Shooter:1인칭 액션 슈팅게임)라는 게임 장르를 창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앞선 3D 기술로 전체 게임 프로그래밍계에 일대 혁명을 불러 일으켰다.  

그가 처음 세상을 놀라게 한 작품은 코맨더 킨(Commander Keen)이였다. 

런 앤 액션 게임방식으로 한때 슈퍼 마리오3의 카피게임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하였지만 

개인용 컴퓨터에서 당시 최신 게임기에 뒤지지 않는 부드러운 스크롤을 선보이면서 호평을 받았다. 

또한 코맨더 킨은 게임 판매 방식에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여 게임 산업계에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이른바 쉐어웨어(ShareWare) 라고 불리는 이 방식은 

공짜로 게임을 인터넷으로 마구 배포하여서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접하게 하는 것이다. 

단 게임은 정해진 스테이지만 할 수 있는 제약이 있었다. 

즉 첫 번째 한판만 할 수 있는 미끼용 프로그램이었다. 

게임을 받아본 유저가 게임을 실제 플레이 해서 재미가 있으면 

회사에 온라인으로 구입의사를 밝히고 비용을 지불 하는 것이다. 

그러면 회사에서 전체를 플레이 할 수 있는 게임을 인터넷이나 우편으로 보내게 되는 방식이었다.  

어포지(APOGEE : 현재 3D 렐름사로 회사명을 변경)사와

공동으로 진행한 쉐어웨어 판매방식이 성공을 거두면서 

전세계의 많은 아마추어 게임 제작자들이 문턱이 높은 게임 유통업체에 휘둘리지 않고 

적은 비용으로 자체적인 독자 유통망을 확보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던 것이다.


존 카멕이 게임업계에 풍운아로 본격적인 이름을 알리는 것은 울펜슈타인(Wolfenstein) 3D였다.

1992년 도스 버전으로 발매된 울펜슈타인3D는 진정한 의미의 컴퓨터 3D 그래픽은 아니었지만

1인칭 액션 슈팅게임 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전세계에 알린 작품이었다.   

나치 독일이 장악한 울펜 슈타인 성을 빠져 나와야 하는 목적을 가진 이 게임은

1인칭 시점에서 적을 쏟아 맞춘다는 FPS게임의 틀을 완성했다.

특히 게임의 아이템 체계와 특정 출구를 찾아야 미션이 완료되는 것과 같은 경우는

지금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고 간단해 보이는 것들이지만

그 당시만 하여도 획기적인 시도였고

현재의 모든 1인칭 액션 슈팅게임에 교과서 같은 역할을 하였다.

 

 

존 카멕의 다음 작품인 둠은

각종 언론으로부터 게임 역사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게임으로 선정될 정도로

게임산업에 일대 혁명을 불러 일으켰다.

둠은 기술적인 면에서 3D 엔진에 일대 혁신을 불러 일으켰음은 물론이며

네트워크 플레이를 실현하여서 게임에 새로운 재미를 창출시켰다.

특히 둠이 제공하는 네트워크 플레이는

원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연결해서 게임 대결을 펼치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데스 매치로 명명된 이 네트워크 플레이는

쉰들러 리스트를 찍기 위해서 유럽에 머물던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와

죽은 시인의 사회로 유명한 영화 배우인 로빈 윌리엄스가

미국에서 매일 같이 서로 네트워크를 연결해서 게임을 즐긴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던 게임 시스템이다.

 

 

 

데스매치는 차후에 배틀넷이라는 개념으로 확대 발전한다. 

데스 매치는 이미 안면이 있는 사람이 서로의 인터넷 주소로 찾아가서 게임을 즐기는 것이라면 

배틀넷은 얼굴도 모르는 전세계의 게임유저들을 로비라는 곳에서 끌어 모은 후에 

게임대결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인터넷 서비스이다. 

이렇게 축적된 기술은 차후에 대규모 온라인 게임으로 확대 발전한다.  

둠 이후에 존 카멕의 진수가 새롭게 드러나는 일대 사건이 벌어지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개발한 게임의 소스를 모두 공개한 것이었다. 

이것은 그전의 게임 산업계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파격적인 시도였다. 

그는 하나의 단체나 사람이 기술을 독점하지 않고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진정한 해커였다.

그가 그의 GNU정신(소프트웨어의 소스를 공유하자는 운동)을 몸소 실천하기 위하여 

둠의 엔진과 소스를 공개함으로써 세계 3D 게임계는 획기적인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의 게임 소스를 보면서 3D 프로그래밍에 눈을 뜬 많은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그는 프로그래머들의 절대적인 영웅으로 등극하게 된다. 

수년간을 땀 흘려서 이루어낸 게임의 핵심 소스들을 아낌없이 공개를 하였으니 

그가 보여준 나눔의 정신은 전세계 게임 프로그래머들에게 경이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정보 공유 정신은 그가 게임의 엔진들을 특허로 등록하지 않은 것에서도 잘 들어난다. 

3D 게임 엔진의 선구자인 존 카멕이 자신의 기술을 특허로 등록했다면 

전세계 게임회사들은 그에게 수억 달러의 로열티를 물어야 하고 

그만큼 3D 기술의 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가 기술을 독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수 억달러가 될 수 있는 원천적인 특허기술에 대해서도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게임 회사에서도 함부로 특허기술을 등록 못하고 있다. 

그의 말과 행동 덕분에 사람들은 특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해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게임 개발사가 무리하게 특허를 등록하게 되면 모든 비난의 집중 포화를 피해갈수가 없게 된 것이다. 

둠의 또 다른 의의는 바로 MOD(Modifications:변형)붐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는 둠의 엔진과 함께 게임 개발툴을 공개하였는데 

이 개발툴을 이용하면 새로운 게임을 얼마든지 개발할 수가 있었다. 

초기의 개발툴은 아마추어들이 직접 만들기가 힘들었지만 

그는 일부러 자신의 시간을 투자해서 

누구나 쉽게 게임을 변형시킬 수 있는 개조툴을 만들어서 배포하였다.

물론 1인칭 액션 슈팅게임이라는 게임 시스템 자체는 변화를 줄 수 없지만

게임 개조툴을 사용하면

게임 캐릭터와 아이템 그리고 배경과 스테이지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가 있기 때문에

아마추어들이 원하는 게임을 얼마든지 만들 수가 있었다.

물론 MOD 덕분에 게임 유저들은 더욱 다양한 게임을 즐길 수가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아마추어 게임 개발자들의 게임 제작능력을 향상시키는데 큰 몫을 담당하였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실제 MOD로 게임을 제작해서 게임개발사로부터 인정을 받아 스카우트 된 경우가 허다하였다.

MOD로 개조 게임을 개발해서 프로 게임 개발자가 되는 것은 하나의 트렌드가 된지 오래이다.

특히 최고의 FPS 게임이라고 불리우는 하프라이프의 개발진만 해도

둠의 개조툴로 게임을 개발하다가 모인 사람들이 만든 회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이밖에 배틀필드2의 제작진들도 바로

MOD로 게임을 개발하던 아마추어에서 프로 게임 개발자로 스카우트 된 팀이다.

이렇게 MOD 덕분에 게임 개발자의 꿈을 이룬 아마추어들은 수두룩하다.

그리고 이러한 MOD의 원조가 바로 둠이다.

이러한 그의 업적이 집대성되는 것은 바로 1996년에 발매된 퀘이크이다.

퀘이크는 진정한 의미에서 100% 3D 게임이었다.

울펜슈타인 3D와 둠은 2D와 3D기술이 혼재되었지만

퀘이크는 화면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3D로 구현하여서

3D 게임엔진의 진정한 시작으로 불리우는 게임이 되었다.

무려 32명이 동시에 데쓰 매치를 즐길 수 있게 된 퀘이크는 

전세계에 네트워크 게임 붐을 다시 한번 일으켰다. 

또한 더 쉽게 만들어진 게임 개조툴 덕분에 

더 많은 아마추어 제작자들이 열정을 가지고 게임 개발에 뛰어들게 하였다. 

또한 그는 퀘이크의 성공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게임의 모든 소스를 공개하면서 

전세계 게임 프로그래머들에게 다시 한번 찬사를 들었다. 

그리고 퀘이크는 게임산업의 측면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게임엔진의 판매였다. 

퀘이크의 게임 엔진을 사용해서 상용게임을 만들 경우 로열티를 받는 이 방식은 

게임회사들이 새롭게 이익을 창출 할 수 있는 큰 모티브를 제공하였다.

소규모의 회사들이 처음부터 게임을 개발하기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또한 많은 시행착오로 인해서 중간에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존카멕이 개발한 퀘이크 엔진을 구입해서 사용하면 

중간에 기술적인 문제로 제작을 중지해야 하는 위험은 줄어든다.  

그것뿐만 아니라 게임의 개발기간도 단축할 수 있고

시행착오 없이 처음 계획했던 게임을 개발할 수가 있다.

물론 게임 엔진을 돈으로 구입해야 하지만

게임 개발과정에서의 위험을 대폭적으로 줄인다는 측면에서

게임엔진은 게임 개발에 혁명적인 변화를 제공하였다.

초기에는 존 카멕의 3D 게임 엔진을 사용한 다른 회사들의 게임은 

Id 소프트웨어 보다 질이 낮은 게임을 개발하지 않을까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존 카멕이 개발하는 게임에서는 3D 엔진의 기술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해서 게임을 개발한다. 

자기가 만든 엔진을 사용하면 어떤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게임을 개발한다. 

즉 재미보다는 기술에 초점을 맞추어서 개발한다.  

그 덕분에 다른 회사에서는 재미라는 측면에서 새롭게 게임을 개발할 여지가 생기게 된다. 

즉 3D 게임 엔진을 구입한 다른 회사에서는 

시나리오나 캐릭터에 더 신경을 써서 게임에 색다른 재미를 첨가 해서 

얼마든지 Id 소프트웨어의 게임과 차별화를 이룩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존 카멕은 최고 앞선 기술을 선보인 게임으로 유저들에게 사랑을 받아서 이익을 창출하고 

존 카맥의 엔진을 구입한 회사는 게임에 재미요소를 더욱 첨가하여서 시장에서 성공하는 게임을 개발한다. 

이러한 구도 덕분에 존 카멕과 다른 회사의 윈윈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퀘이크2보다 퀘이크2 엔진을 사용한 하프라이프가 더욱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존 카멕이 고안한 이런 사업모델이 게임회사 전체로 보면 큰 이익이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존 카멕이 3D 게임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자 

그는 각종 컴퓨터 하드웨어 업체에게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그의 말 한마디에 따라서 사람들이 게임 그래픽 카드를 구매하기 때문이다. 

물론 존 카멕의 게임을 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486에서 펜티엄으로 업그레이드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CPU는 게임 제작사의 역량과는 상관없이 원래 가지고 있는 성능을 그대로 발휘한다. 

그래픽 카드는 조금 미묘한 문제다. 

그래픽 카드회사는 게임개발사 차원에서 

어떤 카드를 지원하느냐에 따라서 성능에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 3D업체의 선두 업체는 바로 부두(VoodDoo)사였다. 

이곳에서는 자체적으로 사용하는 글라이드(Glide) 모드라고 하는 3D 기술이 있었다. 

그런데 존 카멕이 어느 날 글라이드는 사용환경이 어렵다면서 

앞으로 자신의 게임에서는 지원하지 않겠다고 폭탄발언을 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부두사의 그래픽 카드는 구매하지 않고 

존 카멕이 지원하겠다는 엔비디어(Nvidia)사로 급속한 쏠림 현상이 일어난 것이었다. 

결국 부두사는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인해서 엔비디어(Nvidia)사에 인수당하고 

결국 컴퓨터 산업계에서 영영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 사건은 존카멕의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아직도 많은 게임 개발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얘기이다. 

이 덕분에 전세계의 그래픽 카드 회사들은 

제발 자신들의 제품을 존카멕의 3D 게임엔진에서 지원해 달라고 청탁을 해야 할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존 카멕은 특정회사의 후원금에 의해서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짜 자신의 신념과 소신에 맞는 그래픽 카드를 지원하고 추천한다. 

이렇게 돈이 아니라 유저의 입장에서 무엇이 옳은지를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에서 

또한 전세계의 게임 프로그래머들 게임 마니아들은 

돈에 영혼을 팔지 않은 게임 개발자로 존  카멕을 더욱 사랑하고 존경하고 있는 것이다.


둠의 아버지 존 카멕 (2) 타고난 천재의 학창 시절


1970년 생인 존 카맥은 어렸을 때부터 천재성을 가지고 있는 소년이었다. 

비록 남들보다 말을 늦게 시작하였지만 

그는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뛰어난 학습능력을 선보였다. 

학교시험에서 만점을 받는 것은 기본이었고 

이미 중학교 1학년 때 중학교 3학년의 모든 과목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또한 이미 자신만의 언어체계를 개발해서 독특한 기호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자신이 남들보다 훨씬 똑똑한 존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아이들과 노는 것에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자신이 머리 속에서 생각하는 것과 친구들이 관심 있어 하는 것에는 이미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운명은 12살 때 이미 결정이 났다. 

처음 애플 컴퓨터2를 보는 순간 그는 자신의 인생을 결정했다. 

그는 컴퓨터의 키보드를 치는 순간 주위의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신경을 쓰지도 않게 되었다고 한다. 

세상에 오직 자신과 컴퓨터만 있는 것처럼 빠져들었다.

이사를 가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자신의 애플 컴퓨터의 전원을 꽂는 것일 정도로 

그는 철저하게 컴퓨터 중심의 생활을 한다. 

혼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한 그는 어느덧 선생님의 수준을 뛰어 넘었다.
결국 학교선생님은 존 카멕을 

캔사스 주에서 최고 컴퓨터 명문 학교로 불리 우는 

샤니미션이스트(Shawnee Mission East High School)로 전학을 보낸다.

존 카멕의 고등학교 시절은 

만화, 컴퓨터, 반지의 제왕, 던전앤 드래곤, 게임 이 다섯 가지로 간단하게 요약 될 수 있다. 

특히 그는 어느 날 리차드 게리엇의 울티마에 감동적으로 플레하면서 게임 개발자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된다.

다만 그가 일반 다른 사람과 틀린 것은 게임 개발자가 되려고 한 이유가 

자신이 만들면 훨씬 더 잘만 들것이라는 강한 자신감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자신의 힘으로 게임을 개발하고 있었고 다른 회사의 게임들을 개조도 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로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었다. 

그가 마음먹은 컴퓨터는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짭짤하게 돈을 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에게 아르바이트 하는 일을 들키고 만다. 

그의 어머니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집에 처박혀서 컴퓨터만 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의 어머니는 존 카멕이 다른 누구보다도 영리하고 똑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발 그가 명문대학에 진학해서 정상적인 공부를 계속하기를 바랬다.

결국 원래 대학진학에 관심이 없었던 존 카멕은 

어머니의 애원과 강권에 못 이겨 결국 프로그래밍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고 

켄사스의 대학인 UKMC(University of Missouri-Kansas City)에 진학한다. 

하지만 천재인 그에게 대학이라는 것은 정말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를 원하는 그에게 이미 구닥다리가 되어버린 정보들 가지고 

매일 똑 같은 소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대학교 수업은 맞지 않았다.

그는 대학교의 교수들에게 배울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학교 2학때는 자퇴를 결심한다. 

자신에게는 최악의 2년이라고 말하는 대학교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그는 피자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리고 틈틈이 여러 소프트웨어 회사로부터 외주를 받고서 프로그램을 개발해 주었다. 

사실 존 카멕이 많은 돈을 벌고 싶다면 충분히 벌 수가 있었다. 

그는 외주로 받은 프로그램들을 주말을 이용해서 간단하게 개발했고 천달러에서 천 오백달러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돈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냥 자신이 원하는 컴퓨터를 구입할 수 있는 정도의 돈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피자가게를 계속 다니면서 돈이 필요 할 때만 프로그래밍 외주 일을 하였다.

하지만 그의 프로그래밍 능력을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가만 놔둘 리가 없었다. 

존 카멕은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많은 소프트웨어 업체로부터 스카우트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프리랜서 생활이 체질에 맞았다. 

아침에 출근해서 정해진 일을 하고 억지로 사람들과 친한척하는 회사생활이야 말로 

그가 가장 역겨워하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일을 하는 프리랜서 생활이 좋았다.


둠의 아버지 존 카멕 (3) 존 카멕의 스승 존 로메로를 만나다.


모든 회사의 취업제의를 한결 같이 거절하던 존 카멕이었지만 

운명적으로 존 로메오를 만나며 그의 생각을 바꾸게 된다.
존 로메오는 이미 컴퓨터 게임계에서 뛰어난 실력으로 인정받는 프로그래머였다. 

존 카멕은  처음으로 자신이 뭔가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자 

존 로메오가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선뜻 받아들인다.
당시 존 로메오는 소프트디스크(SOFTDISK)라는 회사에서 일했다. 

소프트 디스크는 매달 발행되는 잡지와 함께 번들로 각종 프로그램과 게임을 제공하는 회사였다. 

존 로메오는 여기서 게임 개발을 총책임지는 사람이었다. 

같이 일을 하게 된 존 카멕과 존 로메오는 호흡이 척척 맞았고 

많은 게임 프로그램들을 빠른 시간 안에 개발을 하여서 소프트 디스크에 큰 수익을 거두게 해주었다.

이들은 회사 내에 전용 사무실공간을 제공받았고 회사대표로부터도 많은 신임을 얻었다. 

특히 이들은 많은 인센티브를 받을 수가 있었는데 

그들은 그 돈으로 냉장고라던가 오디오, 쇼파 그리고 책상과 컴퓨터 등을 새로 구입하였다.

이들 물품으로 그들이 사용하는 사무실은 소프트 디스크의 다른 일반 사무실과 확연히 달랐고

회사의 다른 팀으로부터 많은 질투와 질시의 대상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와 존 로메오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소프트 디스크를 먹여 살리는 것도 바로 

그와 존로메오가 이끄는 게임개발팀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에게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차에 존 카멕이 장난으로 횡스크롤 액션 게임을 만들면서 이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존 카멕은 주말을 이용해서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게임인 슈퍼마리오 브라더스3를 그대로 컴퓨터 게임으로 구현했던 것이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지만 

이는 당시 컴퓨터 하드웨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획기적인 그래픽 기술을 선보인 게임이었다. 

존 로메오는 즉시 그 게임의 가능성을 알아챘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을 비밀리에 규합해서 그 게임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닌텐도에게 게임을 보여줘서 

당시 전세계적인 히트를 거두고 있던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를 

컴퓨터로 컨버전해 주겠다는 제의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주말을 이용해서 게임을 개발했고 회사 몰래 미국의 닌텐도 지사로 게임을 보냈다. 

하지만 닌텐도로 부터 온 답장은 실망스러웠다. 

자신들은 개인용 컴퓨터를 위해서 게임을 개발하지 않고 

오직 가정용 게임기에만 게임을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존 로메오는 그 게임을 그냥 사장 시키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그래서 평소 자신을 스카우트 하려고 비밀리에 접근하던 회사인 

아포지(APPOGEE)사에 게임을 한번 보여줬다. 

아포지사는 이미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게임을 정식 포장해서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라 

인터넷으로 게임을 배포해서 게임을 판매하는 쉐어웨어 업체였다.

아포지사는 존 로메오가 보여준 게임을 보고 일종의 충격을 맛봤다고 한다. 

그들의 앞선 기술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고 성공을 확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비밀리에 개발했던 게임이 바로 나중에 큰 히트를 치는 코맨더 킨이다.  

슈퍼 마리오3의 횡스크롤 액션 게임인 코맨더 킨은 

인터넷에 업로드가 되자 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불과 3%의 사용자만이 코맨더 킨의 게임에 돈을 지불하였지만 

그들은 무려 15만 달러라는 돈을 몇 달 만에 벌어들인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15만 달러라는 금액은 

그들이 소프트 디스크에서 독립해서 회사를 창업할 수는 있는 정도의 자금이었다. 

소프트 디스크사의 게임 개발 팀장이었던 존 로메오는 

존카멕 외에 다른 개발자들인 탐홀, 애드리안 카멕 등을 모아 두고서 게임 개발사를 창업하자고 제의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소프트 디스크에서 그들을 회사에서 호락호락 내보낼 리가 없었다. 

회사의 사장은 그들이 유능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발 회사에서 나가지 말아달라고 통사정 하였다. 

결국 존로메오와 존 카멕은 

소프트 디스크에 독점적으로 몇 개의 게임을 개발해준다는 조건으로 회사를 나올 수 있었다. 

이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세운 회사가 

이제는 전세계 게임 마니아들에게 최고의 게임 개발사로 유명한 Id 소프트 웨어다.

 

 

돈이 넉넉하지 못했던 그들은 회사를 나온 이후 한적한 시외 외곽에서 겨우 작은 사무실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Id 소프트웨어 역사상 가장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그들은 지금도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할 정도로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 갔다. 

회사의 창업 멤버들은 모두 던전앤 드래곤스의 마니아들 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틈날 때 마다 피자를 시켜놓고서 던전앤 드래곤스를 했는데 

서로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그 재미가 색달랐다고 한다.

 
*게임회사 이름 Id 라는 말은 Ideas from the Deep이라는 단어의 약자이다.


 


둠의 아버지 존 카멕 (4) 울펜스타인 3D를 개발하다.


처음 Id 소프트웨어를 창업한 그들은 안정적인 수익을 거두기 위해서 

당시 인기 게임이었던 코맨더 킨 시리즈를 6탄까지 만들었다. 

한편 존 카멕은 오래 전부터 3D 그래픽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감이 부족한 2D액션게임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고 뭔가 변화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고안한 것은 3D기술을 게임에 구현하자는 것이었다.

리더인 존 로메오도 그의 생각에 동의하였고

2D 액션게임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기 위한 게임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자고 하였다.

그것이 바로 1991년도에 발매된 호버탱크 원(Hover Tank One)과 카타콤3D(Catacomb 3D)였다.

코맨더 킨에서부터 파트너 관계를 맺고 유통을 책임졌던 APOGEE사의 CEO인 스캇 밀러는

그 게임을 보는 순간 그것이 새로운 장르의 탄생을 알리는 전주곡이라고 확신했지만

당초에 시장에서 성공하리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그러나 이 두 개의 게임을 개발하면서 존 카멕의 프로그래밍 실력은 일취월장했으며 

1인칭 슈팅 게임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집대성 해서 다시 한번 1인칭 슈팅 게임을 개발하려 하였다. 

물론 그의 생각에 모든 팀원들도 동의를 하였다.

기존 게임의 실패는 조악한 그래픽과 기획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그들은 

뭔가 게임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세계관을 창조하기로 했다. 

그래서 처음은 생체실험을 하는 연구소에서 게임유저가 탈출하는 게임으로 설정을 하였다. 

하지만 존 로메오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 마침 존 로메오의 마음속에 스쳐간 생각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1981년에 발매된 게임인 울펜슈타인 성이다. 

이 게임은 

나치의 본거지인 울펜슈타인 성에 침투해서 비밀무기와 서류들을 빼오는 2D 방식의 액션게임이었다. 

당시 수석 게임 기획자였던 존 로메오는 

2D 게임인 울펜슈타인 성의 세계관을 계승해서 3D 게임으로 리메이크 할 것을 결심한다.

울펜슈타인 성을 개발했던 무스 소프트웨어(Muse SoftWar)는 

이미 회사가 부도가 난 상태였기 때문에 오히려 손쉽게 게임의 판권을 구입할 수 있었다.
게임 개발이 본격화 하게 되자 

Id 소프트웨어의 모든 직원들은 지금까지 와는 차원이 다른 게임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게임을 대형 게임 개발사에 손쉽게 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존 로메오가 당시에 가장 큰 게임 유통업체중 하나였던 시에라 온라인에 게임을 봐달라고 연락을 주자 

회사의 CEO인 켄 윌리암스가 그의 사무실에 몸소 찾아왔다.

켄 윌리암스를 따라온 직원들은 존카멕의 게임을 보자 

기술수준에 너무나 놀라워했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CEO인 켄 윌리암스는 이미 많은 회사와 계약을 해본 협상의 전문가였다.


그는 아무런 표정도 나타내지 않으며 울펜슈타인 3D를 플레이 했다. 

게임을 다 끝낸후 그가 제시한 계약금은 고작 2만 5천 달러였다. 

Id 소프트웨어의 모든 직원들은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존 로메오는 할 수없이 다시 예전의 게임을 유통해주었던 아포지사에 연락을 해서 게임을 보여줬다.

스캇 밀러는 울펜슈타인 3D를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원하는 돈 뿐만 아니라 사무실과 기타 경비 등을 제공할 테니 제발 계약을 해달라고 졸랐다. 

결국 Id 소프트웨어는 아포지사와 계약을 해서 1992년도에 게임을 발매한다.

울펜슈타인 3D는 

직원들이 업무시간에 게임만 한다는 회사 사장들의 하소연이 쏟아질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다. 

이 당시 마이크로 소프트의 직원이라고 밝힌 어떤 사람은 

회사사람들이 휴식시간에 하도 울펜 슈타인 3D 게임을 즐겨서 억지로 게임 사운드를 들어야 했는데 

나중에는 환청까지 들렸다고 말할 정도였다.

울펜 슈타인 3D의 성공 이후에도 존 카멕의 열정에는 휴식이 없었다. 

그는 더욱 강력한 기술로 전세계 게임팬들에게 충격을 선사하니 그것이 바로 둠이었다. 

둠의 성공으로 Id 소프트웨어는 최고의 게임 개발사로 인정을 받았으며 

존 카멕 자신은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인 페라리 자동차를 구입할 정도로 큰 부자가 되었다.  

둠은 영화 에일리언과 이블데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리고 둠이라는 제목은 

컬러 어브 머니에서 톰 크루즈가 하는 대사를 듣고서 그 어감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선택했다.

둠이라는 게임은 오직 존 카멕의 기술로 이루어진 게임이다. 

게임 개발 자체가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존 카멕의 프로그래밍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면서고 시작된 게임이다.

 

존 카멕이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원거리에 떨어진 사람도 같이 게임을 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게 되자 바로

둠에서 이 기술을 채용해서 데스매치라는 게임 시스템을 추가하였다.

물론 4명까지 동시에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데스매치는 둠의 가장 큰 성공요인이 되었다.

둠의 성공 이후 세계 게임계는 Id 소프트웨어를 주목했고 회사의 창업자들은 모두 백만장자가 됐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반바지에 긴 머리를 하고 피자와 콜라를 먹으면서 게임개발에 몰두했다.

존 카멕의 경우만 해도 10만달러나 되는 거액을 감옥에 있는 친구에게 보내고

나머지 돈은 각종 자선단체에 기부할 정도로 돈에 무관심했다.

그들의 그런 자유분방한 생활이 그들을 더욱 위대한 영웅으로 부각시키며 그들은 락스타와 같은 대접을 받았다. 

Id 소프트웨어에서의 회사 분위기도 역시 최고조였다. 

이들은 매일 둠의 데스매치를 하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퀘이크 제작이 본격화 되면서 팀 내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존 로메오는 비록 프로그래머 출신이지만 회사의 수석 디자이너였다. 

그는 게임의 재미라는 측면에서 개발에 신경 썼다. 

그에 반해서 존 카멕은 오직 기술에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퀘이크를 100% 3D 게임으로 제작할 것을 결심한 존 카멕은 

개인생활자체가 없고 오직 게임 개발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새벽4시까지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세계최고의 기술을 선보이기 위해서 노력했던 것이다.

하지만 존 로메오는 재미있는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회사에서도 게임을 즐기고 각종 여행도 다니면서 인생을 즐겼다. 

또한 원래 쇼맨쉽이 강했던 그는 언론사의 취재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러자 존 카멕은 게임 개발보다는 화려한 스폿라이트에 연연해 하는 존 로메오가 조금씩 못마땅하였다. 

또한 게임에 대한 견해차도 서서히 켜져 갔다. 

존 카멕은 어렵게 3D 기술을 구현 하고 있는데 존 로메오는 항상 그 이상의 것을 요구했다.


존 카멕은 무엇보다도 속도에 연연했다. 

그래서 게임 진행중에 속도가 떨어지는 것은 참지 못하였다. 

이에 반해서 존 로메오는 화면의 화려함을 추구하였다. 

게임 화면 이곳 저곳에 많은 것을 꾸며 넣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러한 요구는 속도를 떨어뜨리는 주범이었다.

존 카멕은 기술적인 이유를 들어서 거부를 하면 

존 로메오는 게임 디자인은 법이기 때문에 프로그래머가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주의였다. 

그러나 존 카멕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게임 프로그래밍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갈등이 심화되던 차에 존 카멕은 

아마추어 개발자인 팀(Tim)의 레벨 디자인(적의 위치를설정하거나 맵의 모양을 결정하는 일)실력이 

존 로메오 보다 뛰어나다는 말을 하고야 만다. 

이는 존 로메오에게 큰 모욕이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Id 소프트웨어의 공동 창업자들은 큰 딜레마에 빠진다. 

실질적인 리더인 존 로메오가 회사를 나가야 하느냐 

아니면 존 카멕이 회사를 나가야 하느냐에 대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누가 존 카멕을 해고 할 수 있겠는가? 

Id 소프트웨어는 바로 존 카멕의 프로그래밍 기술에 바탕을 두고 있는 회사였다. 

존 로메오 같은 기획자는 세상에 많이 있지만 존 카멕은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결국 97년 퀘이크2가 발매 된 후에 존 로메오는 존카멕과의 파워싸움에 밀려서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존 카멕은 존 로메오가 떠난 후에 사실상 Id 소프트웨어의 오너가 되어서 회사의 모든 것을 책임지게 되었다. 

그리고 둠과 퀘이크의 후속작을 연속적으로 발매하며 세계 최첨단의 게임 기술을 선보여서 

그의 명성을 더욱 드높였다. 

존 카멕은 게임 기술의 마에스트로, 게임 프로그래밍의 모차르트, 

세계 최고의 게임 개발 테크니션이라는 극찬속에서 현재 퀘이크4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퀘이크 4의 3D 게임엔진에서는 실사영화 수준의 그래픽을 구현하겠다면서 모든 열정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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