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 - 광기의 시대와 역사에 휘말린 초라한 지도자의 초상 (호사카 마사야스, 2012)

시나리오/역사|2022. 6. 30. 09:00

책소개
일본을 대표하는 논픽션 작가 호사카 마사야스의 기념비적 저작. 국내 첫 소개되는 작가 호사카 마사야스는 다치바나 다카시, 사노 신이치 등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논픽션 저널리스트로 손꼽힌다. 일본 근대사, 특히 쇼와사의 실증적 연구에 주력해 다양한 자료 조사와 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150여권의 저작물을 출간한 독보적인 작가다.

33세에 편집자 생활을 접고, 6년에 걸쳐 도조 히데키 시대의 자료와 관련자를 수백명을 취재해 그저 '혐오감을 유발하는 A급 전범' 정도의 이미지로만 남아있던 도조 히데키의 실체를 드러낸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는 1979년 초판 출간 이래 30년간 지속적으로 판매되고 있는 그의 출세작이다.

도조 히데키는 군인 출신 정치가로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범으로 꼽힌다. 한때 도조는 대일본제국의 광영을 만천하에 떨칠 영웅이라며 일본인의 추앙을 받았지만, 연합군에 패전한 후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몰락했다. 일본의 전후세대에게 '역겨운 멸시의 대상'으로 평가되어 왔고, 그의 행적은 일본 근대사의 치부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호사카 마사야스는 바로 이 지점에서 '도조 히데키를 불편하고 역겨운 대상으로만 남겨두어도 괜찮은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도조 개인에 대한 매도는 역사적 지식에 근거하지 않고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과 일본은 물론 아시아 민중을 전쟁과 죽음으로 몰아넣은 근대 일본 정치의 한계를 도조 히데키나 몇몇 전범들에게만 뒤집어씌우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저자는 바로 이런 점에 문제의식을 느껴 이 책을 통해 도조 히데키를 '보통명사'에서 '고유명사'로 되돌려놓고자 했다.


목차
저자 서문_005
옮긴이의 말_012

제1장 충실한 신봉자

아버지의 유산
서리 내린 밤의 그림자_25 | 아버지 히데노리의 경력_30 | 조슈벌에 대한 저항_37
러일전쟁 출정_46 |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의도_54 | 육군대학교 합격_63

군인으로 자립하다
「성규유집」, 그 아버지에 그 아들_69 | 야마시타 도모유키와 교우하다_75
바덴바덴의 밀약_82 | 우가키 군축에 저항하다_88 | ‘잇세키카이’의 탄생_96

힘을 얻는 고급장교
제1연대장 시절_103 | 취업알선위원회_110 | 3월 사건 이후_118
만주사변의 수습_124 | 황도파와 대립하다_133 | 제24여단장으로_140
나가타 군무국장의 참살_149

역풍에 맞서서
도조를 매장하라_157 | 2·26 사건, 그 후_165 | 제출하지 못한 사직원_171
도조병단의 이면에서_176 | 과감한 관동군 참모장_183 | 굴욕으로부터 탈출하다_193

제2장 낙백落魄 그리고 승룡承龍

실천하는 사람의 저주
참모차장과 육군차관의 충돌_201 | 부재증명의 나날들_207
‘물장사’는 딱 질색이다_214 | 육군상 도조와 외무상 마쓰오카 요스케의 밀월_219
육군성과 참모본부의 졸렬한 미국관_228 | 이시와라 간지와 충돌하다_234

투시력이 없는 집단
일미교섭, 오해의 시작_241 | 마쓰오카 구상의 붕괴_249
독일군의 소련 침공_259 | 자원부족론의 대두_267

그대는 더 이상 말하지 마라
환상 속의 일미 정상회담_276 | 성려에 떠는 어전회의_283
무너진 고노에의 기대_288 | ‘중국 철병’이 열쇠로……_294 | 도조 내각의 탄생_304

통곡하는 수상
격렬한 연락회의_318 | ‘을안’을 둘러싼 논쟁_327 | 독재로 기울다_334
들끓는 대미 강경 여론_339 | 일미 개전에 대한 공포_346

제3장 패배의 궤적

싸움의 시작
홍수를 이루는 도조 찬가_363 | 거만해지는 지도자_373 | 지식인과 대동아공영권_378
둘리틀 폭격의 파문_386

쾌속 진격에서 정체 상태로
도조 시대의 제국 의회_400 | 과달카날 공방의 이면_409
비방과 중상의 소용돌이_419 | 옥쇄의 길_426 | 억지스런 의원 설득_432
야마모토 고주로쿠의 죽음_442 | 찬드라 보스와 만나다_448

나에 대한 반역은 폐하에 대한 반역이다
승리란 밸런스의 문제_458 | 절대국방권 구상_466 | 나카노 세이고의 자결_473
허망한 정신론으로 기울다_480 | 사술詐術을 이용한 참모총장 겸임_486
피로에 지친 국민_496 | 포위되는 도조 인맥_502

무대에서 사라지는 날
‘아호’ 작전의 실패_513 | 임박한 독일의 패전_521 | 중신들의 도각 공작_533
육군성과 참모본부에서 사라진 도조 색채_543

제4장 세뇌된 복역자

승조필근
4월 25일까지, 인내의 시간_555 | 도조를 배척하는 움직임_564
패전의 날_573 | 도조의 자살 미수_585

전쟁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질 것
민주주의에 감탄하다_596 | 도조 조서의 내막_605
피고로서의 도조_615 | 진술서의 모두冒頭_626

상징으로서의 죽음
키난 검사의 초조감_636 | 도조의 개인 반증_643 | 교수형Death By Hanging _651
종교적 경지에 도달하다_660 | ‘나’에게 침잠하다_668
도조 히데키의 두 번째 죽음_680

참고문헌 _687
저자 후기 _697
문고판 저자 후기 _700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본을 대표하는 논픽션 작가 호사카 마사야스의 기념비적 저작, 국내 첫소개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의 저자 호사카 마사야스는 다치바나 다카시, 사노 신이치 등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논픽션 저널리스트로 손꼽힌다. 일본 근대사, 특히 쇼와사의 실증적 연구에 주력해 다양한 자료 조사와 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150여권의 저작물을 출간한 독보적인 작가다. 33세에 편집자 생활을 접고, 6년에 걸쳐 도조 히데키 시대의 자료와 관련자를 수백명을 취재해 그저 ‘혐오감을 유발하는 A급 전범’ 정도의 이미지로만 남아있던 도조 히데키의 실체를 드러낸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는 1979년 초판 출간 이래 30년간 지속적으로 판매되고 있는 그의 출세작이다. 초판은 <전통과 현대>에서, 문고판은 문예춘추에서 나았고, 2005년 다시 치쿠마서방에서 문고판이 재출간된 현대의 고전이기도 하다. 호사카 마사야스의 책 중 한국에 소개된 적은 한번도 없었고, 이번 페이퍼로드에서 처음으로 국민대 정선태 교수의 완역으로 최초로 출간한다.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1884~1948)는 전형적인 군인 출신 정치가로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범으로 꼽힌다. 한때 도조는 대일본제국의 광영을 만천하에 떨칠 영웅이라며 일본인의 추앙을 받았지만, 연합군에 패전한 후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몰락했다. 일본의 전후세대에게 그는 ‘역겨운 멸시의 대상’으로 평가되어 왔고, 그의 행적은 일본 근대사의 치부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호사카 마사야스는 바로 이 지점에서 ‘도조 히데키를 불편하고 역겨운 대상으로만 남겨두어도 괜찮은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도조 개인에 대한 매도는 역사적 지식에 근거하지 않고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과 일본은 물론 아시아 민중을 전쟁과 죽음으로 몰아넣은 근대 일본 정치의 한계를 도조 히데키나 몇몇 전범들에게만 뒤집어씌우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저자는 바로 이런 점에 문제의식을 느껴<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 를 통해 도조 히데키를 ‘보통명사’에서 ‘고유명사’로 되돌려놓고자 했다.

“이 군사 지도자는 정치과 군사의 관계에 대해 무지했고 국제법규에도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군인이야말로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생각한 그는 국가를 병영으로 바꾸고 국민을 군인화하는 것을 자신의 신념으로 여겼다. 그런 그는 적어도 20세기 전반의 각국 지도자들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인물이었다.
왜 이러한 지도자가 시대와 역사를 움직였던 것일까. 그것이 바로 이 나라가 가장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문제다.”
-저자 서문 중에서

도조 히데키는 육군중앙유년학교, 육군사관학교, 육군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의 요직을 두루 거쳐 수상에까지 오른 전형적인 ‘정치군인’이었다. 그의 화려한 이력은 1942년 수상, 육군상, 육군참모총장을 겸직하면서 절정에 이른다. 1937년 관동군 참모장으로 근무하면서 중일전쟁(지나사변)을 직접 경험한 그는 1941년 12월 진주만 폭격 이후 확대된 전쟁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전쟁의 폭풍우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패전 후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서 교수형 판결을 받고 1948년 12월 처형된다.
도조 히데키의 삶은 근대 일본의 전개 과정과 대체로 일치한다. 메이지 유신(1868년) 이후 서구를 모방해 근대화에 박차를 가한 일본을 일약 아시아의 강국을 넘어 세계의 열강으로 키운 힘은 전쟁이었다. 메이지 유신을 전후한 시기의 크고 작은 전쟁에서 시작하여 청일전쟁·러일전쟁·제1차 세계대전·만주사변·중일전쟁·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전쟁들은 근대 일본을 형성한 동력이 무엇이었는지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전쟁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국가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집단은 군인일 수밖에 없다. 육군사관학교와 육군대학교를 졸업한 후 군부의 지도자가 되는 길은 곧 일본의 지도자가 되는 길이기도 했다. 패전 이전 수상을 지낸 사람 중 군인 출신이 적지 않다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이러한 역사적 토양이 키운 도조 히데키는 근대 일본의 군사적·정치적 성격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저자 호사카 마사야스는 도조 히데키를 통해 근대 일본의 실상에 다가가고 싶었다고 말하거니와, 사실 총력전 시대를 주도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도조를 문제 삼는 것은 근대 일본의 정신사를 직시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는 근대 일본의 역사뿐만 아니라 ‘대일본제국’의 제국주의적 폭력에 고통을 겪어야 했던 동아시아의 역사를 조명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불안한 일본, 왜곡되는 역사

패전 후 일본 국민들은 도조 히데키를 비난하면 면죄부라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고 있다. 도조를 재평가한다는 미명아래 그의 범죄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도조 히데키를 옹호하는 세력들은 서양의 침탈 아래 신음하는 아시아 민족들을 해방하고 궁극적으로 아시아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대동아공영권’을 실현하기 위해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의 이면에는 일본 국민이 안고 있는 불안을 이용해 군사대국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 일본의 아시아 지배 욕망, 나아가 세계 지배 욕망이 또다시 꿈틀댈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조부는 평화를 사랑하셨으며 친절한 성품을 지니신 분이었다. 외국의 침략자들로부터 자신의 조국을 지킨 것이다. 그분이 저지른 죄라면 조국을 사랑했다는 죄밖에 없다.”
-도조 유코의 인터뷰 중에서

도조 히데키의 손녀인 도조 유코는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써서 일본의 전쟁 논리를 합리화하는 데 앞장섰다. 또한 2007년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야스쿠니신사의 전범 위패를 분사하자고 주장하는 자민당 의원들을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니었다면 도조 유코는 과연 도조 히데키를 이렇듯 열렬하게 옹호할 수 있었을까. 이러한 도조 유코의 주장에 점점 힘이 실리고 있다는 것은 일본 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평화에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30여 년간의 한국 역시 군인 출신 대통령이 통치했다.
어떤 반동의 논리가 현실 속에 틈입해 들어올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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