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 리포트 (필립 K. 딕, 2002)

시나리오/SF|2022. 11. 11. 10:00

알라딘 리뷰
"영화 보기 전에 원작소설 읽기"
승자 없는 전쟁과 그로 인해 황폐해진 사회, 전체주의의 위협과 기계에 의한 통제가 이루어지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상. 거대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존재 증명을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과 사람보다 더 사람같은 복제인간...

영화 '토탈리콜'과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자로 더 잘 알려진 필립 K. 딕의 이번 단편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모두 8편의 작품이 담겨 있는데, 그중에서 표제작인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스필버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2002년 여름 국내 관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라고.

예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힘을 빌어 범죄를 저지를 사람들을 미리 잡아들이는 사회를 그린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미래에 대한 기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의 이야기인 '고소공포증에 시달리는 사나이', SF 소설가들을 예지자에 비유한 '물거미' 등, 장편보다는 중.단편이 장기인 작가답게, 하나하나의 작품 모두가 알차고 재미있다.

장르소설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미래사회와 인간에 대한 작가 특유의 어둡지만 날카로운 비전을 보여주는 책이다. SF 전문 번역가는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번역상태도 괜찮은 편.

* 필립 K. 딕 걸작선은 총 3권으로 기획되어 있다. 2권은 영화 '토탈 리콜'과 '스크리머스'의 원작이 수록된 <죽은 자가 무슨 말을>, 3권의 제목은 <사기꾼 로봇>(근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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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블 : 시스템의 실수로 인해 미래에서 한 수리공이 도착한다. 사람들의 못말리는 호기심이 화를 부르고, 듣기만 해도 끔찍한 미래상이 앞당겨지는 결말이 섬뜩하다.

고소공포증에 시달리는 사나이 : 미래에 있을 살인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정신상담을 받는데, 이 둘은 고향 친구 사이. 그들은 미래에 대한 기억으로 괴로워하지만, 앞일을 예측한다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라구요! : 내가 '인간'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화성으로 떠났던 여섯 명의 젊은이가 1년만에 지구로 돌아온다. 그들은 따뜻한 환영을 기대하지만, 기다리는 것은 사람들의 공포와 경악, 네이팜탄의 화염 뿐이다.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믿는 복제인간들의 슬픈 이야기가 악몽처럼 반복된다. '사기꾼 로봇'과 비슷한 이야기.

마이너리티 리포트 : 세 명의 예지자들의 예언에 의해 미래의 범죄자들을 미리 잡아들이는 사회. 범죄율은 제로에 가깝고 완벽한 질서가 유지되는듯 보인다. 그러나 세상에는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이 존재하기 마련. 또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다수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주인공에게 지금껏 신봉해온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것인가, 아니면 개인의 안전을 위해 시스템의 붕괴를 두고 볼 것인가 하는 존재론적 질문이 던져진다.

메이저 중의 메이저 제작진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원작소설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와 디테일을 보여줄 것이라 예상된다. 소설의 주인공 '앤더턴 국장'은 배가 나온 늙은 남자로 묘사되는데, 영화에서는 그 역할을 헐리우드의 대표적 미남 배우 톰 크루즈가 맡은 것이 단적인 예.

그러나 그러한 차이들에 화내지 말것. 모든 예술작품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지니며, 일단 세상에 던져진 이후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스필버그 감독이 K. 딕의 원작을 어떻게 읽어냈는지 살펴보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사실 SF 소설의 팬들은, 영화 덕분에 필립 K. 딕의 걸작선이 나오게 된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뻐하고 있을듯.

(+) 재미있는 팁 하나. 영화에서는 세 예지자의 이름이 바뀌어 나온다. '아서 (코난 도일)', '대쉴 (해미트)', '애거서 (크리스티)'. 한쪽 눈을 찡긋 감은 채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짓는 스필버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물거미 : 미래에서 20세기에 살았던 예지자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 사람을 파견한다. 그들이 찾는 예지자의 이름은 폴 앤더슨. 고개를 갸웃거릴 필요 없다. <타임 패트롤>을 쓴 그 '폴 앤더슨'이 맞으니까. 레이 브래드버리, A.E.반 보그트,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블록 등 이름만 대도 '아, 그 사람'하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SF 소설가들이 연달아 등장한다. 심지어 필립 K. 딕 자신의 이름도 살짝 언급된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SF 소설가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오마쥬다. 스스로를 가리켜 '예지자'라 칭하는 지은이의 재치와 애교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소설.

퍼키 팻의 전성시대 : 이 단편집의 중심을 관통하는 테마가 있다면, 바로 '전쟁 후의 삶'일 것이다. 화성 생명체와의 전쟁 이후 지구상에 살아남은 '행운아'들은 '퍼키 팻'이라 불리는 인형을 꾸미는데 집착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인형놀이를 통해 과거의 삶을 추억하며 그들에게 닥친 현실을 망각하고자 했던 어른들은, 인형들의 시간 역시 영원히 멈춰있을 수 없음을 깨닫고 경악한다.

완벽한 대통령 : 완벽한 인공로봇 40-D가 지배하는 세계. 갑작스런 기계 고장으로 대통령의 대역에 불과했던 한 늙은이가 잠시 권좌에 오르는 꿈에 부풀지만, 이내 좌절하고 만다. 기계에 의해 무기력하게 밀려나는 인간의 모습이 초라하고 서글프다.

그래, 블로벨이 되는 거야! : 블로벨이란 단세포 아메바에서 진화한 생물로, 토성의 타이탄 위성과 화성에 정착한 외계 생명체를 말한다. 블로벨과 인간의 전쟁 와중에 스파이로 파견됐던 사람들의 몸에 변이가 일어나고, 그들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소외와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다. 이종간의 교류와 소통이 완전히 어긋나버리는 결말의 아이러니가 우울하다. - 박하영(2002-07-04)


목차
1. 스위블
2. 고소공포증에 시달리는 사나이
3. 우리라구요!
4. 마이너리티 리포트
5. 물거미
6. 퍼키 팻의 전성 시대
7. 완벽한 대통령
8. 그래, 블로벨이 되는 거야!
옮기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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