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의 갈등 (폴 리쾨르, 2012)

시나리오/철학-교육|2022. 12. 23. 17:00

책소개
한길그레이트북스 120번째 저작.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가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새로운 인간 이해와 세계관을 제시한다. 데카르트, 베르그송, 마르셀, 메를로 퐁티로 이어지는 프랑스 철학의 맥을 계승하는 철학자로 불리는 폴 리쾨르는 파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였고 유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가브리엘 마르셀에게 철학과 신학을 배웠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가 독일군에 잡혀 스위스에서 5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였다. 당시 후설의 저서들을 탐독한 것이 계기가 되어 후설 연구가로도 알려졌다. 1950년 후설의 <현상학의 이념들>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프랑스에 소개하였다. 여기서 그는 현상학을 통하여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밝히고 그러한 유한성으로 초월적 존재인 신을 해명하려고 노력하였다.

리쾨르의 해석학은 여러 가지 학문을 종합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기 이해를 향해서 가는 길에 여러 가지 인간 이해가 끼어든다. 특별히 의식철학을 수정하는 이론들을 종합한다. 그래서 구조주의도 들어오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중요하고, 칸트의 변증론과 종교론이 중요하고, 헤겔의 정신현상학도 해석학 안에서 제자리를 찾는다.

절충하지 않고 종합하는 것은, 그가 볼 때 철학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인류의 사상의 역사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의미를 찾던 노력들, 그것들이 주체를 세우고 존재의 깊이를 찾는 데 이바지하도록 이끈다. <해석의 갈등>이라는 책 제목도 그것을 뜻한다.


목차
해석을 통한 자기 이해 | 양명수
서론: 실존과 해석학
1. 해석학의 기원
2. 현상학에 접목된 해석학
3. 의미론 차원
4. 반성 차원
5. 실존 단계

제1장 해석학과 구조주의
1. 구조와 해석학
2. 겹뜻의 문제: 해석학의 문제 그리고 의미론의 문제
3. 구조·낱말·사건

제2장 해석학과 정신분석학
1. 의식과 무의식
2. 정신분석학과 현대문화
3. 철학으로 본 프로이트
4. 해석에서 기술과 반(反)기술
5. 예술과 프로이트의 체계

제3장 해석학과 현상학
1. 장 나베르의 행위와 기호
2. 하이데거와 주체 물음
3. 주체 물음: 기호론의 도전

제4장 악의 상징 해석
1. 원죄: 그 의미를 생각함
2. 상징 해석과 철학적 반성 1
3. 상징 해석과 철학적 반성 2
4. 정죄를 비신화화함
5. 형벌 신화를 해석함

제5장 종교와 믿음
1. 불트만 서론
2. 희망에서 오는 자유
3. 허물, 윤리 그리고 종교
4. 종교·무신론·믿음
5. 아버지: 환상에서 상징으로
참고문헌
원문출처
폴 리쾨르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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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해석학의 사상은 멀리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학(學)으로서의 체계화는 19세기에 와서 뵈크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 동안 우화해석의 문제를 중심으로 한 고대의 해석학에서 중세에 조직화된 교부신학적 해석학을 거쳐, 성서나 고전의 올바른 해석을 중시하는 근대의 신학적·인문주의적 해석학이 성립되었고, 뵈크, 슐레겔, 슐라이어마허 등에 의해 이해와 해석의 보편적 이론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해석학은 그대로는 반드시 철학의 문제가 될 수 없음에도 슐라이어마허와 뵈크의 영향을 받은 딜타이에 의해 역사적 정신과학의 방법론적 기초로서 확립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다시 후설 현상학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인 존재론을 구축한 하이데거는 그의 존재론의 방법을 ‘해석학적 현상학’이라 부르고, 해석학을 인간의 역사적 세계를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는 딜타이의 방법에서 존재의 의미를 실존론적으로 해석하는 철학 자체의 방법으로 심화시켰다.

 

‘선(先) 이해’를 적극적으로 해석의 전제로 인정하는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순환’ 사상을 가다머는 ‘전통’의 적극적 이해에 적용해 일반적인 해석학의 이론을 확립하였다. 그 후 아펠, 리쾨르 등의 활동에 힘입은 해석학은 고전학·정신분석학·교육학·법학·신학 등 넓은 영역에 영향을 주는 동시에 분석철학이나 이데올로기 비판과의 대결을 거쳐 역사와 실존 양면에 걸쳐 언어를 넓고 깊게 묻는 현대의 가장 새로운 철학이 되었다.

프랑스 철학의 맥을 계승하는 철학자
데카르트, 베르그송, 마르셀, 메를로 퐁티로 이어지는 프랑스 철학의 맥을 계승하는 철학자로 불리는 폴 리쾨르는 파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였고 유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가브리엘 마르셀에게 철학과 신학을 배웠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가 독일군에 잡혀 스위스에서 5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였다. 당시 후설의 저서들을 탐독한 것이 계기가 되어 후설 연구가로도 알려졌다. 1950년 후설의 『현상학의 이념들』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프랑스에 소개하였다. 여기서 그는 현상학을 통하여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밝히고 그러한 유한성으로 초월적 존재인 신을 해명하려고 노력하였다.

 

1948∼56년 스트라스부르 대학, 1956년부터는 파리 대학에서 철학교수로 재직하였다. 이 기간 동안 『의지적인 것과 비의지적인 것』(1950에서 의지에 관한 현상학적 기술을, 『유한성과 죄악 가능성』(1960)에서 종교적인 상징에 대한 해석학을, 『해석에 관하여』(1965)에서 정신분석학적 상징에 관한 해석학을 개진하는 등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였다. 1966년 그리스도교 좌파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하여 낭트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1968년 학생혁명이 좌절되자 급진적인 학생들과 지식인들로부터 외면당하여 1970년 해임되었다. 그 뒤 시카고 대학과 파리 대학을 중심으로 강의와 저술활동을 하였다.

주체를 세우고 존재의 깊이를 찾는 학문
리쾨르의 해석학은 여러 가지 학문을 종합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기 이해를 향해서 가는 길에 여러 가지 인간 이해가 끼어든다. 특별히 의식철학을 수정하는 이론들을 종합한다. 그래서 구조주의도 들어오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중요하고, 칸트의 변증론과 종교론이 중요하고, 헤겔의 정신현상학도 해석학 안에서 제자리를 찾는다. 절충하지 않고 종합하는 것은, 그가 볼 때 철학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인류의 사상의 역사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의미를 찾던 노력들, 그것들이 주체를 세우고 존재의 깊이를 찾는 데 이바지하도록 이끈다. 『해석의 갈등』이라는 책 제목도 그것을 뜻한다. 여러 가지 학문이 삶을 놓고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있으며 갈등을 빚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해석의 갈등은 여러 가지 해석들의 갈등을 뜻한다. 프로이트가 꿈을 해석하면서 사람을 이해한 것이 다르고, 헤겔이 형태의 발전을 놓고 사람을 이해한 것이 다르다. 종교현상학자들이 이해한 사람이 다르고 신학에서 본 사람이 다르다. 정신분석학과 정신현상학과 종교현상학 그리고 신학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삶 전체를 해석하려고 했다. 그 학문들은 자기의 영역을 제한하지 않고 삶 전체를 자신의 눈으로 보고 설명했다. 원래 언어학에서 출발한 구조주의도, 삶을 구조주의 시각에서 이해하는 철학이 된다. 그래서 다른 해석들과 갈등을 일으킨다.

 

그러나 리쾨르는 그 점을 중요하게 본다. 그것들은 나름대로 독특한 해석 방법을 가지고 있으며 삶 전체를 꿰뚫어볼 수 있는 시각을 지니고 있다. 다만 차원이 다를 뿐이다. 여러 가지 해석은 같은 차원에서 서로 부딪치는 것이 아니다. 승자와 패자가 가려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차원에서 삶을 이해하는 노력이요, 철학은 그러한 노력들을 이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리쾨르의 해석학이 전개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해석학이란 여러 가지 철학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철학 그 자체가 된다.

 

철학이란 결국 인간의 자기 이해이다. 사람이 삶을 이해하고 자기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철학이다. 그런데 리쾨르가 볼 때 인간의 자기 이해는 해석의 산물이다. 자기 이해는, 내 속에서 직접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해놓은 말을 해석하면서 생긴다. 작품과 기호를 거친다. 정신분석학과 정신현상학 그리고 종교현상학과 신학이 모두 인간의 자기 이해를 위한 노력이고, 특별히 인간의 직접 의식을 부정하는 것이라면, 그것들은 모두 저마다의 해석학 영역을 이룩하고 있는 셈이다. 겉으로는 해석학과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정신현상학도, 인간의 자의식이 직접 의식이 아니기 때문에 해석학으로 들어온다.

해석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안다
리쾨르의 해석학이 의도하는 것이 있다. 모든 철학이 그렇듯이 리쾨르의 해석학에도 어떤 세계관과 인간관이 깔려 있다. 리쾨르는 여러 가지 해석을 하나의 해석학으로 묶으면서 새로운 인간 이해를 내놓으려는 것이다. 하나의 해석학 안에서 구조주의에 그 나름의 역할을 인정하고, 정신분석학에 그 나름의 역할을 인정하고, 정신현상학에도 나름의 역할을 인정한다. 구조주의는 수면 아래에서 일하고, 정신분석학과 정신현상학은 수면 위에서 긴장을 이루며 서로 밀고 당기며 새로운 인간 이해를 이룩한다. 그리고 리쾨르는 다시 거룩의 해석학으로 저 하늘을 향해 실존의 가슴을 연다. 거룩의 해석학에서는 신학과 칸트의 근본악이 길을 제시한다. 그렇게 해서 해석학은 완전하게 상징철학의 모습을 띠게 된다.

 

리쾨르의 해석학이 이룩하는 새로운 인간 이해는 새로운 주체를 정립한다. 우리가 리쾨르 해석학에 관심을 기울이는 까닭도 결국은 주체 문제 때문이다. 새로운 세기에 주체를 말하기 위한 하나의 모델을 우리는 리쾨르에게서 본다. 주체를 말하는 것은 자유를 찾는 길이다. 아무리 존재론을 말하고 자연주의가 득세한다고 해도 주체를 말하지 않고 자유를 찾을 수는 없다. 자유는 구원이요, 인간 해방이다. 철학이 인간의 자기 이해라고 했을 때, 자기 이해 속에는 주체를 세우려는 노력과 욕망이 들어 있다. 이해는 그런 노력과 욕망의 산물이다. 자연이나 다른 사람에 의해 휘둘려지지 않는 자아를 확립하려는 노력이 사상의 역사이다.

 

리쾨르의 해석학은 이 시대에 주체를 말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교만한 주체, 자신만만한 주체는 아니다. 코기토는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존재의 깊이를 잃고 해방자의 역할을 하기 어렵게 되었다. 코기토의 확실성은 인정하지만 내용이 없다. 데카르트처럼 “나는 나다”(je suis ce que je suis)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해석학은 코기토에 대립하는 철학의 모습을 띤다. 근대를 수정하는 것이다.

 

해석학 역시 인간의 자기 이해 문제를 다루고 주체를 말한다. 그러나 코기토와 다른 방식으로 주체를 말한다. 자기 이해는 자기로부터 자기에 의해 직접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에둘러 일어난다. 내가 누군지 직접 알 수 없다. 텍스트를 해석하면서 안다. 해석을 통해 내가 누군지 안다. 그것은 기초존재론의 문제이기도 하다. 남의 말을 풀면서 존재를 향한 개방의 길이 열린다. 이해는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현현의 문제이다. 이해와 믿음의 ‘해석학적 순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리쾨르의 해석학은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품는다. 모든 이해의 방법들을 중시하되, 그것들을 이해의 존재론의 영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리쾨르는 ‘반성’이라는 단어를 끝까지 살렸다. 그만큼 근대정신의 공헌을 인정하려는 것이다. 다만 데카르트나 피히테와 달리 구체적인 반성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후설의 현상학을 의미 이론으로 보고, 그가 말하는 환원을 언어가 탄생하는 것으로 본다. 언어가 탄생한다면 그다음에는 상징과 해석의 문제가 발생한다. 반성철학에서 직접의식의 전통을 제거하고 해석을 통한 자기 이해의 전통을 세우려는 것이다.

 

해석학은 의미 이론을 통해 주체철학을 수정하려는 것으로서, 현상학에 접붙여지면서 동시에 현상학을 바꾼다. 해석학이 구체적 반성을 하는 언어철학이 되면서 반성철학과 의식철학은 길을 달리 간다. 직접의식을 이야기하는 의식철학은 더 이상 옳지 않다. 의식은 과제이다. 그것은 프로이트에서 분명해졌다. 현재의 의식은 환상이요, 위장이요, 증후이다. 의식은 해석하는 주체가 아니라 해석되어야 한다. 해석되면서 자기이해에 도달하고 온전한 의식을 얻는다. 인간은 자신만만한 주체가 아니라 치유되어야 할 존재인 것이다. 해석되면서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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