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역사 - 베드로부터 베네딕토 16세까지 (호르스트 푸어만, 2013)

책소개
교회의 관점이 아닌 역사가의 관점으로 서술한 2005년까지의 교황사. 총 2부로 구성되었다. 제1부는 교황과 교황권에 대한 기본 지식들을 설명하고 있다. 베드로의 무덤, 교황청의 재정적 기반, 교황 선출의 역사, 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 비밀회의인 콘클라베 제도의 등장, 오늘날의 교황 선출 방식 등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제1부의 내용은 지은이가 전문 서적과 학술지에 게재했던 기존의 논문들을 일반 독자층을 대상으로 쉽게 풀어서 서술했다.

이어 제2부는 교황들의 역사를 다룬다. 2,000년 역사 가운데 대표적으로 꼽을 만한 교황과 사건들을 선택하여 서술했다. 여기에서 지은이는 제도보다는 사람에 더 치중하여, 교황과 그를 둘러싼 당대인들의 다양한 생각과 고민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거기에는 바티칸의 영토와 군사력을 강화하려 했던 교황들이 나오고,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부흥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교황들, 자기 가문의 세속적 부귀영화에만 힘쓰며 매관매직도 서슴지 않았던 교황들, 보기 드물게 수도사적 청빈함을 추구했으나 도리어 경멸당했던 교황들, 심지어 전설로만 전해지는 여성 교황 요한나에 관한 이야기들까지 들어 있다.


목차
머리말
들어가는 말
교황권의 지속성
교회사와 교황사란 무엇인가?
서술 방식: 교황권과 교황들

제1부 교황권의 모습
사전 지식들
교황의 칭호와 성스러움
완전한 교황의 명칭
교황청의 재정적 기반
신께서 제정하신 교황권
로마의 베드로
베드로의 무덤을 찾아서
주교단 지상주의에 도전하는 베드로의 사명
교황과 보편 공의회
교황 선출
서기 1000년까지
1059년의 교황 선출 법령: 선거인단이 된 추기경
콘클라베 제도의 등장
오늘날의 교황 선출
종말론적 관점에서 본 교황권

제2부 교황들의 역사
서기 1000년까지
중단 없이 계승된 베드로의 후계자들
두 명의 ‘대교황’ 레오 1세와 그레고리오 1세
교황 전권의 포고자(布告者) 레오 1세
레오와 아를의 힐라리우스의 몰락
교황 레오와 힐라리우스 주교에 대한 뒷이야기
올바른 신앙의 수호자, 로마 교회
로마, 교황의 보호를 받다
수도자의 순종을 겸비한 모범적 교황: 그레고리오1 세
이교적 고대로부터의 이반(離叛): 그리스도교적 중세로의 전환
교황이 주도하는 포교 사업의 시작
로마 교회의 보호와 재산 관리
성 그레고리오 1세 이후 로마 교회의 쇠락
서유럽의 황제권은 교황의 기증품인가?: 레오 3세와 샤를마뉴
죄 지은 왕을 심판한 교황 니콜라오1 세
10세기의 추락
교황, 세계 통치를 꿈꾸다
교황에게 신앙심은 복종을 의미한다: 그레고리오 7세와 교회 개혁
그레고리오 7세와 소명의식
카노사의 굴욕
실패한 승리자
로마가톨릭 교회 바깥에는 구원이 없다: 인노첸시오 3세 때까지 교계 제도의 확립
“신보다는 나약하지만, 인간보다는 위대한 존재”
통치 조직의 정비
독일의 왕위 쟁탈전과 제4차 십자군 원정
새로운 종교 운동
세계 지배의 정점에 선 교황 보니파시오8 세
세속적 권력과 천상의 힘
보니파시오 8세와 프랑스의 왕 필리프 4세: 신정국가와 근대 국가
아나니의 암살 계획: 종말의 시작
아비뇽의 ‘바빌론 유수’
‘서구 대이교’
종교개혁, 가톨릭 개혁, 적응 시기의 교황들
종교 분열의 시대
돌파의 달인, 교황 식스토 5세
산적 소탕, 재정 개혁, 로마 시의 건축 사업
폭군의 이미지
17세기와 18세기의 ‘로마 교황’: 절대주의와 계몽주의 시대
“아, 세상 물정도 모르는 이 사람아!”: 왕정복고 시대의 교황들
바티칸의 시대 혹은 교황령의 종말과 새로운 교리
자유주의자에서 ‘바티칸의 포로’로: 비오 9세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 교리와 ‘우리 시대의 주요 오류들’의 싸움
트렌토 공의회의 연속, 제1차 바티칸 공의회 1869/70년
‘교황 제도’에 대항했던 이그나츠 폰 될링거
교황의 보편적 사교직과 무류성의 교리: 비오9 세의 작품
경이롭지 못한 고립: 비오 11세와 라테라노 조약까지의 교황들
바티칸 시대의 특징들
새로운 힘의 충전
의외의 인물 요한 23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새로운 추기경단, 새로운 주교직
“분열을 종식시키려 합니다”: 교황권의 개방
요한 바오로 2세: 공의회적 전환 그리고/혹은 가톨릭적 성찰?
‘폴란드식 모델’을 따르는 세계 교회?
저격 사건
교황의 ‘독주’(獨走)
아직도 교황이 필요한가?
고통받는 교황: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죽음과 찬미
불확실한 미래
요한 바오로 3세, 요한 24세, 케빈 1세 혹은?
베네딕토 16세: 축복받은 자
‘독일’ 교황
신학 교수 라칭거
교수직, 주교직, 성좌
행복한 통치자 베네딕토 16세
교황사 연구의 과거와 현재: 사학사적 고찰
연구 현황
교황권: 초국가적인 연구 주제
종교개혁의 물결
가톨릭 교회의 대응
비판적 관점과 전통의 보존
개신교 측의 자기 성찰
레오폴드 랑케의 ‘사건’으로서 교황사
유럽적 차원의 공감
교황사 서술과 종파적 분극화 현상
루트비히 파스토어의 『교황들의 역사』
“성좌는 숨길 것이 없다”: 바티칸 문서고의 개방
독일 교황사 서술의 마지막 대작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던 교황사가들
교황권의 ‘지속성’

|부록|
역대 교황 목록: 교황, 대립교황, 역대 교황 재위 순서의 모호성
그림 출처
찾아보기
옮긴이의 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신보다는 나약하지만, 인간보다는 위대한 존재“ ―인노첸시오 3세
“교황들의 계보는 과거의 위풍당당했던 세속가문들과 비교될 수 있을 것” ―토머스 매콜리

교회의 관점이 아닌 역사가의 관점으로 서술한 2005년까지의 교황사
베네딕토 16세의 충격적인(?) 자진 사임 발표 이후, 새로운 교황의 선출에는 그 어느 때보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한번 교황 자리에 오르고 나면 선종 때까지 재위하는 것이 가톨릭의 전통이었는데, 1415년 그레고리오 12세 이후 600년 만에 이 전통을 깨면서 전임 교황이 생존해 있는 상태에서 새 교황의 선출 과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새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단이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 “유폐”된 채, 오로지 빵과 포도주, 그리고 물만 먹으며, 참석한 추기경 수의 3분의 2 이상의 득표수가 나올 때까지 투표를 계속했다. 이를 콘클라베라고 한다. 이번 콘클라베에서는 예상보다 신속하게 추기경단의 의견이 모아졌고, 그 결과 프란치스코가 첫 남미 출신 교황, 즉 최초의 비유럽권 교황으로 등극했다.
이 이례적인 사건을 전하는 기사들을 보면, 교황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가 되는 말들이 등장한다. 600년 만의 자진 사임, 콘클라베, 최초의 비유럽권 교황…. 2,000년 교황사에서 자진 사임했던 유일한 교황은 누구였나, 추기경들을 가둬둔 채 새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는 어디서 유래하는가, 프란치스코가 최초의 비유럽권 교황이라면 이전의 교황들은 어느 지역 출신이었는가…. 이 모든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것이 바로 이 책 『교황의 역사』에서 다루고 있는 사실(史實)들이다.
독특한 교황 선출 방식인 콘클라베는 교황 제도에만 고유한 제도가 아니라, 이탈리아의 많은 도시 공동체들이 시장이나 총독을 선출할 때 사용한 제도였다. 주민들의 소요를 차단하기 위해 ‘자물쇠가 채워진 폐쇄된 장소’(‘콘클라베’라는 단어의 뜻)에서 선출 과정을 진행했던 것인데, 가능한 신속하게 새 교황을 선출하고자 했던 배경에서 바티칸이 이를 가져다 도입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서기 1000년까지만 해도 교황은 ‘성직자와 신도’가 참여하는 로마 주교의 선거 절차와 동일한 과정을 통해 뽑혔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로마의 황제와 귀족들, 그리고 독일의 왕 등 세속 권력이 개입할 여지가 컸고, 때마다 유력자의 마음에 드는 인물이 교황좌에 오르기도 했고, 또 동시에 여러 명이 스스로 교황을 칭하며 대립하기도 했다. 스무 살도 안 된 나이에 어머니의 치맛바람에 힘입어 교황이 된 자(요한 11세)가 있었는가 하면, 자신과 대립하는 교황에게 쫓기다 못해 돈 몇 푼에 교황 자리를 팔아넘긴 자도 있었다.
그러다가 1059년에 이르러서야 교황 선출 법령이 제정되었고, 추기경단만이 선거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1179년에 3분의 2 다수결 원칙이 도입되고, 1241년에는 최초의 콘클라베가 개최되었다. 이 최초의 콘클라베는 동시에 추기경들이 견뎌내야 했던 가장 힘든 콘클라베이기도 했다. 추기경단은 빠른 시일 내에 교황을 뽑으라는 압박을 받으며 구타와 모욕, 오물 세례를 견뎌야 했고, 그 과정에서 병자와 사망자가 나오기까지 했다.
바로 이 콘클라베가 교황권에 안정성을 제공하는 토대이다. 이 안정성은 가톨릭 교회를 부정했던 아돌프 히틀러조차 경탄하며 모방하려 했던 것이었다. 베니토 무솔리니 역시 가톨릭 교회와 교황권을 파시스트 정권의 장기 집권을 위한 모델로 삼으려 했다고 한다.
이 책 『교황의 역사』는, 콘클라베와 3분의 2 다수결의 원칙, 그리고 추기경으로 이루어진 선거단이라는 교황 선출 법령의 기원과 변천을 보여준다. 이처럼 오늘날의 교황 선출 방식은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에 제정된 것으로, 말 그대로 피로 물든 역사의 산물이다. 즉 교황사(敎皇史)는 신의 의지의 역사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로마 교회와 그 주변부의 세력 구도의 산물이자 교황“들”의 역사로서 끊임없는 변천의 과정을 거쳐온 것이다. 또한 앞서 말한 다른 키워드, 즉 600년 만의 자진 사임과 교황의 출신 지역들에 관한 이야기도 이 책에 나온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카노사의 굴욕이나 아비뇽 유수 또한 그 역사적 배경과 함께 서술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이를 교회의 관점이 아닌 중세사 전문 역사학자인 저자가 “계몽적” 관점에서 정리한 “역사서”가 바로 이 책이다. 마르틴 루터라는 교회 분열자를 배출한 나라인 독일의 학자이면서 개신교 신자인 저자가 서술한 교황의 역사이기에, 상당 정도의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독자들의 마음을 끄는 교황의 역사에 대한 책들 가운데는 개신교 신자들이 쓴 작품들이 더 많았다. 대표적으로 레오폴트 랑케의 것이 그러한 예다. 게다가 2005년에 나온 이 책은 직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의 이야기까지 다루고 있으니,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최근까지의 교황사 관련서이다. 그것을 역시 교회사를 공부한 역자가 우리말로 충실히 옮겼다.

제도의 역사에 더불어 인물과 사건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2,000년 교황의 역사에서 교황이 ‘가장 오랜’ 기간 그리고 ‘가장 막강한’ 영향을 행사했던 시기가 바로 중세 천 년이었고, 교황 제도가 확립된 시기 또한 중세였다. 결국, 교황권은 중세에 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중세사 전문가인 푸어만 교수가 저술한 이 책은 바티칸과 교황권의 역사적 토대를 이해하는 데 신뢰할 만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었다. 제1부는 교황과 교황권에 대한 기본 지식들을 설명하고 있다. 베드로의 무덤, 교황청의 재정적 기반, 교황 선출의 역사, 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 비밀회의인 콘클라베 제도의 등장, 오늘날의 교황 선출 방식 등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제1부의 내용은 지은이가 전문 서적과 학술지에 게재했던 기존의 논문들을 일반 독자층을 대상으로 쉽게 풀어서 서술했다.
이어 제2부는 교황들의 역사를 다룬다. 2,000년 역사 가운데 대표적으로 꼽을 만한 교황과 사건 들을 선택하여 서술했다. 여기에서 지은이는 제도보다는 사람에 더 치중하여, 교황과 그를 둘러싼 당대인들의 다양한 생각과 고민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거기에는 바티칸의 영토와 군사력을 강화하려 했던 교황들이 나오고,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부흥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교황들, 자기 가문의 세속적 부귀영화에만 힘쓰며 매관매직도 서슴지 않았던 교황들, 보기 드물게 수도사적 청빈함을 추구했으나 도리어 경멸당했던 교황들, 심지어 전설로만 전해지는 여성 교황 요한나에 관한 이야기들까지 들어 있다. 그야말로 그 어느 세속 가문의 역사보다도 파란만장한 계보이다. ‘과거의 위풍당당했던 세속 가문들’ 중 많은 가문들이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의 경우에서처럼 오늘날 더 이상 존속하지 않는다. 하지만 교
황들은 고대부터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는 유일한 ‘지배 가문’, 즉 패트릭 콜린슨(Patrick Collinson)의 표현대로 ‘마지막 황제들’이다.

200컷에 달하는 풍부한 시각 자료와 객관적이고 입체적인 서술
2,000년 역사를 가진 교황의 역사를 다룬 책들은 이 책 말고도 많다.(물론 국내에는 소개되어 있지 않지만.) 그러난 기존의 서술들은 “대작”의 이름에 걸맞은 방대한 분량의 것들이었고, 저자는 이를 대중에게 소개할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독자의 이해를 위해 말을 아끼지 않으면서, 그러나 모든 것을 다 담기보다는 독서 욕구를 자극해 독자들이 교황사를 이해할 올바른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서술되어 있다.
앞서도 언급했듯, 푸어만 교수는 이 책에서 교황의 역사를 평가하기보다는 객관적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이 점에서 그는 초대 교회와 교황권에 대한 사료를 편찬했던 테오도어 몸젠(Theodor Mommsen, 1817~1903)의 연구 방법을 충실히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교황의 역사에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대신 매우 풍부한 사료들을 활용해 역사를 생동감 있게 재구성했다. 덧붙여 이 책의 또 다른 강점은 다른 관련서들에서는 보기 힘든 200여 점에 이르는 그림과 사진이다. 모자이크, 프레스코화, 필사본, 건축물, 전례(典禮)에 쓰이는 제구(祭具) 등등 근대 초기까지 교황만큼이나 풍부한 시각 자료를 남긴 조직은 없었다. 도판 자료들과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독자들이 교황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참고 문헌의 폭탄 세례를 대체한, 지금까지의 교황사 서술 동향 소개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교황사 서술에 대한 사학사가 정리된다. 역사서를 비롯한 학술서들이 대부분 참고 자료와 관련된 ‘일차 사료, 참고 문헌, 연구 동향’이라는 여러 쪽으로 된 별도의 장을 편성하지만, 이는 독자들이 읽기 어렵고 부분적으로만 인용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수많은 참고 문헌들을 나열하는 대신에 이들을 풀어서 설명하는 식으로 대체했다. 과거의 ‘일차 사료, 참고 문헌, 연구 동향’에 들어 있던 문헌의 폭탄 세례 대신에 교황사 서술 동향에 대한 내용의 장을 첨부하면서, 초대 교회의 연대기적 기록과 전기적 서술, 서로 죽이려고 달려드는 듯한 논쟁적 글들, 현대의 사료 비판적 방법론이 적용되었으나 아직도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교황사 서술의 역사를 소개했다. 교황의 역사에 대해서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글들이 있지만, 때로는 상호 이해와 돌파구를 마련한 시대도 있었다. 그리고 책 말미에는 ‘역대 교황 목록’을 정리해 실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