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들 - 하늘과 땅의 지배자 (한스 크리스티안 후프, 2009)

책소개
하늘과 땅의 지배자 ‘교황’. 그들은 실제로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 책은 서양의 역사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 교황제의 전설적인 시초로부터 근대 유럽에 교황제가 정착할 때 까지를 폭넓게 보여 주고 있다.

카노사의 굴욕, 독일 용병들의 로마 약탈, 위풍당당한 베드로 성당 건립, 최초의 교황 베드로 무덤의 진실 등 서양 역사의 축이자 하늘과 땅의 지배자였던 교황들의 권력에 대한 욕망과 피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는 이 TV 기획물은 그리스도의 대리인 교황들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또다른 측면을 벗겨 낸다. 그들은 절대 권력을 추구하며 수많은 전쟁을 이끈 군주인 동시에 세속의 가족을 보살피고 예술과 학문을 열렬히 사랑한 평범한 인간이기도 했다.

이 책이 집중적으로 조명한 교황은 총 265명의 역대 교황들 중 여덟 명뿐이다. 하지만 이 교황들은 가톨릭교회의 정치.경제적 기반을 닦고 값진 문화유산을 남김으로써 역사의 큰 장을 장식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권력의 절정을 향유한 대가로 혹독한 비판을 받았으며 새로운 시대, 새로운 교회의 단초를 야기하기도 했다.


목차
I. 카노사에서 아비뇽까지
1장 그레고리오 7세
절대 권력을 소망한 교황
- 세계가 무너지다
- 교회의 자유
- 약력: 그레고리오 7세
- 무자비한 통치자
- 말싸움
- 카노사와 그 결과
- 승자와 패자

2장 사도 베드로
무덤, 가장 위대한 세계 종교의 성역
- 약력: 반석 베드로
- 성유물-피안으로 한 걸음 더
- 위조의 시대

3장 보니파시오 8세
미래는 과거다
- 시대에 맞서 싸운 교황
- 권력의 정점
- 약력: 보니파시오 8세
- 프랑스와의 첫 다툼
- 귀족 가문들의 전쟁
- 양측의 바보들
- 아냐니 따귀 사건

4장 아비뇽 유수
- 교황이 있는 곳이 곧 로마다
- ‘바빌론 매춘부’
- 도덕적 역풍
- 흑사병
- 망명의 끝

5장 로마교회의 대분열
- 세계가 분열되다
- 공의회 소집
- 세 교황과 피사
- 세계의 새로운 질서
- 공의회를 열다
- 다시 함께
- 국가들의 문제
연대표: 카노사에서 아비뇽까지

II. 교황왕들의 통치
1장 식스토 4세
성좌에 오른 탁발수도승
- 대성당에서의 살인
- 저술가이자 신학자인 교황
- 약력: 식스토 4세
- 교황왕들의 황금시대가 시작되다
- 메디치가와의 관계
- 교황과 메디치가와의 싸움은 무승부

2장 교황 알렉산데르 보르지아
- 가문의 수장으로서의 교황
- 약력: 알렉산데르 6세
- 여성과 사치를 사랑한 교황
- 프랑스와의 전쟁
- 아들을 위해 눈물을 흘린 교황
- 간계, 모략, 살인, 전쟁

3장 율리오 2세
성좌에 오른 카이사르
- 보르지아가의 종말
- 약력: 율리오 2세
- 고집스러운 다혈질 예술가들
- 불같은 사령관으로서의 교황
연대표: 교황왕들의 통치


출판사 제공 책소개


교황, 신앙의 수호자 인가 권력의 화신인가
하늘과 땅의 지배자 ‘교황’. 그들은 실제로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 책은 서양의 역사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 교황제의 전설적인 시초로부터 근대 유럽에 교황제가 정착할 때 까지를 폭넓게 보여 주고 있다.
카노사의 굴욕, 독일 용병들의 로마 약탈, 위풍당당한 베드로 성당 건립, 최초의 교황 베드로 무덤의 진실 등 서양 역사의 축이자 하늘과 땅의 지배자였던 교황들의 권력에 대한 욕망과 피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는 이 TV 기획물은 그리스도의 대리인 교황들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또다른 측면을 벗겨 낸다. 그들은 절대 권력을 추구하며 수많은 전쟁을 이끈 군주인 동시에 세속의 가족을 보살피고 예술과 학문을 열렬히 사랑한 평범한 인간이기도 했다.

옮긴이가 말하는 ‘교황들’
이 책이 집중적으로 조명한 교황은 총 265명의 역대 교황들 중 여덟 명뿐이다. 하지만 이 교황들은 가톨릭교회의 정치.경제적 기반을 닦고 값진 문화유산을 남김으로써 역사의 큰 장을 장식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권력의 절정을 향유한 대가로 혹독한 비판을 받았으며 새로운 시대, 새로운 교회의 단초를 야기하기도 했다. 가톨릭 역사에서 이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인 대목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저자들은 숨 가쁘게 전개되는 이러한 영욕의 과정을 상세하고 실감나게 풀어 나간다. 교황을 둘러싼 정치적 암투와 무력 충돌만이 아니라 당시 사회의 관습과 유행까지도 묘사된다. 교과서에서 몇 문장으로 지나쳤던 역사의 현장을 다큐멘터리처럼 실감나게 감상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의 내용은 독일에서 영상물로도 제작돼 큰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도 인간으로서 교황의 욕망과 고통, 그리고 구원의 과정까지도 볼 수 있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라는 초역사적 지위를 소유함으로써 어떤 정관이나 통치원칙에도 구애받지 않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지배자, 교황의 권력은 로마제국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교황들의 삶 속에서 다양하게 표출되어 왔다. 교황들은 서양세계 안에서 숱한 권력자들과 때로는 연합하고 때로는 경쟁하며 그들의 권력을 유감없이 펼쳐왔다. 이 책의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교황의 역사는 곧 서양의 역사”라 할 만하다.

이 책은 교황제의 역사에서 특히 극적이고 긴박감 넘치는 대목에 초점을 두고 있다. 사도 베드로에서 출발하는 2천 년 교황의 역사 중 11~16세기의 5백여 년이 배경이다. 유럽사로 보면 중세 전성기로부터 르네상스 초기에 해당하는 시대이다. 이 시기에 교황제는 세속 권력과의 분쟁을 통해 패권을 획득하고 오늘날 바티칸을 지탱하는 권력의 근간을 수립하게 된다.

유명한 ‘카노사’ 사건으로 독일 왕 하인리히 4세를 굴복시킨 그레고리오 7세가 서두를 장식한다. 독일 왕이 한겨울 추위에 떨며 교황 앞에서 참회하는 장면은 역사적 의식 속에 뿌리 깊이 각인되었다. 이 사건으로 교황들은 성직자 서임에 관한 독점권을 얻은 한편, 세속 군주와 분리된 길을 걷기 시작한다.
뒤이은 보니파시오 8세, 그는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교령인 <하나의 거룩한 교회>를 포고한 교황이다. 이 교령은 하느님의 대리인 로마 교황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문서화한 것이다. 또 보니파시오 8세는 ‘희년’ 제도를 도입하여 신자들에게 대사면을 내림으로써 로마의 부흥을 꾀했다.

‘아비뇽 유수’와 이어지는 로마교회의 대분열의 시대는 가톨릭 역사상 암흑기였다. 비록 아비뇽 시대에 문화가 꽃피고 교황청 제도의 혁신이 있었다고는 하나 세속 권력에 휘둘리는 교황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1471년, 교황으로 등극한 식스토 6세는 르네상스 황금시대의 토대를 쌓은 예술 후원자였다. 바티칸 건설에 힘쓴 그는 호화찬란한 시스티나 성당으로 자신의 이름을 길이 남겼다. 하지만 무엇보다 식스토 6세의 힘은 당대의 맹주 메디치가와의 연이은 갈등에서 입증되었다.

스페인의 귀족 보르지아 가문 출신인 알렉산데르 6세는 일가의 흥망성쇠를 주도한 교황이었다. 그는 사치와 향락을 위해, 아들 체사레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권력을 남용했다. 그의 임기는 각종 정치적 술수와 모략,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은 시대였고,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교황의 모습과는 정
반대의 인물이었다.
그런 면에서 전사(戰士)교황 율리오 2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를 제 2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라고 주장하며 로마를 세계의 우두머리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 역시 교황이라기보다는 왕이나 사령관이었다.

메디치가 최초의 교황인 레오 10세 이후로 가톨릭은 교회 내외부에 가장 큰 위기를 마주하게 되었다. 독일 수도승 마르틴 루터의 신랄한 비판과 교회 내의 개혁 압력 말이다. 그러나 레오 10세는 루터의 비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면죄 대금을 대대적으로 징수하며 교황청 재정 확보에 몰두했다.
역시 메디치가 출신인 클레멘스 7세는 독일 황제 카를 5세와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 사이에서 이익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전략을 펼쳤다. 하지만 원래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결국 황제군에 의한 ‘로마 약탈’이라는 수치를 겪은 후 엥겔스부르크로 피신해야 했다. 그의 임기에 영국 국교회가 창립된 것도 교황제의 권위에 큰 타격을 주었다.
바오로 3세는 족벌주의와 무절제한 낭비로 긍정적인 평가를 얻지 못했다. 특히 그는 종교재판소를 재도입해서 루터주의라는 ‘이단’을 박멸하고자 애썼다. 바야흐로 교회개혁이라는 화두가 더욱 절박하게 대두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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