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스파르타쿠스 (하워드 패스트, 2008)

시나리오/인물|2022. 12. 24. 10:00

책소개
영화 <스파르타쿠스>의 원작 소설. 기원전 70년경 로마에서 일어났던 노예 반란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다. 노예 검투사 스파르타쿠스가 주도하고 동료 검투사들과 수만 명의 노예들이 가담했던 이 반란은 로마 공화국을 위협할 정도로 기세를 떨쳤지만 결국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의 군대에 의해 완전히 진압된다.

소설은 반란 가담자 6,472명을 십자가형에 처한 아피아 가도를 따라 귀족 젊은이들이 한가롭게 여행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로마의 군인, 정치가, 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스파르타쿠스라는 인물과 당시의 로마 사회가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이 책에서 그려진 스파르타쿠스는 누구보다 선하고 순수한 인물이다. 노예를 말하는 짐승으로 취급하고 재미 삼아 생명을 죽이는 로마 사회에서 그는 자유와 인권, 생명을 부르짖는다. 당시의 건축물, 도로, 경기장 등 로마 공화국의 외형을 통해 로마의 발달한 문명, 그 이면에 놓인 인간들의 불평등한 삶과 억압의 문제를 끄집어내고 있다. 2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가 추구했던 고귀한 가치는 여전히 우리에게 절실하다.


목차
1장
5월의 어느 날 로마에서 카푸아로 가는 간선도로를 따라 카이우스 크라수스가 여행하다

2장
카푸아에서 검투사 학교를 운영하는 렌툴루스 바티아투스가 대장군 크라수스의 야영지를 방문한 것과 관련하여 크라수스가 카이우스에게 들려준 이야기

3장
살라리아 빌라에서 밤을 보내기 약 4년 전 마리우스 브라쿠스와 카이우스 크라수스가 처음 카푸아를 여행한 것과 두 쌍의 검투사가 싸웠던 이야기

4장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와 노예전쟁의 원인에 대한 그의 관심

5장
렌텔루스 그라쿠스의 기억과 그가 살라리아 빌라에서 머물던 때의 몇 가지 일들

6장
살라리아 빌라에 머물던 일행 일부가 카푸아로 여행한 것과 그 아름다운 도시에 대한 몇 가지 사항들, 그리고 그 여행자들이 마지막 검투사의 처형을 보게 된 경위

7장
키케로와 그라쿠스가 로마로 돌아가는 여행, 여행 중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스파르타쿠스의 꿈과 그 꿈을 그라쿠스가 듣게 된 경위

8장
바리니아가 자유를 찾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로마 최고의 노예 검투사 스파르타쿠스
자유를 향한 위대한 전쟁을 선포하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영화 <스파르타쿠스> 원작

로마는 사라질지라도 스파르타쿠스는 영원할 것이다,
인간다운 삶을 꿈꾸는 모든 자유인들의 가슴에

<소설 스파르타쿠스>는 기원전 70년경 로마에서 일어났던 노예 반란에 관한 이야기다. 노예 검투사 스파르타쿠스가 주도하고 동료 검투사들과 수만 명의 노예들이 가담했던 이 반란은 로마 공화국을 위협할 정도로 기세를 떨쳤지만 결국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의 군대에 의해 완전히 진압된다. 소설은 반란 가담자 6,472명을 십자가형에 처한 아피아 가도를 따라 귀족 젊은이들이 한가롭게 여행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로마의 군인, 정치가, 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스파르타쿠스라는 인물과 당시의 로마 사회가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작가 하워드 패스트가 이 소설을 쓸 무렵은 미국에서 매카시즘이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하원의 비미활동위원회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3개월간 투옥된 패스트는 감옥에서 이 소설을 구상한다. 1951년, 작품을 완성하고도 책을 내주겠다는 출판사가 없어 스스로 ‘블루 헤론’ 출판사를 차려 Spartacus를 출판했다. 이 책은 하드 커버로 4만 부나 팔려나갔고 매카시즘 이후에는 수백만 부가 판매되었으며 전 세계 56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1960년 커크 더글러스가 주연을 맡고 스탠리 큐브릭이 감독한 영화로 또 한 번 전 세계를 강타한다.
이 책에서 그려진 스파르타쿠스는 누구보다 선하고 순수한 인물이다. 노예를 말하는 짐승으로 취급하고 재미 삼아 생명을 죽이는 로마 사회에서 그는 자유와 인권, 생명을 부르짖는다. 2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가 추구했던 고귀한 가치는 여전히 우리에게 절실하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다.

“우리는 로마를 끝장내버리고, 노예와 주인이 없는 세상을 만들 것이오.”
기원전 71년, 4년간 계속되었던 전투와 소요로 인해 통제되었던 아피아 가도가 비로소 열리고 로마 시민들은 자유로이 로마와 카푸아 사이를 왕래하게 된다. 귀족 자제 카이우스 크라수스와 그의 여동생 헬레네, 헬레네의 친구 클라우디아는 아피아 가도를 지나 친척 안토니우스 카이우스의 훌륭한 농원 살라리아 빌라를 찾는다. 그곳에는 정치가 렌텔루스 그라쿠스와 노예 반란을 진압하여 명성을 떨친 장군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그리고 젊은 정치가이자 학자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손님으로 먼저 와 있다.

 

소설은 이 인물들이 과거에 스파르타쿠스를 만난 경험이나 스파르타쿠스를 잘 아는 인물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크라수스는 반란 진압의 임무를 위임받은 무렵, 스파르타쿠스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그를 검투사로 사들였던 렌툴루스 바티아투스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카이우스에게 들려준다.

“그는 부드럽습니다. 아주 부드럽습니다. 거의 겸손하다고 할 정도죠. 그리고 그는 트라키아 출신입니다. …… 검은 곱슬머리, 암갈색의 눈. 코는 부러져 있죠. 그것만 아니면 잘생겼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그 부러진 코 때문에 얼굴이 양 같은 인상을 주죠.” (본문 98쪽)

트라키아 출신의 스파르타쿠스는 23살에 ‘코루우’(삼 대째 노예를 뜻하는 이집트 말)만 선출되는 지옥 같은 누비아 광산으로 끌려가고, 그곳에서 검투사 중개인에게 팔려 노예 검투사로 살게 된다.
한편 카이우스는 4년 전, 검투사 경기를 보여주겠다는 친구 마리우스 브라쿠스를 따라 바티아투스의 검투사 학교를 찾는다. 브라쿠스는 엄청난 돈을 지불하는 대가로 두 쌍의 검투사가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경기를 요구하고 그때 뽑힌 검투사 중 하나가 바로 스파르타쿠스다. 그런데 스파르타쿠스와 싸우게 되어 있는 흑인이 경기 직전 관람석으로 돌진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흑인은 군인들의 창에 무참히 찔려 죽지만, 이 일을 계기로 스파르타쿠스와 동료 검투사 200명은 병사들을 죽이고 검투사 학교를 탈출한다.

그들은 그저 흑인이 미친 것만 보았다. 흑인은 그물을 옆으로 내던지고 거친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특별관람석으로 돌진했다. 칼을 빼어 들고 있던 교관이 그를 저지하려고 했다. 이내 그 교관은 작살에 찔린 물고기처럼 삼지창에 찔려 공중에서 몸부림을 쳤고, 흑인이 물고기처럼 그를 내동댕이치자 허공에서 비명을 지르며 몇 번을 돌다 땅에 떨어졌다. …… 그러나 이 모든 소동의 와중에도 스파르타쿠스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만약 움직였다면 그는 죽었을 것이다. 그는 칼을 모래밭에 박고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생명에 대한 해답은 생명인 것이다. (본문 185쪽)

소설로 읽는 박진감 넘치는 로마인 이야기
스파르타쿠스가 반란을 일으켰던 기원전 70년경의 로마는 노예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였다. 소설 속에서 키케로는 “노예들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고, 우리는 노예와 노예 제도가 만든 독특한 산물입니다.”라고 일갈한다. 또한 이 시기에 검투사 시합은 새로운 투자와 이익의 분야로 떠올랐으며, 귀족들의 지루한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구실을 했다.

정치가들은 성공적인 정복 전쟁의 영광을 얻지 못할 바에는 고국에서 규모가 작은 복제품이라도 만드는 것이 그에 못지않게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으며, 며칠이나 몇 주씩 계속되는 100쌍의 시합도 종종 있었다. 훈련받은 검투사들에 대한 수요가 결코 충족될 수 없었기 때문에 가격은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석조 경기장이 앞다퉈 여러 도시에 건설되었고, 마침내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경기장이 카푸아에 건설되었을 때, 렌텔루스 바티아투스는 그곳으로 가 학교를 시작하기로 작정했다. (본문 136쪽)

<소설 스파르타쿠스>는 당시의 건축물, 도로, 경기장 등 로마 공화국의 외형을 통해 로마의 발달한 문명, 그 이면에 놓인 인간들의 불평등한 삶과 억압의 문제를 끄집어낸다.

많은 부유한 사람들이 임대주택 1층에 거주했다. 1층은 최상의 거주지이며, 로마의 임대주택에서는 흔들거리는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갈수록 값은 내리고 불행은 커졌다. 대개 가장 낮은 주 층에만 수도관을 통해 물이 공급되었으며 그 두 층만이 화장실이나 목욕시설이랄 것을 갖추고 있었다. 모든 곳에서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절대적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며, 부유한 상인이나 은행가들은 머리 위로 7층이나 되는 가난의 둥지를 이고 있는 셈이었다. (본문 259쪽)

스파르타쿠스는 로마 공화국의 막강한 군대를 상대로 4년이나 싸웠지만 마침내 패배했다. 그의 몸은 병사들의 칼에 갈갈이 찢겼고, 생포된 노예들은 죽을 때까지 서로 겨루어야만 했으며, 마지막 승리자는 로마로 향하는 첫 번째 십자가에 못 박히는 처형을 당한다. 마지막 검투사인 유대인 다비드는 고통 속에서 죽어가며 마지막 전투에 앞서 스파르타쿠스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 …… 우리는 4년 동안 로마와 싸웠습니다. 우리는 결코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오늘 전쟁터에서도 도망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말을 타고 싸우기를 바랍니까? 말은 로마인들이나 가지라고 합시다. 나는 형제들 옆에 서서 싸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전투를 이기면 우리는 많은 말을 갖게 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그 말들이 전차가 아니라 쟁기를 끌게 할 것입니다.” (본문 4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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