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와 디아블로 게임 제작에 관한 이야기 (BLIZZARD DIABLO)
워크래프트의 성공 이후 블리자드는 후속편으로 워크래프트 같은 전략시뮬레이션 게임과는
완전히 다른 장르의 게임을 만들기로 결정한다.
워크래프트2가 히트를 해서 대규모의 자금이 들어오게 되자
알렌 애드햄은 회사에 새로운 바람과 혁신으로 불러일으키고 싶었다.
그래서 블리자드의 창업자인 알렌 애드햄은 평소 잘 알고 있던 게임 회사인
콘도르의 사장 데이비드 브레빅에게 전화를 걸어서 회사를 인수하고 싶다고 말한다.
데이비드 브레빅은 블리자드 창업자인 알렌애드햄처럼 어린시절부터 게임을 좋아했고
애플2를 통해서 게임 프로그래밍의 세계에 빠졌다.
그는 고등학교때부터 자신만의 게임회사를 차리고 싶었는데
대학을 졸업한 후에 그는 게임회사를 창업하기로 결심 한다.
마침 동네 친구중에 컴퓨터 그래픽회사에서 아티스트로 일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에릭쉐퍼와 맥스 쉐퍼로 둘은 형제 사이었는데 게임을 좋아했다.
데이비드 브레빅은 그들에게 함께 회사를 차리자고 제안을 했고
쉐퍼형제들도 기꺼이 회사를 그만두고 함께 콘도르를 창업한다.
콘도르는 창업한 이후 그들의 첫번째 계약은
아타리에서 발매한 휴대용 게임기인 아타리 링스(Atari Lynx)용으로 풋볼 게임을 개발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자금문제로 인해서 데이비드 브레빅은 잠시 회사를 나와서
1991년 창업한 신생회사 이구아나 엔터테인먼트라는 게임 업체에서 프로그래밍팀을 이끌어야 했다.
그런데 1993년 이구아나 엔터테인먼트는 캘리포니아에서 미국 중부 텍사스 오스틴으로 이사를 갔고
샌프란시스코를 떠날 생각이 없었던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쉐퍼형제들과 콘도르에 다시 합류한다.
쉐퍼형제의 경우 그래픽을 담당했지만 데이비드 브레빅과는 다르게 게임계에서는 별다른 경력이 없었다.
사실 텍사스로 이사간 이구아나 엔터테인먼트가
튜록64나 모탈컴뱃으로 유명한 어클레임 엔터테인먼트라는 게임회사로 인수되지만
93년도의 이구아나 엔터테인먼트는 무명이었고
결국 데이비드 브레빅이 가진 경력사항도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다.
그는 이곳저곳을 알아보면서 외주하청이라도 맡으려고 했지만
경력이 전무한 그들에게 아무도 일을 맡기지 않았다.
면접 보러온 지원자가 초라한 회사건물에 실망하고 돌아갈 정도로 그들은 힘들게 회사를 꾸려나갔다.
그들이 가장 힘들었던 때는 1994년 1월이었다.
현재 CES는 매년 1년에 한번씩 열리지만
94년의 경우 CES는 라스베가스와 시카고에서 겨울과 여름에 두 번 진행됐다.
데이비드 브레빅은 겨울에 CES가 열리는 라스베가스에 가서
자신들이 개발하는 게임에 투자를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게임 회사도 아무런 경력이 없는 데이비드 브레빅의 말에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애초에 게임회사의 관계자들이 만나주려 하지도 않았다.
아무도 그들의 아이디어에 귀기울이지 않았던 그때가
데이비드 브레빅과 쉐퍼형제에게 가장 어렵고 괴로웠던 순간이라고 말한다.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온 데이비드 브레빅에게 때마침 선소프트(SUNSOFT)로부터 반가운 연락이 온다.
당시 미국에서 인기 만화였던 에어로스미스(Aerosmith)와 스쿠비 두 (Scooby Doo)
그리고 저스티스 리그 테스크 포스(Justice League Task Force)
이 셋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게임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였다.
당연히 콘도르는 저스티스 리그를 선택했다.
저스티스 리그는 배트맨, 슈퍼맨, 원더우먼 등 우리에게 친숙한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이
총집합 해놓은 만화였고 인기도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콘도로 의견을 받아들인 선소프트는 세가 게임기인 메가 드라이브용으로
스트리트파이터와 같은 격투게임을 개발하는 조건으로 외주계약을 맺는다.
선소프트의 하청을 맡은 콘도르는 자신들이 개발중이었던 저스티스 리그를
여름에 열리는 CES에서 공개하기로 결정한다.
선 소프트가 마련한 부스에서 게임 저스티스 리그를 출품한 데이비드 브레빅은
같은 부스에서 전시중인 게임하나를 보고서 깜짝 놀란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회사가 데이비드 브레빅이 만든 저스티스 리그와
똑같은 게임을 개발하고서 전시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즉시 선 소프트 관계자를 통해서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묻게 되었다.
알고 봤더니 선소프트에서는 만화 저스트리그의 판권을 구입한 후에
블리자드에는 슈퍼 패미콤용으로 게임을 제작하도록 하고
콘도르에게는 메가드라이브용 게임을 만들도록 계약한 것이었다.
당시 미국 게임계는 슈퍼패미콤과 메가드라이브가 양대산맥을 이루면서 경쟁을 했기 때문에
당시 북미의 많은 게임 개발사들은 두 개의 가정용 게임기를 동시에 지원하는 멀티가 대세였다.
그런데 데이비드 브레빅이 더 놀랬던 것은 두 회사가 이전에 한번도 만난적이 없고
그렇다고 개발인원중에 교류를 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두 회사의 게임이 너무나 똑같다는 것이다.
그는 이때 마치 쌍둥이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슈퍼패미콤용으로 저스티스 리그를 만든 블리자드의 관계자를 만나고 싶었다.
마침 선 소프트의 관계자를 통해서 블리자드의 사장인 알렌애드햄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알렌 애드햄도 데이비드 브레빅의 저스티스 리그를 보고 깜짝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알렌 애드햄은 서로 본적도 없는 두 회사가
마치 같은 회사에서 게임을 만든 듯이 똑 같은 게임을 개발해냈다는 사실에
뭔가 통했다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동질감으로 처음 만난 둘은 실제로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서로가 게임을 보는 안목이나 개발철학들이 비슷함을 알게 되었고 더욱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
알렌 애드햄은 데이비드 브레빅에게 그들이 개발중인 비장의 무기인 워크래프트를 보여주고 싶었다.
따로 마련된 블리자드의 부스로 도착한 순간 데이비드 브레빅은 워크래프트를 보고는 감탄을 하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환타지의 세상이 게임으로 완벽하게 구현된 모습이 너무나 반가웠다.
전시회가 끝난후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온 데이비드 브레빅은
차기 게임으로 무엇을 개발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94년에는 16비트를 대표하는 슈퍼패미콤과 메가드라이브의 시대가 서서히 종말을 고하고
32비트의 시대가 예견되던 때이다.
95년도에 플레이스테이션과 세가세턴이 발매되기전에 이미 32비트용으로 3DO가 등장했다.
콘도르는 3DO의 후속버전인 M2 게임기에 맞춰서 풋볼게임을 개발하려 했다.
다행히 3DO의 개발사로부터 개발비용을 투자 받았다.
하지만 3DO의 판매실적이 매우 저조했고 그래서 3DO의 후속편인 M2의 발매도 불확실해졌다.
그래서 데이비드 브레빅은 가정용게임기에 주력하던 기존의 전략을 바꾸고
새롭게 PC 기반의 롤플레잉 게임을 구상한다.
그는 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열군데 정도의 회사를 찾아가서 투자를 제안했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다.
아예 만나주지도 않는 업체들이 수두룩했다.
PC 게임 개발 경력이 없는 그들을 믿지 못했고 데이비드 브레빅은 또 다시 좌절의 시기를 보낸다.
그런데 콘도르의 창업자중에 하나인 맥스 쉐퍼는
블리자드가 CES에서 전시했던 실시간 전략 게임 워크래프트에 특히 감명을 받았다.
게임광이었던 그는 하루라도 빨리 게임을 하고 싶은 열망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맥스 쉐퍼는 블리자드사장인 알렌애드햄과 안면을 튼 데이비드 브레빅에게
제발 워크래프트를 구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멕스 쉐퍼의 성화에 못 이겨 데이비드 브레빅은 결국 블리자드의 알렌 애드햄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이 전화 한통이 데이비드 브레빅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워 크래프트의 베타테스터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묻는 데이비드 브레빅에게 알렌 애드햄은
반가운 마음으로 워크래프트를 즉시 CD로 보내주겠노라고 화답한다.
둘의 통화는 자연스럽게 회사의 근황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가 전환되었다.
데이비드브레빅은 요즘 만들고 있는 롤플레잉 게임이 투자를 받지 못해서 답답하다는것과
최근 금전적으로 어려운 회사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마침 알렌 애드햄은 모회사인 Davidson & Associates로부터
게임 사업부가 규모면에서 더욱 확장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블리자드 이름으로 유통할 만한 게임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고
이때 데이비드 브레빅의 전화를 받은 것이었다.
알렌 애드햄은 콘도르가 개발중인 게임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데이비드 브레빅은 PC 게임기반의 턴베이스 롤플레잉을 만들고 있다고 답하였다.
이에 흥미를 느낀 알렌 애드햄은 데이비드 브레빅을 만나서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한다.
원래부터 롤플레잉 게임 마니아였던 알렌 애드햄은 꼭 한번 롤플레잉 게임을 개발하고 싶었다.
그래서 데이비드 브레빅을 만나자 구체적인 게임 개발계획서나 스케쥴을 꼼꼼히 살펴보지도 않고
콘도르가 만들고 있는 롤플레잉 게임 유통을 맡는 조건으로 개발금 30만달러를 지원해주겠다고 말한다.
사실 이정도의 금액을 투자할때는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이런 파격적인 계약을 맺은 것은
94년 CES에서의 특별한 인연덕분이었다.
이미 둘은 게임에 대한 안목과 비전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데이비드 브레빅 역시 반가운 마음으로 판권계약을 맺게 된다.
게임 크리에이터가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은 대략 세가지이다.
하나는 실제 일상생활에서 재미있었던 경험을 게임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어린 시절 동네 야산을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이때 산을 달리던 상쾌함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라는 횡스크롤 액션 게임으로 개발되었고
1억 7천만개라는 판매량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또한 미야모토 시게루는 산속을 돌아다니면서 동굴안을 탐험하는 재미에 푹빠졌는데
이때 경험을 살려서 액션 어드벤쳐 게임 젤다의 전설을 개발하여 5천만장이라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재미있었던 어린시절 추억을 게임으로 부활시킨 슈퍼마리오와 젤다의 전설
이 두 작품으로 게임계 판도를 완전히 뒤바꾸었고 그 덕분에 게임의 신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두번째로는 책이나 영화같은 매체로부터 영감을 얻는 것이다.
또 다른 게임의 명인 윌 라이트는
MIT 대학의 전자공학과 교수인 제이 포레스터의 도시공학이라는 책을 읽고 게임 아이디어를 얻는다.
제이 포레스터는 인구, 출생률, 부동산, 범죄, 공해 같은 20여 개의 변수를 활용하여
하나의 도시를 가상으로 시뮬레이션하려고 하였다.
이에 윌 라이트는 제이 포레스터가 50년대에 시도했던 도시 시뮬레이션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게임의 재미와 결합시킨 심시티를 개발하였다.
도시를 개발하는 게임인 심시티는 1989년에 발매되어서
1년동안만 3백만장이 넘게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세상을 깜짝놀라게 했다.
당시로써는 이례적으로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지에도 심시티가 대서특필되었고
어린이들에게 게임은 교육상 나쁘다는 선입관을 한번에 잠재우기도 하였다.
그의 후속작인 심즈 역시 책을 읽다가 얻은 아이디어다.
크리스토퍼 알렉산더가 쓴 패턴랭귀지는
건축의 형태에 따라서 인간의 삶이 어떠한 영향을 받는지 패턴에 따라서 분류한 것이다.
윌라이트는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이론을 받아들여 집안의 건축형태나 물건배치에 따라서
캐릭터의 삶이 달라지는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 심즈를 개발한다.
심즈 시리즈는 발매후에 PC 게임과 관련된 모든 기록을 갈아치운다.
여섯달 연속 차트 1위라는 신기원을 이룩하더니
연간매출 2천억원에 총판매량 7천만장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여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하였다.
세번째로 게임크리에이터가 아이디어를 얻는 발상법은
게임에 감명받은 후 거기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가해서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다.
블리자드의 워크래프트시리즈 자체가 듄2의 영향으로 시작된 것이 좋은 예이다.
그런데 콘도르의 창업자 데이비드 브레빅도 롤플레잉 게임에 빠져있는 열혈 마니아였다.
보통의 게임 크리에이터처럼 던전앤 드래곤을 즐기기는 마찬가지였고
그가 특히 즐기던 게임은 모리아(Moria)나 네트핵(NetHack) 같은 텍스트 롤플레잉이었다.
보통 게임에서 유저가 적을 공격하면 그 모습이 그래픽으로 다 보여준다.
하지만 텍스트 롤플레잉 게임은 그것을 글로 표현한다.
명령자체가 공격이라고 하면 A(Attack)를 누르는데
화면에는 ‘적을 공격중입니다.’라고 텍스트로 화면에 보여준다.
그리고 그래픽게임에서는 적이 죽으면 화면에 그림으로 장렬한 최후를 보여주지만
텍스트게임에서는 K(Kill)이라는 표시를 해줄뿐이다.
이러한 형태의 게임은 나중에 쥬라기 공원 같은 텍스트 머드 게임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단순히 글로 표현되는 게임이지만 소설을 읽는 것처럼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칠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텍스트 기반의 롤플레잉 게임을 즐겼다.
데이비드 브레빅은 모리아나 같은 텍스트 롤플레잉 게임에
90년대의 화려한 그래픽을 결합시킨 게임을 개발하고자 하였다.
그는 이러한 아이디어를 집에서 샤워를 하다가 머리속에 순간 떠올렸는데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직원들을 상대로 흥분한 목소리로 디아블로를 외칠정도로
그는 이 아이디어를 좋아했다.
디아블로는 스페이언어로 악마를 뜻하는데 데이비드 브레빅은 원래 그 뜻을 몰랐다.
그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산맥중에 디아블로가 있는데
그는 이 아름다운 산을 특히 좋아했다.
그래서 단순히 디아블로라는 어감을 좋아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중에 디아블로가 스페인어로 악마라는 뜻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이 단어가 게임과 참 잘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롤플레잉 게임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게임 이름에 디아블로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원래는 나중에 사업문제나 라이센스를 위해서 게임이름을 바꾸고 신조어를 만들어 내려고 했지만
자기가 살던 동네의 산 이름인 디아블로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디아블로는 텍스트 머드게임의 영향을 받은 만큼
게임방식도 원래는 장기나 바둑처럼 한번씩 서로 돌아가면서 행동을 선택하는 턴방식이었다.
그런데 블리자드를 대표로해서 콘도르에 파견된 빌로퍼의 생각으로는
턴방식의 게임이 아무래도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원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하면 당연하게 턴방식을 떠올리던 시기가 있었다.
삼국지와 문명 그리고 마이트앤매직 등
수많은 인기 전략 시뮬레인션 게임들이 바로 턴을 기반으로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판도가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 등장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턴을 기반으로 한 게임은 시간을 두고 심사숙고하는 매력이 있지만 대신에 진행이 매우 느리다.
하지만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게임은 기다릴 필요없이 유저는 끊임없이 게임에 참여할 수 있다.
전략이라는 기본틀안에 박진감과 스피드한 전개가 동시에 충족시켜주니
많은 유저들이 정적인 느낌의 턴방식보다는 실시간 전략게임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를 재촉한 주역중에 한명이 빌로퍼였던 만큼
콘도르가 개발하는 게임이 턴방식이라는 말에 그의 생각은 부정적이었다.
그래서 빌로퍼는 콘도르에게
턴방식의 게임을 실시간 전략 게임처럼 포인트앤 클릭 방식으로 바꾸어서
박진감과 액션이 강조는 게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다.
또한 95년도는 윈도우가 출시 예정이었다.
그래서 빌 로퍼는 미래를 생각하는 의미에서
도스보다는 윈도우 플랫폼에 맞는 게임으로 개발하는 것이 좋다고 보았다.
처음 빌로퍼가 자신의 의견을 전하자 데이비드 브레빅은 윈도우로 게임을 개발하기는 하겠지만
실시간 방식으로 롤플레잉게임을 개발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롤플레잉 게임하면 턴방식이 정통성을 가지고 있었고
데이비드 브레빅은 게임속에 전략성을 강조하고 싶었다.
빌 로퍼의 요구대로 게임을 바꾸면 전략성이 없어지고 액션게임이 되기 쉽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가 영감을 얻은 네트핵이나 모리아와 같은 게임 자체가 턴방식이었다.
마침 등장한 X-COM이라는 턴방식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보면서
전략과 롤플레잉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게임을 개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빌로퍼는 문서상에 존재하는 게임 기획안은 단지 문서일뿐이고
실제로 구현해서 직접눈으로 확인하기전까지는
함부로 판단하거나 비난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요구하는 사항이 마음에 들지 않고 허무맹랑해도 무조건 거절하기 보다는
한번 게임을 고쳐서 수정한다음에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블리자드의 의견이 옳은지 틀린지를 결정하자고 하였다.
데이비드 브레빅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로써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결국 빌로퍼의 의견대로
직접 턴방식의 게임인 디아블로를 실시간 으로 진행되는 포인트 앤 클릭 방식의 게임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막상 테스트를 해보니
회사내의 모든 사람들은 새롭게 바뀐 게임이 훨씬더 재미있고 박진감이 넘쳤다.
결국 데이비드 브레빅도 자신의 고집을 꺽을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빌로퍼는 이날 이후 콘도르의 게임이 제대로 진행되는지를 살펴보고
두 회사간에 의견을 조정자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1995년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2의 밀리언 셀러 등극으로 자금에 큰 여유를 가지게 된다.
알렌 애드햄은 이 자금으로 콘도르를 자회사로 인수하려고 했다.
그런데 마침 콘도르는 과거 데이비드 브레빅이 다녔던 이구아나 엔터테인먼트를 통해서
미국의 유력 게임 퍼블리싱 업체인 어클레임으로부터 인수 제의를 받았다.
블리자드가 콘도르에 제시한 인수금액은 어클레임보다도 적은 돈이었다.
하지만 블리자드와 콘도르는 져스티스 리그 태그포스 이후 특별한 인연을 느끼고 있었고
두 회사는 여러가지 공통점으로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데이비드 브레빅은 어클레임보다 더 적은 돈으로 인수합병안을 제안한
블리자드와 합병을 결심한다.
인수합병은 돈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서로 더 좋은 게임을 개발하자는 의기투합의 과정이었다.
그런데 인수 합병의 유일한 걸림돌은 블리자드의 모회사인 Davidson & Associates였다.
데이비드 브레빅은 조마조마하게 인수합볍에 대하 결과를 기다렸고
팩스로 승인통보가 전달되었을 때는 뛸듯이 기뻐하였다.
1999년 3월 인수콘도르는 블리자드가 Davidson & Associates에 인수되었을 때 처럼
최대한 개발의 독립성을 유지해주었다.
하지만 콘도르라는 회사 이름은 블리자드에 인수된 후에
블리자드 노스라는 사명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블리자드 노스는 개발에 전념을 하고
블리자드는 본사에서는 기술지원, 품질관리, 고객지원, 자금, 언론홍보등을 후원해주었다.
Davidson & Associates는 유통, 판매, 마케팅 그리고 제품의 생산과 회계문제를 책임졌다.
또한 블리자드의 인수로 자금에 여유가 생긴 블리자드노스는
12명이었던 직원을 24명으로으로 늘리고
3DO 차세대 게임기인 M2용 미식축구 게임 개발프로젝트는 취소하고 디아블로 개발에 전력을 쏟는다.
그런데 1996년 5월이 되자 빌로퍼는 디아블로에 한가지 기능을 더 넣어 달라고 제안한다.
전세계의 게임 플레이어들이 네트워크로 연결해서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있는
인터넷 접속망을 제공하는 배틀넷에 대한 아이디어였다.
원래 디아블로의 개발 완료는 11월이었고 6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데이비드 브레빅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제대로 만들어 지기만 하면 이것이 게임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디아블로의 발매 그리고 상반된 반응
디아블로는 97년 1월에 발매된다.
미국은 11월 중순의 추수감사절에서부터 12월 25일의 크리스 마스때까지를
할러데이시즌이라고 하는데 이때가 일년중 최고의 성수기이다.
보통 미국에서는 12월 25일부터 1월의 첫번째 일요일까지 연휴이고 가게문도 닫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선물도 미리 구입하고 연휴를 즐겁게 만들어줄 게임 등을 많이 구입한다.
그래서 미국에서 1년 장사는 바로 이때 좌우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디아블로는
막판에 버그와 같은 문제들이 발생해서 할러데이 시즌을 넘기고 1월 초에 발매된다.
1월은 미국에 연휴가 많았던 관계로 실제 전국상점에 배치된건 1월중순이 지나서이다.
하지만 이런 황금 같은 시기를 못맞춘 관계로
블리자드측에서도 판매량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빌로퍼의 예상으로 10만개는 넘기겠지만 25만개정도만 팔려도 대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서 1년만에 2백만개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다.
시장에서는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사실 디아블로를 바라보는 사람들 평가는 극명하게 상반되었다.
한쪽은 롤플레잉 게임의 혁명이라면서 디아블로의 탄생에 열광하였고
한쪽에서는 롤플레잉이 아니라 액션 어드벤쳐 게임이라면서 디아블로에 대해서 비난하였다.
이는 처음 블리자드에서 디아블로의 게임방식을
턴에서 실시간 게임 방식으로 바꾸라고 할때의 반응과 비슷하다.
어린 시절부터 던전앤 드래곤에서부터 울티마와 바즈테일, 위저드리 등
세계 3대 롤플레잉 게임이라고 불리우는 게임을 즐겼던 데이비드 브레빅은
블리자드에서 제안한 게임방식이 정통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고 이에 대해서 반발을 했었다.
하지만 막상 빌로퍼 말대로 게임방식을 바꾸자 실제의 게임플레이는 훨씬더 재미있었고
그는 이때부터 게임은 장르가 아니라 재미 그자체에 초점을 맞춰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게임 마니아들이 디아블로는 롤플레잉게임이 아니라면서 혹평을 하고 비난을 해도
나는 롤플레잉 게임이 아니라 디아블로를 만들었다면서 반박을 했다.
디아블로는 노력과 보상이라는 철저한 체계아래서 성장과 육성의 재미를 철저하게 추구하였다.
그래서 적을 한명 죽이면 아이템으로 보상을 해주었다.
아이템은 유저들에게 성취감과 수집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게임에 계속해서 몰입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롤플레잉 게임의 미덕중에 하나인 자유도는 철저하게 희생했다.
자유도라는 것은 유저들에게 많은 선택사항을 주어서
다양한 방법으로 게임 속 세상을 모험 하고 탐험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울티마를 통해서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의 토대를 마련한 리차드 게리엇은
이른바 명예라는 시스템을 창안했다.
그래서 적을 죽일 때
악랄한 방법으로 죽이면 명예수치가 떨어지고 좋은 방법으로 쓰러뜨리면 명예수치가 올라간다.
적을 칼로 죽일수도 있고 대화로 설득을 할수도 있는데
이렇듯 롤플레잉 게임하면 이렇게 현실세계를 재현하것처럼
얼마나 많은 자유도를 제공하느냐가 명작과 졸작을 가르는 기준점이었다.
그런데 디아블로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적을 클릭하고 쉴새없이 전투를 벌이는 것이고 탐험지역도 지하도시 하나에 한정되었다.
성장과 육성이라는 부분으로보면 분명 롤플레잉 게임이었지만
롤플레잉 게임의 매력인 자유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마우스로 적을 클릭만 하니
많은 유저들은 혹시 마우스 제작회사와 연결되어 있느것이 아니냐고 비아냥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결국 디아블로는 롤플레잉 게임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그 이전의 턴방식의 롤플레잉 게임은
너무나 어렵고 귀찮고 많은 시간이 든다면서 서서히 퇴보를 하였고
디아블로처럼 쉽고 편리하고 캐주얼한 게임으로 유저들의 트렌드가 완전히 돌아선 것이다.
이제는 게임방식이 자유도라는 이름아래 복잡해지면 환영받지 못하고
디아블로가 선사한 박진감 넘치는 게임진행은 필수적인 조건이 되었다.
디아블로는 롤플레잉게임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였고
디아블로에서 느꼈던 재미 즉 노력과 보상의 절묘한 조화는
이제 모든 롤플레잉 게임의 교과서가 되었다.
출시 당시 디아블로가 과연 롤플레잉게임인가에 대해서 수많은 논쟁들이 벌어졌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디아블로가 바꾸어 놓은 게임계를 보면
그때의 논쟁은 결국 진보와 보수를 외치는 세력간의 쓸데없는 이데올로기 논쟁에 불과했다.
정통이라는것도 결국 시대가 흐르고 나면 변하기 마련이고
이제는 디아블로가 그 기준점에 서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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