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학 정리 2부

Info/학술 논문|2019. 11. 20. 03:30


1부 내용 복습

이론적인 학문, 형이상학 등은 이론에 관한 것이고
실천적인 학문, 정치학 등은 실천에 관한 것들로 분류하고
제작을 위한 학문, 시학이나 수사학은 제작에 관한 것으로 분류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보게 될 '토피카' 의 경우, 변증론을 다룹니다. 

 


1. 제1실체와 제2실체


이번에 다루게 될 것은 범주론과 명제론입니다. 
전에 언급했던 추론 과정에서의 구성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체계를 세워놓은 논리학 안에는 20세기 언어학에서 발견해 놓은 내용들이 있습니다. 

소리와 의미의 구분  
즉, 그 소리가 그냥 소리가 아니고 형식과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음성론과 음운론을 구분해 놓은 것이라든가
소리에도 그런 것처럼 의미에도 형식과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문법과 의미를 구분해 놓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을 얘기할 때 
문법을 얘기하는 것인지 의미를 얘기하는 것인지 그 구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둘 다 섞어서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문법을 이야기를 했다가 
어떤 때는 의미를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그 두 가지가 다르지만 
그 당시에 이 질문을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했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그런 구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감안해야 합니다. 

처음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를 이야기합니다.
하나의 대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묘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가 있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바로 범주입니다.

Homonyma 라는 표현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homo 는 같다는 의미이고 nyma는 말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같은 말이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synonyma 라는 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요즘도 많이 쓰는 말입니다.

homonyma 라는 말은 요즘의 언어학의 내용과는 혼돈의 여지가 있습니다. 

homonyma 는 하나의 말이 다양한 의미로 쓰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대상이 여러 개인데 소리가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homonyma 라는 말을 씁니다. 

요즘 언어학 내용과 비교해 보면 구별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 개의 문법적인 다른 원소들이 '하나의 소리로 표현이 되는가'의 문제인지
아니면 여러 개의 대상들이 '하나의 문법적인 요소로 말이 될 수 있는 것인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homonyma 는 하나의 문법론적 정체성에 다양한 내용을 담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paronyma 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문법적으로 하나의 단어가 변화과정을 거쳐 다양하게 여러 가지로 나갈 수 있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접두어나 접미어를 통해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는데요. 
In을 붙이므로 부정이 되거나 tion을 붙이면 명사가 된다거나 등 그런 것입니다. 

철수라는 개체가 진짜 실체라고 합니다. 
제1실체인 것입니다. 철수는 실체적인 인간입니다.
반면에, 인간이라는 용어는 보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실제 인간은 아닌 것입니다. 

철수는 볼 수 있지만 인간은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제2실체라고 합니다. 
표현에서 느껴지는 대로 제1실체보다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비교를 많이 하는데 
크게 보면 절대적인 것을 지향하지만 세부적인 것에는 다릅니다. 

지금 같은 경우 플라톤의 입장에서는 보편적인 것을 가진 인간이 이데아 입니다.  
철수는 없던 것이 생겨난 것이고 없어질 것입니다. 
반면 인간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계속 남아있는 이데아인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다르게 보는 것입니다. 
제1실체, 즉 개체라는 것입니다. 

칼 포커라는 과학 철학자의 이론을 보면 수정 가능성이 나오는데, 
수정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과학의 조건을 겁니다. 
예를 들어, 내일은 비가 오거나 오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은 반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적이지 못합니다. 
진리인 것입니다. 과학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일은 비가 온다. 
이것은 위험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내일 가서 비가 안 오면 틀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학이라는 것입니다. 
과학은 항상 잠재적으로 반박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20세기 과학 이론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2. 실체를 서술하는 기준들

소크라테스라는 제1실체를 묘사함에 있어 제2실체를 가지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라는 말은 제2실체로 제1실체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열 가지를 나누게 되는데 
외국의 백조라는 말에는 희다는 의미가 없지만 
한국어의 백조에서는 이미 희다는 의미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동어반복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말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서양어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white 를 쓴다면 실체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질적인 묘사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형용사는 서양어에서는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말은 '~것' 을 붙여야 합니다. 
아무튼 이러한 질적인 표현이 있습니다. 

관계 속에서의 표현도 있습니다.
다른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표현이 되는 것도 있습니다.
2배라는 것은 비교의 대상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지않다면 몇 배라는 표현은 무의미합니다.

또는 장소로도 말할 수 있습니다.
현대 언어학적으로 보면 '상황보어' 입니다.
명제를 만드는 문제입니다. 
동사의 문제입니다.  
거기선 필연적으로 묘사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 대상이 실체인 것이고 그것이 없으면 동사가 쓰일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상황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상황보어'라 하고

장소를 표현한다거나 하는 입니다.
간다는 것은 가는 장소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간다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모든사건이 그렇습니다. 
졌다 혹은 이겼다 등 또한 장소가 있어야 가능한 입니다.
이런 식의 상황보어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시간도 있어야 합니다.
묘사하는 서술관계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런 것이 문법에서는 시제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시제가 없으면 동사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흔히 외국어 공부할 때 동사 원형을 외웁니다. 
사실 그것은 동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시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서술을 하기 위해서는 시제가 있어야 하는데 다만, 그것을 추출해서 명사화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화석화하는 것입니다.

동물은 계속 변화 합니다. 세포도 계속 태어나고 죽고를 반복합니다. 
움직임과 사건은 순간입니다. 
하나의 생물 또한 사건의 연속인 것입니다.
화석은 그렇지 않고 정지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공룡을 보지만 그것이 곧 공룡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것이 동사원형이라는 것입니다.


서술을 할 땐 동사원형으로 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어나 영어나 불어 등에선 동사가 어미 부분에서 시제를 책임지지만  
모든 언어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일곱 번째는 하나의 자세가 있습니다. 
어떤 상태로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덟 번째는 소유관계입니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신발을 신고 있다. 이런 식으로요. 

 

그 다음은 능동, 수동으로 이야기합니다. 
능동적인 움직임으로 이야기하죠. 
걷는다는 등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수동은 무엇을 당하는 것입니다.
음식을 제공받는 것은 무엇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서술관계에서 하나의 개체를 묘사할 수 있는 가짓수라는 것입니다.

한국어에서는 동사가 변화하듯이 형용사도 변화할 수 있습니다.
단지 형태가 달라지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주부와 술부를 연결해 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영어의 be동사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어떤 문법 카테고리를 보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이것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문법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개념 세계를 어떻게 나누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이런 것이 불분명하다는 겁니다. 
그것이 순수한 것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범주론이라는 장(場) 안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갖고 하나의 명제가 만들어지겠죠. 
그 명제를 부정으로 만드는 등의 것을 통해 문장을 구성하는 명제론을 이루는 것입니다.
interpretation 이라는 것인데 일부 사람은 생성론이라고도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명제론이라고 합니다. 


3. 명제론이란 무엇인가

서술 방법과 가능성이 어떻게 하나의 명제로 구성되는지를 풀어나가는 것이 명제론입니다. 


4. 명사와 동사의 문제

명사건 동사건 둘 다 언어입니다. 
언어세계에서의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언어는 이 세계를 인식하는 수단 중 하나입니다. 
흔히 언어를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라고도 합니다. 
사실 그런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언어는 커뮤니케이션과 관련이 없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언어가 없어도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커뮤니케이션을 못 할 수도 습니다.  
즉, 전혀 다른 영역의 문제입니다. 

뇌에서도 커뮤니케이션과 언어를 담당하는 부분이 다릅니다. 
단지 커뮤니케이션을 할 경우 정상인이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언어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언어를 쓰는 것이지..  
커뮤니케이션을 관장하는 본질적인 것이 언어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언어는 무엇입니까?  
세계를 인식하는 수단입니다.
감각적인 인식도 가능합니다.  
감각적인 것도 구분을 합니다.  
감각한다는 것은 모든 정보기관을 이용해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의 대상으로 묶을 수 있는 것이 지각 능력입니다. 

지각능력도 하나의 인식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각과 지각의 차이점을 보게되면, 
임상실험을 한다고 할 때 지각 능력이 망가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병을 보여주고 설명을 해보라고하면 설명을 못합니다. 
지각을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 보입니다. 
지각은 되는데 하나의 대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감각은 하지만 '인식'이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로 별개의 영역입니다. 
이것은 인간과 동물이 공유하는 것입니다.  

동물도 이런 능력은 있습니다.


미국의 어떤 개가 부모와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살았습니다. 
하루는 부모가 없는 사이에 뱀이 나왔습니다.
개가 그 상황을 직감하고 뱀를 덮치고 물리쳤습니다. 
대신 개도 부상을 당해 부모가 그 개를 수술해서 살렸다고 합니다. 

우리가 거기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물론 다른 영역도 있겠지만 감정, 정(情)이 없으면 그럴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정보 영역이 아니라 윤리적 차원의 문제입니다.

여기선 정보 능력만 보자는 것입니다.  
뱀을 보았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뱀을 보지 않고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뱀을 보고 줄넘기로 생각했다면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사물로서의 뱀을 인식한다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뱀이 무엇을 한다는 사건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뱀 모형을 똑같이 만들어서 놔두면 사물로서의 뱀은 인식을 하지만 그런 행동은 하지않습니다. 

사건, 운동, 변화를 알기 때문입니다. 
즉, 개한테도 그러한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개로 하여금 그런 행동을 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은

개에게도 그런 정도의 정보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사물을 인식할 수 있고 나아가 사건까지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인식활동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물도 인식해야 하지만 사건도 인식해야 거기에 대한 반응이 가능한 것입니다.  
사물과 사건, 혹은 사태의 인식과정입니다.
동물과 공유하는 것입니다.  
다만 동물과 다른 점은 그것을 개념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인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개념화하는 것입니다.  
즉, 추상화하는 겁니다. 
실제 구체적인 상황으로 놔두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언어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사물은 언어화할수 있고 사태 또는 사건도 언어화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물의 언어와 사건의 언어화

 
사물의 언어가 명사고 사건의 언어가 동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명사와 동사는 큰 인식의 두 축입니다. 
시제라는 문제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명사에는 시제가 없고 동사에는 있습니다. 
사건에는 반드시 시간이 개입합니다. 


5. 시제의 중요성

사건이라고 하는 것의 핵심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시간입니다.
시간을 빼고는 사건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현재는 '순간'이고 지금 이야기했던 것조차 과거가 된 것입니다.  
동사 원형은 동사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계와 언어와의 관계에 있어서 진리를 언어에서 찾는 것은 신화적인 것으로 빠질 수가 있습니다. 
즉, 비과학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과학은 반대로 가야하는 것이고요.
언어로 만들어진 것은 언제든지 반박이 가능한 것이어야 하는 것이 과학인 것입니다. 

명사 안에서의 관계로 설명하려는 것이 있는데 흔히 그런 것을 복합명사라고 합니다. 
어떤 한 주체를 묘사하고 서술하는 행위, 그것이 동사의 역할입니다. 
어떤 하나가 다른 단어를 수식하는 것입니다. 
또한 시간이 추가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시공의 제한을 받겠습니다. 
명사를 이야기할 때는 시공의 개념이 없었습니다. 
특징의 개념과 질, 양 등의 개념이 있었던 것이지 시공간의 개념은 없습니다.

그것을 사건화 했을 때 시공의 개념이 생기는 것입니다. 
컵이라는 단어에는 시공이 없습니다.
 "컵이 여기 있다"고 했을 때 비로소 공간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동사로서 표현되는 상태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언급했던, 명사의 경우에도 명사가 될 수 없는 것을 설명했듯이,  
동사의 경우에도 주어가 빠진 것들은 동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즉, 지칭하는 대상이 없다는 것이죠. 


6. 모순과 양상논리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있는 문장입니다. 
그 중에서 긍정과 부정이 가능해지는데 그것은 일반 언어에서도 가능합니다. 
긍정을 부정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not 을 붙이면 그 범위는 어떻게 됩니까? 
그것을 캐고 들어가는 것이 명제론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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