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즈는 왜 프로이트를 숭배했을까? - 경제학자들이 말하지 않는 경제학 이야기 (베르나르 마리스, 2009)

책소개
경제학이 정작 풀어야 하는 문제는 복잡한 수학공식이 아니라 바로 자본주의가 초래한 인간의 불행을 설명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독특한 대안경제학 에세이다. 책 전체를 가로지르는 풍부한 인용과 프랑스 지식인 특유의 풍자적 시선은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신봉해 마지않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왜 모순으로 가득 찼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더불어 경제현상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경제학뿐 아니라 역사학, 인류학, 심리학을 비롯한 총체적 통합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케인즈와 프로이트는 저자의 풍부하면서도 날렵한 문제의식을 풀어가는 중심축이다.


목차
들어가며

서론. 기대수명
우리의 신, 국내총생산/승리의 지표/자본주의와 영원한 삶/역사의 종말/경쟁과 죽음/경쟁의 강화/원문 읽기

1장. 왜 자본주의는 유럽에서 발생했을까?
정확히 말해, 자본주의는 시장이 아니다/자본주의의 동학/시장은 소유권을 제도화한다/자본주의는 희소성을 만들어낸다/필요의 무한반복/자본주의는 새로운 시간 개념에서 출발한다/원문 읽기

2장. 기업가란 누구인가?
성공의 꿈과 슬픈 현실/기업가는 어떻게 돈을 버는가?/사기꾼과 ‘혁신’하는 사람들/힘과 꾀와 거짓/유럽집행위원회의 패러독스/기회주의 만세!/자본가들은 부도덕한가?/‘파괴자-창조자’로서의 기업가/슘페터는 아마추어 사상가인가?/원문 읽기

3장. 종교는 자본주의에 녹아들 수 있는가?
아버지 그랑데와 신밧드 선원/종교와 끝없는 노동/자본주의와 종교 중립성/시장사회의 반종교적 환상/원문 읽기

4장. 위험사회 또는 새로운 금융자본주의
소득, 연금, 의료: 모든 위험은 월급쟁이에게/위험을 이전시키면서 가치를 창출하는 방법/은행의 명령을 받는 국가/공공부채의 재현/국가 폐업과 은행 이윤/불안정과 불평등/위험지향과 위험회피/인간의 아동화와 공포/원문 읽기

5장. 자본가와 학자, 또는 공짜가 어떻게 돈을 만들어내는가?
똑똑한 군중과 네트워크/발명가가 어떻게 기술자가 되었나/상업적 교환과 무상교환/연구행위/학자와 발명가는 탐욕스러운가?/시인과 상인/운이 없어서……/원문 읽기

6장. 특허는 발명을 가로막는가?
생명 해적질/특허와 제네릭 약품/특허와 비용감소/특허……와 도덕!/특허와 연구/원문 읽기

7장. 협력의 반격
프리웨어/출판사, 연구자, 창작자/특허와 저작권/정리(定理)에 특허를 낼 수는 없다/발명의 확산/경쟁은 협력을 도출하는가?/연구와 상호성/저작권 보호는 고용을 창출한다?/원문 읽기

8장. P2P
해적 사냥과 대중과의 전쟁/시장에 대항하는 네트워크와 입소문/지적소유권의 반(反)개혁/내재비용/원문 읽기

9장. 케인즈의 정신분석학 1: 돈
케인즈와 프로이트의 화폐이론/잼 장수/돈과 죽음/희생양으로서의 돈/돈에 대한 욕망과 폭력/원문 읽기

10장. 케인즈의 정신분석학 2: 공포
개인심리학과 집단심리학/군중으로서의 시장/슘페터와 군중심리학/삶의 원칙으로서의 무용(無用)/원문 읽기

11장.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불행: 자발적 예속
레몽 부동과 ‘그럴 만한 이유’/자발적 예속/이타주의는 죽었다. 모방적 협력 만세!/격세유전/원문 읽기

12장. 자본주의의 핵심, 죽음 충동
자아와 문화의 변증법/증오의 나르씨시즘/성적 억압으로서의 기술/최적의 인간 고통/작은 차이의 나르씨시즘/왜 세계화인가?/자본주의로부터의 탈출?/파멸의 쾌락/자본주의, 전쟁 그리고 저주의 몫/자본주의의 자식(自食)/원문 읽기

13장. 경제와 환경 또는 “내가 엄마를 살해한” 방법
풍요의 경제와 환경/과거는 우리의 가장 훌륭한 거울/가이아 가설 만세?/모자라는 고리/신맬서스주의/자본주의 정신과 환경/지속 가능한 발전의 근원에 있는 인간이라는 수단/감소/절약 경제/원문 읽기

결론. 오는 정, 가는 정

보너스
경제학의 수사학/소피스트 경제학자의 치마폭에 싸인 권력/경제 현실의 현실/상관성의 원칙과 실증-규범의 혼동/권위의 논리/보편성 또는 당연성 논리/질의 논리/억측/준논리적 주장/무기력의 논리/수단의 목적화 또는 고용의 논리/“부족해” 논리/부작용: 자유주의 수사학의 원칙


출판사 제공 책소개

열심히 일한 당신, 왜 불행한가?
월요일 아침. 숨 쉬기도 힘들 만큼 사람들로 빽빽한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한다. 회사에 도착하면 날마다 반복되지만 어쩐지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업무가 기다리고 있다. 잠시 숨이라도 돌릴 겸 인터넷포털을 검색하면 각종 신제품 광고가 우리의 눈을 현혹하고, 할인가 여행상품이 당신을 끊임없이 유혹한다. 그러나 정신적 여유도 물질적 여유도 없을뿐더러 주말휴일에도 일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불안한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열심히 일할수록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자본주의는 시간을 희소하게 만든다. 내가 빨리 달릴수록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줄어들고 풍요가 자신의 모습을 과시할수록 초라한 자신만을 발견할 뿐이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일할 시간과 동시에 상품을 소비할 시간을 주지만, 삶의 진정한 가치를 성찰할 시간은 빼앗고 대신 과도한 스트레스를 제공한다. 따라서 “삶이 피곤하고 즐거움은 적고 고통이 가득하여 죽음이 오히려 구원으로 주어진다면 긴 생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는 프로이트의 우울한 반문은 경제학의 영역 안에서 적극적으로 사유되어야 한다.

똑똑한 아이 하나가 나을까, 멍청한 아이 둘이 나을까
199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고 인적자본이론의 창시자라 불리는 자유주의 경제학자 개리 베커(Gary Becker)는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의 간명한 예를 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똑똑한 아이 하나를 낳는 것이 합리적인가, 멍청한 아이 둘을 낳는 것이 합리적인가?” 언뜻 타당해 보이는 이 질문은 이미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을 건드리고 있어서 황당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비인간적인 면을 지닌다. 저자 베르나르 마리스는 자유주의 경제학의 이러한 극단적 합리성 추구가 난쎈스와 비인간성을 초래한다고 본다. 게다가 경제학자들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혼란스런 군중의 움직임을 속수무책 관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경제적 합리성이라는 가설은 현실경제에서는 오히려 예외적이다. 케인즈가 상상했듯이 인간의 경제적 행위는 비합리적이고 본능이나 열정, 군중 현상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심리학을 경제학에 적극 접목하여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행동경제학이 케인즈의 이론을 다시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고 자유주의 경제학이 포기해야 할 것도 바로 이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의 합리성이다.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불행, 자발적 예속
자유주의 경제학의 기초 모델인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이기적이고 합리적이며 따라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그러나 현실의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하고 필요에 따라 여가를 즐기며 살아갈 수 없다. 오히려 대다수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자신의 불행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먹고살기 위해 인생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한 워커홀릭으로서 자발적으로 일과 회사에 예속된 노예로 살아간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저자는 르네 지라르를 빌려 이를 ‘모방적 경쟁’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본다. 경제학자들이 ‘필요’라고 표현할 사물에 대한 욕망이 시기와 부러움으로, 사물을 소유한 사람들을 모방하고자 하는 필요로 돌변하는 것이다. 사물에 대한 욕망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물의 가치는 그것이 부럽거나 감탄할 만하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가치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사회는 계속해서 이러한 경쟁심리를 부추기지만 경제학자들은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스스로 시장에 뛰어들어 무한경쟁을 선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신자유주의 시대: 모든 위험은 월급쟁이에게
고용불안은 만성화됐다. 과거 통합적 기능을 하던 대기업은 이제 해체되고 있다. 자동화는 생산성을 높이고 노동자를 쫓아낸다. 해외공장 이전과 운송비용 축소는 생산, 포장, 디자인 유통의 ‘다국적화’를 가능하게 했다. 이런 변화는 노동자에게 노동의 종말이 아니라 불안과 고립, 스트레스와 두려움 그리고 젊은 나이에 직장을 떠나야 한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이제 고용 없는 성장은 불황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씨스템의 만성적 특성이 된 것이다. 미국의 경우 “감옥이 실업의 사회적 관리” 역할을 하고 있으며 노동력의 5분의 1은 단기고용직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미국 노동자들은 항시 버려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전혀 행복하지 않다. 새로운 자본주의체제에서 임금노동자는 언제나 위험조정의 변수다. 이제 “다(多)위험 봉급쟁이의 시대”가 온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인간을 불안에 떠는 어린아이로 만들어버린다. 불안을 조장하는 노동시장은 두려움의 조직이다. 미국의 수많은 사회학자들은 미국인들이 오늘날 이 노동시장의 공포를 내면화했다고 지적했다. 투자은행가 펠릭스 로하틴(Felix Rohatyn)은 이와 관련해 “미국인들이 얼마나 실업의 두려움을 내면화했는지 이제 실업 자체가 필요치 않을 정도”라고 밝혔다.

자본주의의 두가지 축: 돈과 공포라는 수레바퀴
케인즈는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금리생활자의 안락사를 요구한다. 삶의 유일한 목표가 축적하기 위해 축적하는 것이고 삶과 예술을 누릴 줄 모른다면 그것은 경멸해서 마땅하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토템과 터부』에서 물신(物神)이란 삶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 즉 죽음을 부정하는 수단이라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돈은 우리에게 환상적 불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돈에 대한 욕망과 죽음에 대한 공포는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두가지 축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시간의 개념을 파괴하고 삶의 순간성과 우연성 대신 단선적이고 지속적인 축적의 철칙과 이윤과 미래를 향한 인간의 획일적인 행동을 강요하려 한다. 즉 자본주의는 시간을 길들일 수 있다고 믿는 체제이며 자신이 불멸할 것이라 착각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로부터의 탈출은 가능한가? 그것은 순간과 아름다움을 사랑하며 사회가 조장한 경쟁의 사슬을 끊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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