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관한 마지막 충고 (마티아스 호르크스, 2008)

과학/과학-미래-FUTURE|2022. 11. 22. 10:00

책소개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래 트렌드 전문기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마티아스 호르크스의 신작. 저자는 세계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예상해놓은 '세계의 몰락'이 긍정적인 사람들의 의지에 의해 변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광범위하게 떠도는 헛된 소문들에 대항할 무기를 제공하고, 무분별하게 유행하는 비관주의를 극복할 수 있게 한다.

저자는 세계가 비관주의라는 '괴물'과 싸우고 있으며 이러한 비관주의가 세계 전체를 마비시켜 참된 변화를 막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는 그러한 비관주의에 종지부를 찍고 의연함과 신념에 근거한 '낙관주의'를 주창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물려받은 유산 속에, 태곳적 정신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두려움의 원인' 그리고 그 '두려움의 극복', 비관주의로 점철된 '세상에 대한 자세와 인식' 그리고 그 '세상에 대한 우리의 책임'에 관해 다루는 이 책은 '사람들이 왜 미래를 두려워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후 미래에 대한 두려움, 비관주의가 잘못됐음을 다양한 이유로 증명한다.


목차
PROLOGUE _ 미래에 대한 내기
PART Ⅰ_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가
1. 알라미즘의 공간
알라미즘 현상 / 미디어라는 기계 / 화면이 가진 이슈의 힘 / 포퓰리즘화된 학문 / 지식인들의 이면 / 알라미즘적 스승 / 정정의 불가능성 / 다윈의 악몽

2. 알라미즘의 심리학
전형을 찾는 뇌 / 구분의 전문가들 / 관련짓기의 대가 / 음모를 향한 동경 / 회고의 오류 / 엘리베이터 효과 / 남은 해악의 명제 / 희생숭배와 자아중심적인 반항심리 / 단어의 뇌 / 숫자의 마술 / 낭만적 가설 / 패닉상태의 뇌 / 정치적 알라미즘, 배양시설로서의 정치

3. 알라미즘의 영향
비관주의의 짧은 찬가 / 무감각 효과 / 자기만족식 예언 / 정보의 희생자들 / 트라우마의 코드화 / 감옥을 장식하다 / 발전의 상실 / 비관주의적 스크립트

PART Ⅱ_ 미래에 대한 두려움의 스크립트
4. ‘사악한 세계화’에 관한 동화
제3세계의 성장 / 양극화된 세계 / 양극화의 예외들 / 쇠락해가는 국가들과 숨겨진 승리자들 / 세계화의 뿌리 / 경제적 풍요로움의 방법 / 아프리카의 밤 / 제3세계의 복수 / 세계화의 진실

5. ‘빈곤과 부유’에 관한 동화
스위스의 빈곤 / 빈곤의 패러독스 / 미래의 복지 모델 / 빈곤으로부터의 탈출 / 생명력 넘치는 차이에 대한 송가 / 빈곤과 복지발전에 관한 진실

6. ‘인류를 우매하게 만드는 것들’에 관한 동화
부패한 미디어 / 부차적 지식들 / 속인의 기적 / 모니터 속의 세계 / 게이머 문화 / 미디어와 지능에 관한 진실

7. ‘인구통계적 재앙’에 관한 동화
작은 젖니들 / 멸종에 대한 두려움 / 우리는 공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 우리는 왜 알지 못하는가 / 인구통계적 비약 / 인생의 투자로써의 아이들 / 멸종이 어려운 이유 / 노령화의 기이한 그림들 / 인구통계적 발전에 대한 진리

8. ‘노동의 불안정화’에 관한 동화
아버지의 이야기 / 엘리트 의식과의 고별 / 케이크 생각 / 프리카리아트에 대한 두려움 / 새로운 기업가정신 / 긍정적 프리카리아트 / 계급투쟁의 종말 / 역사적인 새로운 거래 / 일과 실업에 관한 진실

9. ‘폭력의 증가와 문화 전쟁’에 관한 동화
살인문제 / 범죄의 요소 / 관용 제로 / 폭력, 인류학적으로 항상 있어온 것 / 전쟁의 위기 / 분자 테러리즘 / 테러의 수학 / 테러와 인구 / 문화 전쟁 / 폭력, 전쟁, 평화에 관한 진실

10. ‘최후의 전염병’에 관한 동화
안드로메다 신드롬 / 미생물 제국 / 새로운 문명병들 / 질병의 얼굴들 / 부두교 의술 / 병으로 인한 사회적 변화 / 활력소로서의 병 / 마지막 전염병에 대한 진실

11. ‘가치와 도덕의 와해’에 관한 동화
도덕적 공황 / 시민적 가치관 / 영장류로서의 인간 / 비도덕적 시스템 / 3가지 비도덕적인 이야기 / 생산력과 이기주의 / 사회적 소외에 대한 소문 / 구속력 있는 가치관은 ‘좋은’ 것인가 / 소프트 개인주의적 가치체계 / 가치관과 도덕의 몰락에 관한 진실

12. ‘기후 재앙’에 관한 동화
천국의 인간 / 불안정한 지구 / 인간, 날씨를 만드는 존재 / 테라포밍, 한 행성이 변화하다 / 인간, 날씨를 느끼는 존재 / 문명의 홍수 / 기후 변화에 관한 진실

13. ‘치명적 자연과 지속성 공식’에 관한 동화
발전에 대한 공포 / 멸종에 대한 소문 / 복합적 생태학 / 생태학적 균형의 신화 / 바다의 성스러운 동물들 / 성장의 한계 / 발자국 모델 / 지속성 공식 / 자연과 인간에 관한 진실

14. ‘퓨처 마인드’, 낙관주의를 위한 변론
행복의 문법 / 축복을 받아들이다 / 세상에 대한 신뢰 / 미래의 적응력 / 용기의 위력 / 세계가 기능을 하는 이유 / 비(非)제로섬 게임 / 진화적 낙관주의의 신화 / 정신적 힘으로서의 낙관주의 / 미심쩍은 스승들과의 작별

EPILOGUE _ 회의적 낙관주의를 위한 지침


출판사 제공 책소개

유럽 최고의 미래학자 마티아스 호르크스가
‘싸구려 비관주의’를 버리고 ‘낙관주의적 성찰’로 찾은
인문학적 깊이로 읽는 미래 보고서!

이 책의 저자인 마티아스 호르크스 박사는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래.트렌드 전문기자이자 『차이트』『템포』『메리안』지의 편집장을 지낸 저널리스트이다. 1992년부터 트렌드와 소비문화 연구에 몰두했으며 1996년에는 ‘미래연구소’를 설립해 지금까지 장기적인 안목에서 바라본 경제, 사회, 과학기술 그리고 시장의 메가트렌드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미래연구소는 현재 빈, 뮌헨, 런던 등에 지부가 있으며, 유럽의 정치.경제정책을 좌우하는 주요 싱크탱크로서 트렌드 연구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마티아스 호르크스 박사는, 지금 세계는 비관주의라는 ‘괴물’과 싸우고 있으며 이러한 비관주의가 세계 전체를 마비시켜 참된 변화를 막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비관주의의 영향으로 파생한 두려움이 국가와 세계를 지배했고, 사람들은 이에 교화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제 그러한 비관주의에 종지부를 찍고 의연함과 신념에 근거한 낙관주의를 주창해야 한다고 결론내리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우리가 물려받은 유산 속에, 태곳적 정신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두려움의 원인’ 그리고 그 ‘두려움의 극복’, 비관주의로 점철된 ‘세상에 대한 자세와 인식’ 그리고 그 ‘세상에 대한 우리의 책임’에 관해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사람들이 왜 미래를 두려워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후반부에서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비관주의가 잘못됐음을 다양한 이유로 증명하고 있다.
《미래에 관한 마지막 충고》는 세계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예상해놓은 ‘세계의 몰락’이 긍정적인 사람들의 의지에 의해 변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광범위하게 떠도는 헛된 소문들에 대항할 무기를 제공해주고, 무분별하게 유행하는 비관주의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수작이다.

오지 않았기에 두려운 미래, 우리는 그 두려움과 싸워야 한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때’가 아니라 우리가 ‘가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미래를 두려워하는가?”
‘알라미즘(Alarmism)’이란 미래에 대한 두려움들이 유행병처럼 주민들 사이에 만연하는 사회적·문화적 현상을 말한다. 이런 두려움들은 위험의 순간을 특정적으로 해석할 때 생긴다. 그렇지만 이 위험들은 상징적으로 과장되고 불길한 모델로 간략하게 단순화된다. 알라미즘은 문화사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두려움’이라는 신경과민적 유행병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알라미즘’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우선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 1990년대 이후부터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미디어들의 경쟁으로 인해 경악의 정도를 고조시키는 자극적인 기사들이 끊임없이 나오기 시작했다. 예로, 지구 온난화에 관련한 기사의 변천사를 보자.

기상학자들이 기온의 상승을 예상하고 있다 → 1년 내에 섭씨 0.2도에서 3도까지 올라 지구온난화가 예상됨 → 만년빙하와의 이별 → 지구가 100년 안에 8도가 더워진다 → 이렇게 우리의 지구는 멸망한다!

미디어의 데스크들은 “그거 아무도 읽지 않겠는데요. 조금만 더 때릴 수 없어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된다. 이런 말로 인해 기사는 점점 자극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디어들이 ‘선택―극단화―구조화’ 공식에 따라 특정 현상들에 대해 열광하고 여론 속에 닻을 내리는 매커니즘으로 팩토이드(factoid, 활자화됨으로써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이야기)가 만연돼 거대한 루머가 생기는 것이다.
여기에 대단한 존경을 받는 직업인인 지식인의 역할도 컸다. 지식인은 끊임없이 도덕적 반란을 탐내는 미디어 여론에 대해서 도덕적 견해를 피력하는 등대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희생제물이 요구되는 여러 제의(祭儀)를 위해 아이디어를 내어 부정적인 것을 사상적으로 세련되게 변화시키는 자들이다.
또한 학문의 변화도 한몫을 했다. 수세기 동안 학문은 자유롭고 자율적인 정신의 공간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로 인해 상업적 관심은 뒷전이었다. 하지만 글로벌한 지식세계가 도래하면서 학문과 학자의 지위가 근본적으로 변화된다.
학문과 학자는 이제 힘겹게 혼자 싸우지 않고 복합적인 국제적 협력에 의지한다. 그러면서 학자가 지식의 생산을 위해 필요한 테크놀로지는 터무니없이 값비싸지고 학문이 조직되고 구조화되는 대학연구소들은 갈수록 철저하게 지식이 평가의 대상으로 변질되어가는 글로벌한 경쟁구도에 이르렀다. 투자자, 스폰서, 고객들은 가능하면 지체 없이 뭔가를 보여주기를 원한다. 수년 동안 줄기세포 연구결과를 조작했던 한국의 유전자 연구가 황우석의 경우와 물리학자 러시 테일야르칸의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저온 핵융합’은 이와 같은 여론의 생산욕구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연구소와 학술지에서 조작이 계속 발생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학문의 새로운 ‘생산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알라미즘이 위험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사람들이 무감각해진다. 어떠한 것이든 ‘어차피 맞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을 하면서 보도에 대해 무관심하고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일방적인 정보로 인해 다른 곳에서 희생자들이 발생하게 된다. 1976년 7월에 이탈리아에서 한 공장의 보일러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 사고로 유기 염소화학의 가장 심각한 독극물 중 하나인 다이옥신이 유출되었다. 이때 환경단체들이 염산으로 기형이 된 소녀들의 얼굴을 산업오염의 단면으로 보여주면서 사람들은 염소화학을 아주 위험하게 생각하게 된다. 문제는 염소화학의 성분 중 하나인 DDT까지 제한을 받았다는 것이다. DDT는 해충퇴치에 효과가 많고, 특히 습지지역에서 말라리아 퇴치에 좋다. 하지만 환경운동의 영향으로 DDT는 국제적으로 금지되었다. 아프리카의 구호단체들이 수많은 말라리아 질병을 이유로 다시 사용할 것을 요구했지만 환경단체들이 지속적으로 저지하게 된다. 이러한 제도적 환경 알라미즘이 개발도상국의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렇다면 미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세계인의 행복감을 측정하는 ‘세계행복지수’에 따르면 바누아투의 22만 국민이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 호주 해안에서 약 1,500킬로미터 떨어진 남태평양에 위치한 바누아투인들 역시 전쟁과 적대감, 범죄율, 사회적 문제이 있으며 원시적이고 매우 폭력적인 제례의식을 벌인다. 예를 들면 사춘기 남자아이들을 몇 주 동안 정글로 데리고 가서 할례를 베푼다. 또한 바누아투는 가난한 나라다. UN의 국내총생산 지표에 의하면 233개 국가 중 207위를 차지하고 있다. 50퍼센트가 문맹이다. 영아사망률은 여전히 높은 상태다(그런데도 많은 바누아투인들은 90세까지 무난히 산다). 이런 상황의 바누아투 섬에 행복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누아투인들의 세계는 문화적 다양성을 가진 세계다. 수천 년 이상 다양한 민족들이 이주해오면서 문화적 다양성을 갖추고 있다. 여성들도 복지와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개방된 종족체제가 지배하면서 ‘선택의 문화’를 알게 되었다. 또한 바누아투인들의 일상은 끝없는 축제, 제례, 의식들의 연속으로 점철되어 있다. 생일, 기일, 자연현상의 연례 기념일, 어려운 날, 신비적인 날, 평범한 날의 축제를 벌인다. 그리고 바누아투인들은 끝없이 웃으며 말한다. “내일은 더 좋을 거야!”
바누아투에서 제례의식을 할 때 돼지와 멍석을 선물하는 것은 결코 타락하지 않은 이타주의의 표시가 아니다. 사회학자들은 ‘호혜적 이기주의’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호의를 베풀 기분이 생기도록 풍족하게 준다. 결국 받기 위해 주는 것이다. 협력은 장기적으로 볼 때 (그리고 세상의 위험한 정황 하에서는) 좀 더 효과적인 전략의 의미를 갖기 때문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절박하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직접적으로 환영을 받고 인정을 받기 때문에 주기를 즐긴다. 선물의 행위에서 한 가지 생활 모습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나는 무엇인가를 돌려받으리라 믿는다.”
우리는 모두 바누아투인들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국민에게서 약간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이 하나 이상은 있지 않은가? 우리가 부유하고 자유로운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유럽이 오늘날 자유의 피난처라는 사실이, 전에는 철조망이었던 국경을 우리가 넘을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간단하게’ 전염병으로 더 이상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가 무조건 총알받이로 복무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아니면 병사들을 위해 우리가 광범위하게 누구를 사랑하고 어떤 직업을 가지며 어떤 인생길로 접어들지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 등. 이 사실들은 하나의 큰 선물이다. 나누고 퍼뜨려야 할 하나의 축복인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라. 하나 이상은 나에게 분명히 있는 것이다.
자신의 축복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내적 형상을 기형으로 만들게 된다. 이와 같이 부족하다고 괴로워하는 틈새에 종말론.음모론들로 대표되는 비관주의가 무성해지고 세상멸시의 독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종말론적 비관주의는 언제나 우울증에 뿌리박고 있다.
‘인간이 다음 100년을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슈퍼 천재’ 스티븐 호킹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을 때 1주일 만에 2만 5,000개의 답을 받는다. 스티븐 호킹도 1개월 뒤에 답을 달았지만(344페이지 참고) 책의 저자는 Rabbit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사람이 아주 간결하게 블로그에 쓴 답 하나가 가장 맘에 든다고 했다.

잘될 것이다. 물론 문제와 재앙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비관주의가 정당할 수 있을 만한 끔찍한 일은 없을 것이다. 오직 용기뿐!
이제 잘못된 스승들과 작별을 할 때다.

그들이 노벨상을 받는다 할지라도, 철학적으로 뛰어난 달변이거나 영웅적 불구자라 할지라도!

댓글()